마이클 왈저: 성도들이 일으킨 혁명 ━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급진주의 정치
- 책 밑줄긋기/책 2023-25
- 2023. 2. 19.
성도들이 일으킨 혁명 - 마이클 왈저 지음, 류의근 옮김/대장간 |
서문
1장 급진적 정치의 출현
2장 칼빈주의
3장 칼빈주의 정치의 두 가지 사례 연구
4장 청교도 성직자: 근대정치와 급진적 지식인
5장 전통적 정치세계에 대한 공격
6장 규율과 노동의 새로운 세계
7장 청교도주의와 젠트리: 소명으로서 정치
8장 정치와 전쟁
9장 결론
참고문헌 해설
역자후기
9장 결론
1. 청교도주의와자유주의 및 자본주의의 관계
379 모든 근대 세계는 실제로 칼빈주의 속에서 독해되었다. 즉 자유주의적 정치와 자발적 결사, 자본주의와 그 사회적 규율에 대한 의존, 관료제도와 그 체계적 절차 및 근면하고 헌신적이라고 추정된 공직자, 그리고 끝으로 모든 일상적 형태의 억압과 배제된 기쁨과 이완되지 않은 열망은 모두 칼빈주의적이다. 이런 저런 작가들에 따르면 형제들의 신앙 특히 청교도 형제들의 신앙은 근대성의 가장 중요한 요소들의 원천이나 원인 또는 최초 구현이 되었다. 이러한 모든 해석에 어떤 진리가 있음에 틀림없다. 앞서 전술한 바와 같이 칼빈주의의 이론과 실천이 갖고 있는 "근대적" 요소들, 더 정확히 말하면 나중에 근대 세계에 통합된 요들에 관해 많은 사례들이 제시된 바 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반드시 추가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실이 있다. 즉 그것은 이 통합이 선택, 부패, 변형을 포함하는 길고도 복잡한 과정이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칼빈주의적 유산에 공들인 사람들의 결과였다. 16세기와 17세기 형태의 칼빈주의는 이런 또는 저런 근대 전환기의 경제·정치· 행정 체제의 원인이었다기 보다는 근대화의 동인이자 전환기의 이데올로기였다. 그리고 칼빈주의가 인식되고 발전된 위기와 격변의 조건들이 계속되지 않았던 것처럼 통합된 창조적 힘으로서의 칼빈주의도 역시 오래가지 않았다. 칼빈주의는 그 성취 전부가 아니라 그 일부에 불과한 것을 지속한 다른 사회적 지적 힘에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이 힘은 정말로 칼빈주의가 성취한 전부와는 거리가 매우 멀었다.
380 칼빈주의는 회중의 삶이 확실히 자치와 민주적 참여를 위한 훈련이었어도 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아니었다. 예를들어 급진적 민주 수평파는 아마 그 시작은 청교도 회중이었을 것이다. 이를테면 그들은 목회지를 선출하기에 앞서 논쟁을 했고 이어서 상호 맞대응하는 비난을 자주 했던 삶을 보여주었다. 목회자를 선출하는 선거가 종종 그런 것처럼 교회 회원들에게 개방되어 있지 않았을 때도 회중정치는 주교나 왕의 궁정에 만연한 영향력, 모의, 후원과는 매우 달랐다. 개인의 충성심과 경의는 궁정관리들 사이에는 아주 많이 발달되어 있었지만 형제들 사이에는 쇠락해 있었다. 그 대신에 칼빈주의적 주의주의는 자유로운 협상 계약을 최고도의 인간적 유대로 확립했다. 청교도 저술가들은 인간과 신, 성도와 그 동지, 목회자와 교회, 남편과 아내의 관계를 이러한 견지에서 기술했다. 이 모든 관계는 자진해서 다 아는 가운데 이루어졌다. 따라서 사람들이 계약을 협상한다면 명백히 계약의 내용과 목적에 대해 알아야하는 것은 필수적이었다. 목회자의 설교와 글도 이러한 앎을 제공하게끔 되어 있어야 했다. 설교와 본문에 대해 평신도 청교도들끼리 토론을 해도 그것은 마찬가지였다. 회중들끼리의 논쟁도 마찬가지였다. 새로운 정치적 성도이든 새로운 교육을 받은 성도이든 이들이 읽고 필기하고 일기를 적는 것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역시 논쟁과 선거, 자유정치의 팸플릿과 단체를 위한 준비였다.
381 자유주의도 마찬가지로 그러한 자발적 복종과 자기 통제를 필요로 했다. 그러나 청교도주의와는 날카로운 대조 속에서 자유주의 정치는 인간의 합리성에 대한 확고한 신념, 그리고 질서를 비교적 쉽게 달성할 수 있다는 확고한 신념, 이 둘의 가능성에 대한 비범한 자신감에 의해 형성되었다. 자유주의적 자신감은 억압과 죄에 대한 끝없는 투쟁을 불필요한 것으로 만들었다. 그것은 또한 자기 통제를 안보이는 것으로 만들려고 했고, 다시 말하면 자기 통제가 겪는 고통의 역사를 망각하고자 자기 통제가 그저 존재하는 것처럼 소박하게 가정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었다. 그 결과는 자유주의가 스스로 필요로 했던 자기 통제를 창조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로크의 국가는 칼빈주의의 거룩한 연방처럼 규율적 제도가 아니었다. 그것은 정확히 말하면 시민의 가정된 정치적 덕목에 의존했다. 청교도적 억압이 이 이상한 가정의 실제적 역사에서 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 본결론의 핵심 주장 중의 하나이다.
382 이러한 억압의 효과나 그 사회적 필요성의 범위를 어떤 절대적 견지에서 판단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다만 말할 수 있는 것은 청교도들은 로크가 알 필요가 없었던 인간의 죄성에 대해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 점이 기질이 서로 다르고 경험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반영한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혁명 발발의 여러 해 전에 청교도주의의 존재 자체와 확산은 확실히 영국사회에 무질서와 "사악함"에 대한 예민한 두려움이 현존한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이 두려움은 앞서 주장된 바와 같이 오래된 정치적 사회적 질서를 변혁하는 것에 따르는 두려움이었다. 반면에 로크사상의 승리는 불안이 극복되고 죄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 성도들과 시민들이 출현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옛 질서와의 투쟁은 로크 시대에 와서 승리를 거둔 것처럼 보였고 그러한 투쟁에 따르는 흥분과 혼란과 두려움은 거의 잊힌 것처럼 보였다. 로크적 자유주의자들은 인간사회에 대한 종교적 통제, 심지어는 이데올로기적 통제가 없다손 치더라도 해나갈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고 열광과 전투 준비는 매력을 잃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렇게 된 이유는 다만 통제가 이미 인간안에 심어졌기 때문이다.
383 대략적으로, 칼빈주의와 자본주의의 추정적 관계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말할 수 있다. 성도의 도덕적 규율은 자본주의적 인간의 역사적 조건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그 규율자체는 자본주의적이 아니었다. 형제들의 신앙은 체계적 노력과 자기 통제의 강조와 더불어 상점과 공직과 공장의 조직적 노동에 대비하는 존경할 만한 준비였다고 주장될 수 있다. 그것은 인간에게 근대 경제 체제에 필요한 정확한 주의력을 훈련시켜 주었다. 그것은 그들에게 그때 막 성인의 날 휴일을 피하는 때였으므로 오후에 낮잠을 피하고 부기 및 도덕적 성찰에 여가 시간을 할애하도록 가르쳤다. 그것은 어떻게 해서든 지속적인 노동에서 피할 수 없는 박탈과 억압을 성도들에게 견딜 수 있는것, 심 지어, 바람직한 것이 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자기 통제를 가르침으로써 그것은 인간들 사이의 비개인적 계약적 관계의 기초를 제공했고 노동자와 같은 협력은 허용했지만 애정의 교환이나 친밀감의 위험은 수반하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을 칼빈주의가 했거나 도와주었다. 칼빈주의가 이를 창조적 방식으로 했건 새로운 경제 과정의 이데올로기적 반영으로서 했건 그런 것은 직접적 관련성이 없다. 막스베버가 말해준 바와 같이 성도들은 일종의 합리적 세속적 금욕주의를 배웠다. 이것은 아마 경제적 일상이 요구한 그 이상의 것이었다. 그들은 노동 그 자체에서 단순한 노동이 줄 수 없는 것을 추구했던 것이다. 바로 이것이 소명의식, 규율 의식이었고 이로부터 그들은 죄성과 무질서의 두려움을 벗어나게 되었을 것이다.
386 자유주의와 자본주의는 청교도주의가 창조적 힘으로서 소진되고 난후에만 오로지 세속적 형태로 충분히 발전하는 것 같다. 종교적 통제와 가책으로부터 어느 정도 누리는 자유가 근대 서구사회에서 자유주의와 자본주의가 이룩한 일반적 승리에 본질적인 것처럼 보인다. 이 자유는 그 기원이 당연히 종교개혁에, 기존 교회와 전통적 성직에 대한 공격에 있다. 그러나 그 자유는 개혁자들의 책임은 아니었다. 그 자유는 그들의 의도를 넘어선 것이다. 거룩한 연방은 자코뱅의 덕의 공화국과 마찬가지로 자유주의적이고자 하지도 않았고 자본주의적이고자 하지도 않았다. 자본가와 자유주의 정신의 확산은 급진적 열광주의의 쇠락과 나란히 진행되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급진적 열광주의는 쇠락하기 전 몇 년 동안 새로운 경제와 정치의 규율적 기초를 형성하는데 도움을 주였다. 어떤 의미에서 세속적 금욕주의는 기업가적 자유에 선행했다. 이는 정치적 열망이 자유주의에 선행한 것과 같다. 저속한 도덕가들이 규율과 자유사이의 역사적 상호의존성, 더 정확히 말하면 규율과 모종의 자유 사이의 역사적 상호의존성을 진부한 상투어로 만들었을지라도 그것들 사이에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성질이 있다.
2 사회 변화의 경험에 대한 대응으로서 청교도주의
388 칼빈주의의 효과는 사람들이 이미 세상과 자아의 위험에 대해 가지고 있던 지각을 신학적 용어로 확인하고 설명하는 것이었을 가능성이 더 큰 것으로 보인다. 칼빈주의가 불안에 시달리는 개인에게 "적절한" 선택지가 된 것은 이러한 확증 때문만은 아니고 성도가 불안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을 제공했다는 사실 때문이도 했다. 청교도의 "방법"은 자기 통제와 영적 전쟁의 "단련"을 통해서 평온과 확신으로 이어졌다. 그러고나서 그것은 그에 상응하는 치안판사와 혁명의 "단련"을 통해서 거룩한 연방의 정치적 질서로 이어졌다.
390 바꾸어 말하면 청교도주의는 무질서와 불안의 경험에 대한 하나의 가능한 대응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것은 성도들과는 다른 제삼자가 다른 견지에서 볼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련의 경험들을 지각하고 대응하는 하나의 가능한 방식이다. 예를 들어, 성도를 그토록 두렵게 했던 바로 그 자유들 즉 이동, 사치, 개성, 재치를 분명히 누렸던 상인들도 있었고 젠틀맨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자유들이 함양된 르네상스 도시들과 궁정들을 열심히 찾아나선 상인들도 있었고 젠틀맨들도 있었다. 틀림없이 많은 자본가들과 자유주의자들은 바로 이러한 새로운 도시성으로부터 왔던 것이다. 제임스1세의 궁정이 왜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사악하고 부덕한 반면에 영국 젠트리의 일부구성원들에 대해 그토록 매력을 가졌는지를 특정한 경우를 들어 설명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급성장하는 런던 도시의 "사악함"을 증오하고 청교도 회중에서 덕을 갖춘 형제들과 안정감 및 자신감을 찾아나선 반면에 그 도시에 새로 온 사람들 중 일부는 군중에 섞여 함께하게 되거나 흥미로운 지하세계를 탐험하는 이유는 더 이상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말할 수 있는 것은 이 사회 변혁의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 중 일부가 칼빈주의 이데올로기에서 그들에게 적합한대응을 찾았다는 것뿐이다. 잉글랜드에서 청교도주의는 변화하는 세계 및 그들 자신의 삶의 통제를 찾는 노력이었고 따라서 질서, 방법, 규율에 대해 성도들이 가지고 있는 끈질긴 관심이었다.
3. 정치적 급진주의로서 청교도주의
391 그러나 규율과 질서에 대한 청교도의 관심은 역사에서 유일한 것이 아니다. 성도의 시대부터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많은 무리의 정치적 급진파들이 자기 자신과 세계를 변혁하는 것을 초조하게 온 힘을 다해서 체계적으로 추구해 왔다. 그렇다면 성도의 선택이 16세기와 17세기의 영국인들이 내놓은 합리적 선택이라고 단순하게만 기술될 필요는 없다. 그것은 유사한 역사적 환경에서 다른 사람들이 내놓은 다른 선택들과 체계적인 연관성을 가질 수 있다.
391 청교도 성도들은 영국의 역사에서 나타났고 그들은 옛날 질서의 붕괴를 말해준다. 이 붕괴는 독학하는 프로테스탄트들도 정치적 추방자들도 평신도 형제들의 자발적 결사체들도 생각할 수 없었다. 이와동시에 그 붕괴는 성도의 선택이 어떤 개별적인 경우에도 예측 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합리적이고 적절해 보이는 맥락을 가지고 있다는 점만은 제공한다. 그러나 이보다 더 나아가서 다음과 같이 주장하는 것이 가능하다. 즉 옛 질서가 붕괴된다고 고려해볼 때 일부 영국인들이 그와 같은 합리적 선택을 하려 할 것이라는 점은 예측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이보다 더 나아가서 다음과 같이 주장할 수 있다. 즉 유사한 역사적 환경이 가정된다면 프랑스인이든 러시아인이든 유사한 선택을 할 것이라는 점은 예측 가능한 일이다. 18세기의 프랑스인이 자코뱅파와 행동하는 시민이 되었고 20세기의 러시아인이 볼셰비키와 직업 혁명가, 그 다음에 레닌의 말로 표현하면 "지도부”, “관리부", "통제부"가 된 것과 같은 방식으로 그리고 그와 같은 많은 이유로, 영국인은 청교도가 되었고 그 다음에 경건한 치안판사, 장로, 아버지가 되었던 것이다. 칼빈주의 성도들은 무엇보다도 통제와 자기 통제를 추구한 이러한 혁명적 치안판사들의 무리 중 첫번째에 해당하는 사람들이었다. 성도는 다른 문화적 맥락에서 시간을 달리하는 순간에 다른 형태를 취할 것이고 다른 혁명을 행할 것이다. 그러나 세계를 바라보고 대응하는 급진파의 방식은 이 같은 지각과 대응을 처음 생성한 경험들이 널리 공유될 때마다, 여러 무리의 사람들이 갑자기 옛날의 확실성으로부터 해방될 때마다 언제나 거의 확실하게 널리 공유될 것이다.
4. 청교도적 급진정치의 일반적 모형
400 이제 영국 청교도들의 역사에 역사에 기초를 두고 적어도 부분적으로 그들 자신만의 용어로 발전된 급진적 정치의 모형을 제안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한 모형은 급진주의의 결정적 특징을 일반적 역사 현상으로 드러내고 청교도들, 자코뱅들, 볼셰비키들, 그리고 아마도 다른 집단들까지도 여기서 시도된 것보다도 더 체계적으로 비교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1] 이런 저런 형태의 봉건적, 위계적, 가부장적, 법인적 전통사회로부터 이런저런 형태의 근대 사회로 전환하는 어떤 지점에 스스로를 선택된 인간, 성도로 보고 새로운 질서와 비개인적 이데올로기적 규율을 추구하는 "낯선 사람들"의 무리가 나타난다.
[2] 이 사람들은 비범한자기 확신과 과감성에 의해 동료들과는 구분된다. 성도들은 옛 질서의 일상적 절차와 습관적 신념을 거부할 뿐만 아니라 전통의 쇠락속에 경험된 다양한 종류의 "자유", 이를테면 개인적 이동성, 개인의 사치, 자기실현, 절망, 불안, 동요와도 단절한다. 선택받은 무리는 그 구성원들을 엄격하게 훈육하고 그들에게 스스로를 훈육하는 법을 가르침으로써 확실성과 자신감을 추구하고 획득한다. 성도들은 이 규율을 지속하는 자신의 능력을 미덕의 신호로, 이 미덕을 하나님의 은혜의 신호로 해석한다. 전환기의 혼란 속에서 그들은 그들 자신 속에서 예정, 흔들리지 않는 확고한 목적의식, 궁극적인 승리의 확신을 발견한다.
[3] 선택받은 무리는 현재 존재하는 세계를 전쟁 중인 세계인 것처럼 마주한다. 그 구성원들은 사회 변화의 압박과 긴장을 갈등과 논쟁의 견지에서 해석한다. 성도들은 그것들에 대해 적의를 느끼는 것밖에 없고 그에 따라 훈련하고 스스로 준비한다. 그들은 경계를 늦추지 않고 지속적으로 기회를 계산한다.
[4] 선택받은 무리의 조직은 그들이 추구하는 새로운 질서의 본성을 제시하고 또한 현재 투쟁의 필요성을 반영한다.
① 사람들은 그들의 신앙을 증거하는 언약에 서명함으로써 그 무리에 가입한다. 그들의 새로운 헌신은 공식적이고 비개인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이다. 그것은 그들이 의견과 의지에 토대를 두지 않은 옛날의 충성, 즉 가족, 길드, 지역 그리고 영주와 왕에 대한 충성을 포기하는 것을 요구한다.
② 이 헌신은 자발적이고 사람들이 훈련을 받을 수 있는 의지행위에 기초하는 것이지 태생적인 것이 아니다. 어떤 후원을 받아서 선택받은 무리의 지위를 차지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선택을 받으려면 사람들은 선택을 해야 한다.
③ 예비 성도의 헌신과 열정은 시험되고 입증되어야 한다. 따라서 성도다움을 선택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고 선택받은 무리는 배타적이며 그 수가 적고 그 구성원들 각각은 미덕과 자기 규율에서 매우 "재능"이 있다. 사람들이 성도로서 받아들여진 후에도 여전히 그들은 가능한 모든 경우에 경건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들은 조사 대상이고 한 번 거부되었을 수 있으므로 언제든지 제거될 수 있다. 따라서 성도들이 유지하는 경건한 긴장은 관습과 전통과 함께 할 때 안전하고 편안하다고 느끼는 속류 인간들의 무감각과는 생생한 대조를 이룬다.
④ 선택받은 무리 안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다. 지위는 거의 중요하지 않다. 회원들은 그들의 경건과 당면한 일에 대한 공헌으로 측정된다.
[5] 성도다움을 실행하면 새로운 종류의 정치가 생겨난다.
① 선택받은 무리의 활동은 그 목표에 계속해서 접근하거나 다가가려고 애를 쓴다는 의미에서 목적적이고 프로그램적이며 진보적이다. 이 활동은 기성 형식을 고려하지 않고 객관적 기준 즉 계시되고 미리 결정된 서면 기준에 따라 정치 또는 종교 세계를 재건하거나 개혁하기 위해 성도다움을 보편화하려는 조직적 노력으로 정의될 수 있다.
② 성도들의 활동은 체계적이고 조직적이다. 정치는 일종의 일처럼 되고 이 일은 선택받은 무리에게 장기간의 헌신을 요구한다. 일을 할 때 그들은 모든 순수한 개인적 느낌을 억제해야 하고 규율적인 방식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 그들은 인내심을 갖고 세부 사항에 관심을 가지는 법을 배워야 한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규칙적으로 열심히 일해야 한다.
③ 관습적인 절차에 대한 폭력적인 공격은 성도들에게 정치적으로 실험할 수 있는 자유를 준다. 그러한 실험은 실험의 우선적인 목적에 의해 통제되고 실험에 참여할 권리는 이전에 무리의 규율을 받아들인 소수의 선택된 사람으로 제한된다. 이것은 정치적 자유 놀이를 허락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새로운 종류의 활동, 즉 공개 활동과 비밀 활동의 길을 함께 열어주는 것이다. 성도들은 정치를 기업가처럼 한다.
[6] 선택받은 무리의 역사적 역할은 이중적이다. 외부적으로 말하면, 성도들의 무리 는사회 재건을겨냥하는 정치적 운동이다. 구질서에 대한 최후의 공격을 주도하는 것은 성도들이고 이들의 파괴성은 이들이 신세계에 대한 총체적 견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더욱 총체적이다. 내부적으로 말하면, 경건과 예정은 사회 변화의 고통에 대한 창조적 대응이다. 규율은 자유와 "정착되지 않음"을 치유하는 약이다. 낭만적인 사랑이 부부 가족의 유대를 강화하는 것처럼 이데올로기적 열정은 가족이 아닌 형제들의 통합을 확립하고 사람들이 전통적 관계 체재 밖에서 안정감을 느끼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책 밑줄긋기 > 책 2023-25'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에른스트 카시러: 상징형식의 철학 제3권: 인식의 현상학 (0) | 2023.03.02 |
---|---|
남무성: Paint it Rock 2 (0) | 2023.03.02 |
강유원: 플라톤, 현실국가를 캐묻다 ━ 《국가》 탐구 (0) | 2023.02.28 |
메리 비어드: 고전에 맞서며 ━ 전통, 모험, 혁신의 그리스 로마 고전 읽기 (0) | 2023.02.28 |
케네스 O. 모건: 옥스퍼드 영국사 (0) | 2023.02.19 |
후지타 쇼조: 천황제 국가의 지배원리 (0) | 2023.02.17 |
오구라 가즈오: 일본외교의 과오 (0) | 2023.02.14 |
토마스 만: 파우스트 박사 2 (0) | 2023.02.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