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원: 플라톤, 현실국가를 캐묻다 ━ 《국가》 탐구
- 책 밑줄긋기/책 2023-24
- 2023. 2. 28.
출간사
서문
서론 또는 문제 제기: 올바름에 관한 의견들
1. 페이라이에우스로 내려감 327a~328a
2. 케팔로스: 관습에 따른 올바름(1) 328b~331c
3. 폴레마르코스: 관습에 따른 올바름(2) 331d~336a
4. 트라쉬마코스: 강자의 편익으로서의 올바름과 세상의 이치 336b~354c
5. 올바름은 부정의보다 나은가? 357a~367e
제I부 공동체의 구성과 올바름
1. 공동체의 성립
1.1. 최소한도의 나라 368a~372b
1.2. 호사스런 나라 372c~374d
2. 공동체의 수호자들
2.1. 수호자들의 성향 374e~376c
2.2. 수호자들의 교육 내용
2.2.1. 시가에 의한 교육 376c~392c
2.2.2. 시가의 이야기 투 392c~398b
2.2.3. 노래와 서정시가의 양식 398c~401c
2.2.4. 시가 교육이 중요한 까닭 401d~403c
2.2.5. 체육에 의한 교육 403c~410b
2.2.6. 혼의 두 측면을 위한 시가와 체육의 혼화 410c~412b
2.3. 수호자들의 선출과 목표
2.3.1. 수호자들의 구분 412c~415d
2.3.2. 수호자들의 삶의 방식 415e~421c
2.3.3. 한 나라를 지키는 참다운 방책과 교육 421d~427c
3. 한 나라와 한 사람에서의 올바름
3.1. 한 나라에 있어 세 가지 성질의 것들과 올바름 427d~434c
3.2. 영혼이 지니고 있는 세 가지 성질의 것들과 올바름 434d~445e
4. 공동체의 조직 형태
4.1. 남녀의 공동관여 449a~457b
4.2. 공동체를 위한 가족 제도 457b~466d
4.3. 전쟁 규범 466e~471b
제II부 공동체의 궁극적 근거와 철학적 정치가
1. 철학적 정치가의 통치
1.1. 역설: 정치 권력과 철학의 합치 471c~474b
1.2. 철학자의 정의 474c~480a
1.3. 철학자의 성향 484a~487a
1.4. 철학자와 당대 사람들과의 불화 487b~496e
1.5. 철학적 정치가의 가능성 모색 497a~502c
2. 좋음의 이데아와 철학적 정치가의 임무
2.1. 배움의 최고 대상이자 도덕적 목적 : 좋음의 이데아 502d~506c
2.2. 좋음의 소산: 태양의 비유 506d~509c
2.3. 의견과 지성에 의한 앎: 선분의 비유 509d~511e
2.4. 철학적 정치가의 도야 과정: 동굴의 비유 514a~517a
2.5. 세 비유의 종합과 철학적 정치가의 임무 517b~521c
3. 철학적 정치가의 교육
3.1. 예비 교과 521d~531c
3.2. 변증술 531d~534e
3.3. 선발 및 교과 배정 535a~543c
제III부 나쁜 상태의 네 가지 정체와 시민들
1. 정체 변화의 방식 543d~547a
2. 명예 지상 정체 547b~550b
3. 과두 정체 550c~555a
4. 민주 정체 555b~561e
5. 참주 정체 562a~576b
제IV부 참된 올바름과 궁극적 보답
1. 올바른 자와 올바르지 못한 자의 행복 576c~580c
2. 혼의 부분들에 따른 즐거움과 지혜를 좋아하는 사람의 즐거움 580d~583a
3. 참된 즐거움과 거짓된 즐거움, 그것들 각각에 따른 삶 583b~588a
4. 올바름이 이로운 까닭과 올바른 나라의 존재 588b~592b
5. '본'을 본받는 방법 595a~608b
6. 혼의 불사와 올바름에 대한 궁극적 보답
6.1. 혼의 불사 608c~612a
6.2. 올바름에 대한 궁극적 보답 612b~621b
추기追記
원전 및 참고문헌
6.2. 올바름에 대한 궁극적 보답 612b~621b
382 플라톤의 텍스트의 특정 부분에서는 종교와 철학의 구별을 이야기하는 것이 무의미하다. 플라톤은 혼의 지혜에 대한 사랑을 이야기하면서 '신이 된 인간'인 글라우코스를 거론했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육신을 입게 되면서 혼이 훼손되기에, 순수한 상태를 회복하려면 혼이 지혜를 사랑해야 하고, 그렇게 해야만 혼이 '신적이며 사멸하지 않고 영원한 것'이 된다는 것이다. 그런 혼을 가지게 되면 '신을 닮은 사람 (homoiōsis theōi)이 되는 것이다. 폴리스의 최종 근거가 신을 닮은 인간이라면 《국가》는 구체적인 정치적 현실과의 연관을 잃고 반정치적인(apolitical) 텍스트가 되고 만다. 이것은 속세의 철학이 아니다. 어쨌든 신을 닮은 인간이 가진 능력은 대단한 것이다. 그는 보이는 것과 실제로 그러한 것을 분별할 줄 알게 된다. 모든 것을 제대로 보게 된다. 그는 신을 닮으려 하는 사람이니 신들의 사랑을 받는 사람이기도 하다. 신을 닮으려 하는 사람이 신에게는 홀대받지 않겠지만 인간들에게는 그리 좋은 대접을 받을 것 같지는 않다. 신을 닮으려 하는 사람은 인간들한테도 상을 받을 것이라는 소크라테스의 생각은 동의하기 어렵다.
마지막으로 소크라테스는 '에르'라는 한 용감한 남자의 이야기를 꺼냈다. 죽은 사람의 혼이 어디로 가는가에 관한 이야기다. '신비스런 곳(topos daimonion) 또는 초원', '올바른 혼들이 오르는 오른쪽 길', '올바르지 못한 혼들이 내려가는 왼쪽 길', ‘하늘 쪽에서 순수한 혼들이 내려오는 길', '땅 쪽에서 더러운 혼들이 도착하는 곳'으로 이루어진 장소가 등장한다 이것은 그냥 믿는 수밖에 없다. 사람이 죽으면 신비스런 곳에 간다, 우리는 오른쪽 위로 가야 한다는 것만 기억하면 된다. 그쪽으로 가지 못한 혼들은 벌을 받는다. 그 벌의 내용이 몹시 구체적이지만 그리 고통스러워 보이지는 않는다. 생전에 잘못을 저지르지 말아야지 하고 굳은 결심을 할 만큼은 아니라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사람들 각자가 올바르지 못한 짓을 한 만큼 벌을 받는다고 말했는데 바로 우주적 차원에서의 정산 작업이다. 에르의 이야기는 '알키노스가 듣게 된 이야기'와 대비된다. 이것은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뒷세이아》에서 오뒷세우스가 표류하여 닿은 스케리아 섬의 왕 알키노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오뒷세이아》 제9권에서 제12권에 걸쳐있는 것으로 일반적으로는 '길고 지루한 이야기'를 뜻하지만 저승을 겪은 사람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에르의 이야기와 같은 맥락에 있다. 소크라테스가 여기서 호메로스의 서사시에 나오는 이야기를 거론한 것은, 그것에 에르의 이야기를 대립시킴으로써 당대 사람들에게 각인되고 있던 서사시의 내용을 재해석하거나 전복하려는 의도일 수 있다.
불교에서는 업業이 있다고 말한다. 업은 우리 인간의 행위 자체이거나 행위의 결과이다. 이것은 미리 정해져 있지 않다.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것은 결정론을 피해 가는 것이다. 다 정해져 있으니 애써 봐야 소용없다고 하면 인간은 할 일이 없다. 업이라는 것은 자유의지의 산물이다. 자유의지에 따른 행위는 결과에 따라 죽은 다음에 보상을 받는다. 사후 정산 체계다. 아무리 착한 일 해 봐야 죽으면 소용없다고 하면 허무주의가 되어 버린다. 석가모니는 현명하게도 결정론과 허무주의의 중간을 간 것이다. 이것이 중도中道이다. 절대자를 전제하지 않고도 윤리적인 행위를 할 수 있도록 만든 이론이다. 사후세계를 인정하지 않고 '죽으면 끝'이라 하면 허무주의다. 어떤 것도 할 유인이 안 생기거나, 아무렇게나 할 유인이 생긴다. 자유의지를 마련함으로써 결정론을 피하고 사후세계를 마련함으로써 허무주의를 피했다. 어찌 보면 하느님께서 다 결정하신다고 믿는 게 편할 수도 있다. 기독교는 결정론이다. 신 결정론에서 권능은 신이 가지고 있다. 기독교나 이슬람교 신자들이 윤리적으로 제일 위험하다. 모든 게 신의 뜻에 달려 있으니 얼마든지 세속의 윤리 도덕을 벗어날 수 있다.
불교는 행위 자체와 사후 정산을 한 통으로 본다. 이것을 통세계론通世界論이라고 한다. 플라톤이 이것을 쓰고 있다. 이것은 플라톤 고유의 창안도 아니고 그 당시에 많이 썼던 방식이다. 우주를 다스리는 인격적인 신을 전제하지 않고도 우주를 윤리화하는 방법이다 살아서 착한 일을 하면 죽어서 보상받는다는 뻔한 이야기 같은데, 이 뻔한 이야기를 사람들이 잘 믿지 않는다. 어쨌거나 '하루살이 혼들'인 우리는 '다이몬을 선택'해야만 한다. 다이몬은 각자의 혼에 따라붙어 그 운명을 지키는 수호신을 가리킨다. 이 선택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에르의 이야기에는 몇몇 사례가 등장했다. 아이아스, 아가멤논, 아탈란타, 에페이오스, 테르시테스의 혼은 대부분 익숙한 전생의 습관에 따라 선택을 하였다. 전생의 습관이 선택에 영향을 미친다. 달리 말하면 살아서 좋은 습관을 들여야 죽어서 선택을 잘 한다는 것이다. 태어난 습성을 전혀 고치지 못한 상태에서 죽으면 태어났을 때나 죽을 때나 똑같은 수준의 사람이고, 죽어서 선택을 할 때에도 마찬가지다. 그가 다시 태어난다 해도 그는 이전에 태어났을 때와 아무런 차이가 없다. 천 번, 만 번을 다시 태어나도 전혀 달라지지 않은 인간으로 살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전생에서의 습관이 그 다음 생을 이어 붙이니 습관에 따라 생의 질이 정해진다.
이로써 모든 이야기가 끝났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이야기를 마쳤고 플라톤은 그 이야기를 이렇게 기록하였고, 우리에게까지 전해졌다. "그리하여 이 이야기가 소실되지 않고 보전되었으니"에서 '이 이야기'는 지금까지의 이야기 전부를 가리킬 수도 있고 에르 이야기를 가리킬 수도 있다. 어떤 것을 가리키든 마지막으로 제시된 것은, 살아서 혼을 순수한 상태로 만들고 올바름을 지켰던 사람은 죽어서도 훌륭한 상태로 있게 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은 살아서의 삶이나 죽어서의 삶 모두에 대한 궁극적인 보답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이를 믿는다면, 그것이 우리를 또한 구원해 줄것"이다. 이야기로써 구원을 얻는다. 엄청난 이야기다.
소크라테스는 '이야기의 보전'이 지혜를 사랑하는 자가 해야 할 과제라 천명했다. 지혜를 사랑하는 자는 이 이야기를 보전하는 것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설득할 의무도 있을 것이다. 이 이야기에 설득된 자들은 '잘 지낸다'(eu zēn)는 것을 궁극 목적으로 삼아 인간들과는 물론 신과도 화목하게 지낼 것이며, 살아서나 죽어서나 올바르게 살았던 보답을 받게 될 것이다. 이야기를 보존하는 것, 우리가 살고 있는 공동체에서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좋은 것인지를 보존하는 것, 사실 이것은 철학자가 하는 일이다. 앞날을 제시하는 것이 철학자의 임무인지는 잘 모르겠다. 안 가 본 길들을 철학자가 갈 수 있겠는가. 안 가 본 길들은 정치가이 가는 것이다.
추기追記
394 플라톤의 세 대화편들에 나타난 사회·정치 체제에 관한 논의를 정리한 지금, 정치학적 관점에서 그가 파악한 현실의 맥락들을 살펴보기로 하자. 《국가》가 처한 상황은 민주정의 전개이다. 플라톤은 이것이 되돌릴 수 없는 흐름이라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아테나이 민주정의 결정적 계기는 클레이스테네스의 개혁이었다. 그는 정치적 선택을 조직하는 방식을 개조하였고, 정치적 선택을 아테나이 전래 집단인 데모스에 전체적으로 할당하였다. 여기서 민주정은 근대의 개인주의 방식이 아닌 집단의 선택으로 작동하였다. 전통과 새로움의 절묘한 결합이었던 것이다. 이때부터 칠십여년 후 아테나이는 민주정의 정점에 이르렀고 이것이 오늘날에는 민주정의 전범으로 찬미받지만 오늘날과 달리 법적 인격과 대의 개념이 결여되어 있던 고대 사회에서 민주정은 극도의 직접성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개인의 권리와 책임 또한 직접적이어서 체제가 개인에게는 가혹한 것일 수 있었으며 지도자는 시민 개인들 각각의 철저한 지지에 기반할 때에만 권력을 가질 수 있었다.
클레이스테네스 이후로 민주정 체제에 숨은 문제는 '쾌락'과 연관된 부의 문제였다. 아테나이가 아무리 상업이 발달하였다고 하여도 부의 원천은 토지였으며 민주정 역시 이것을 둘러싼 싸움에서 시작되었다. 정치는 본래 경제적 자원, 사회적 지위재, 자원과 지위재의 획득과 접근통로 등을 분배하는 힘의 쟁투이다. 아테나이에서는 정치적 투쟁의 핵심인 부의 원천을 둘러싼 분배방식의 쟁투가 민주정으로 봉합되었고, 전쟁 시기에는 일당지급제도(misthophoria)라는 편법이 등장하기도 하였는데 이는 가난한 사람들로 충당된 국가의 핵심인력으로서의 해군에 대한 사회적 지위 부여 문제와도 얽혀 있는 것이다. 부를 분배하는 방식은 민주정을 통하여 새롭게 되었으나 부의 원천 자체는 토지 이외의 것이 획기적으로 생겨나지 않았다. 기술혁신이 불가능했던 고대 경제는 약탈 경제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고, 이것이 펠로폰네소스 전쟁 시기에 제국주의로 표출된 것이다.
민주정의 지도자가 가진 문제는 권력 획득의 과정과 기술에 있다. 달리 말해서 정치적 기술로서의 연설을 어떻게 평가하고 인정할 것인가, 오늘날의 술어로 표현하면 '대중영합주의'의 문제다. 아테나이는 발전된 국가가 되면서 개인의 노력과 업적, 부와 사회적 배경의 지위, 지위재 획득 통로로 등장한 교육 등이 주요한 사회적 의제로 등장하였다. 여기서 두드러진 것은 연설술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이 잘 보여주고 있듯이, 한 개인의 내면적 심성의 특성이나 도덕성보다는 대중을 설득하고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는 기술이 민주정에서는 탁월한 정치술의 중심을 이룬다.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체제의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라 할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플라톤이 이를 배척한 것은 체제의 요체를 곧바로 겨냥한 것이다. 더 나아가 플라톤은 민주정이 실현한 일종의 '세계의 탈주술화'(Entzauberung der Welt)를 되돌리려 하였다. 주지하듯이 민주정은 절차적 합리성만을 최종심급으로 삼는다. 다시 말해서 민주정에서는 최종적 정초가 되는 이념이 없는데 없는데 플라톤은 '좋음의 이데아'라는 이념을 도입한다. 이는 탈주술화의 귀결인 민주정을 다시 주술화하려는 시도이다. 《국가》의 주제가 '올바름'이라는 점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민주정에서 생겨난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은 여러 측면에서 제시될 수 있다. 첫째는 권력의 배분 방식에 집중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 마키아벨리, 막스 베버―책임윤리를 강조함으로써—모두 이 문제에 집중하여 의사결정의 주체, 의사결정 방식 등의 변화를 시도하였다. 둘째는 반정치적(anti-political) 접근 방식이다. 이는 플라톤처럼 초월적 형상 세계를 정치권력의 궁극적 원천으로 제시하고 철학적 통치자의 탁월함에 의존하는 것인데, 일견 베버가 말하는 신념윤리만으로써 통치하는 방식이다. 플라톤의 방책이 과연 반정치적인 접근인지에는 의문이 있다. 그의 철학적 통치자는 초월적 이념을 아는 현인이기는 하지만, 앞서 사회·정치 체제에 관한 세 대화편에 관한 조망에서 보았듯이 정치술을 아는 기술자, 즉 다른 종류의 정치가이기 때문이다. 셋째는 정치와는 무관한(non-political) 방식이다. 이는 지상에 존재하는 일체의 것을 거부하는 태도를 취하거나 국가를 현전하는 악의 제거를 위한 최소한의 필요악으로서만 인정하는 태도이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에도 피안의 세계에 진정한 국가를 설정해야만 하고 그에 따라 정권政權과 교권敎權의 관계를 정당화하는 정치신학이 반드시 요구된다. 중세의 어중간한, 즉 정치와 무관한 방식이 결코 아니고 동시에 반정치적인 성격을 띠면서도 현실에 있어서는 권력의 배분방식에 집착했던 시대가 지나고 근대에 이르렀을 때 많은 사상가들은 이를 폐기하고 공론장에서의 쟁투를 통한 정치권력의 획득을 시도하였다. 그들이 가졌던 담론의 무기들은 인격신 종교를 추방하고 법적 인격으로서의 국가를 수립하는 것(홉스), 종교적 신념에 대한 일정한 관용(로크), 계몽주의(반종교주의 및 기적 추방)와 자연과학 등이었다. 그러나 종교가 사라진 자리에 역사와 신화를 들여온 역사주의와 낭만주의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물론 선행하는 모든 시도들을 종합적으로 집약한 법실증주의, 즉 근대적 법치국가의 이념이 이를 물리친 강력한 힘이기는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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