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아퀴나스: 대이교도대전 1

 

대이교도대전 1 - 10점
토마스 아퀴나스 지음, 신창석 옮김/분도출판사

『대이교도대전』 해제
『대이교도대전』 제I권 해제

본문과 역주
제1장_지혜로운 자의 과업
제2장_필자가 이 저술에서 의도하는 것
제3장_신의 진리가 알려질 수 있는 방식
제4장_자연적 이성이 도달하는 신에 대한 진리는 인간이 신앙하기에도 적합하도록 주어져 있다
제5장_이성으로 탐구할 수 없는 것은 신앙으로 깨닫기에 적합하도록 인간에게 주어져 있다
제6장_신앙의 진리들이 이성을 넘어서더라도 그것들에 동의하는 것은 경솔한 짓이 아니다
제7장_이성의 진리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진리와 상반되지 않는다
제8장_인간 이성은 신앙의 진리와 어떻게 관계하는가
제9장_이 저술의 진행 순서와 방식
제10장_신이 존재한다는 것은 자명한 것이기 때문에 증명될 수 없다고 말하는 견해
제11장_앞의 견해에 대한 논박과 논증의 해결
제12장_신의 존재는 증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신앙을 통해서만 유지될 뿐이라는 견해
제13장_신의 존재를 입증하기 위한 논거들
제14장_신을 인식하려면 제거의 길을 사용해야 한다
제15장_신은 영원하다
제16장_신에게는 수동적 가능성이라고는 없다
제17장_신에게는 질료가 없다
제18장_신 안에 합성이라고는 전혀 없다
제19장_신에게는 강제적이거나 본성을 넘어서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제20장_신은 물체가 아니다
제21장_신은 그 자신의 본질이다
제22장_신에게는 존재와 본질이 동일하다
제23장_신에게는 우유가 없다
제24장_신의 존재는 어떤 실체적 차이의 부가를 통해서 규정될 수 없다
제25장_신은 그 어떤 유(類)에도 속하지 않는다
제26장_신은 만물의 형상적 존재가 아니다
제27장_신은 어떠한 물체의 형상도 아니다
제28장_신의 완전성에 대하여
제29장_피조물의 유사성에 대하여
제30장_어떤 이름들이 신을 서술할 수 있는가
제31장_신의 완전성과 신적 이름의 다양성은 신의 단순성과 모순되지 않는다
제32장_신과 다른 사물에 대해 일의적으로 서술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제33장_모든 이름이 신과 피조물에 대해 순수 다의적으로 언명되는 것은 아니다
제34장_신과 피조물에 언명되는 이름은 유비적으로 언명된다
제35장_신에게 언명되는 여러 이름은 동의어가 아니다
제36장_우리의 지성은 어떻게 신에 대한 명제를 형성하는가
제37장_신은 선하다
제38장_신은 선성 그 자체다
제39장_신 안에는 악이 있을 수 없다
제40장_신은 선한 모든 것의 선이다
제41장_신은 최고선이다
제42장_신은 하나다
제43장_신은 무한하다
제44장_신은 지성적이다
제45장_신의 인식 행위는 곧 그의 본질이다
제46장_신은 자기 본질을 통해서만 인식한다
제47장_신은 자기 자신을 완전하게 인식한다
제48장_신은 자기 자신만을 우선적으로 그리고 그 자체로 인식한다
제49장_신은 그 자신과는 다른 것도 인식한다
제50장_신은 모든 사물에 대한 고유한 인식을 가지고 있다
제51장과 제52장_지성적 대상들의 다수성이 어떻게 신의 지성 안에 있느냐는 물음에 대한 근거
제53장_앞의 의심에 대한 해결
제54장_하나이고 단순한 신의 본질이 어떻게 가지적인 모든 것의 고유한 유사상이 되는가
제55장_신은 모든 것을 동시에 인식한다
제56장_신의 인식은 습성적인 것이 아니다
제57장_신의 인식은 추론적이 아니다
제58장_신은 합성과 분할을 통해 인식하지 않는다
제59장_언표될 수 있는 것들의 진리는 신에게서 제외되지 않는다
제60장_신은 진리다
제61장_신은 가장 순수한 진리다
제62장_신의 진리야말로 제일의 최고 진리다
제63장_개별자에 대한 인식을 신에게서 제거하고자 하는 이들의 논변들
제64장_신의 인식에 관하여 설명해야 할 것들의 순서
제65장_신은 개별자를 인식한다
제66장_신은 존재하지 않는 것들도 인식한다
제67장_신은 미래의 우연적 개별자를 인식한다
제68장_신은 의지의 운동을 인식한다
제69장_신은 무한한 것들을 인식한다
제70장_신은 사소한 것도 인식한다
제71장_신은 악한 것도 인식한다
제72장_신은 의욕한다
제73장_신의 의지는 그 자신의 본질이다
제74장_신적 의지의 으뜸가는 대상은 신의 본질이다
제75장_신은 그 자신을 의욕함으로써 다른 것들도 의욕한다
제76장_신은 하나의 의지 행위로 자신과 타자를 의욕한다
제77장_의지 대상의 다수성은 신의 단순성과 모순되지 않는다
제78장_신의 의지는 개별적 선에까지 확대된다
제79장_신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도 의욕한다
제80장_신은 자신의 존재와 선성을 필연적으로 의욕한다
제81장_신은 타자를 필연적으로 의욕하지는 않는다
제82장_신이 자신과는 다른 것을 필연적으로 의욕하지 않으면 부적절한 귀결로 이르게 되는 논증들
제83장_신은 자신과는 다른 어떤 것을 가정의 필연성에서 의욕한다
제84장_신의 의지는 그 자체로 불가능한 것을 지향하지 않는다
제85장_신의 의지는 사물에서 우연성을 제거하지도 않으며, 사물에 절대적 필연성을 부과하지도 않는다
제86장_신의 의지에 대해서도 이유를 지적할 수 있다
제87장_그 무엇도 신적 의지의 원인이 될 수는 없다
제88장_신에게는 선택의 자유가 있다
제89장_신에게는 정념의 감정이 없다
제90장_신에게는 즐거움과 기쁨이 있지만, 그것들이 신의 완전성과 모순되지는 않는다
제91장_신에게는 사랑이 있다
제92장_덕은 어떤 방식으로 신 안에 있게 되는가
제93장_신에게는 행위를 다루는 윤리적 덕들이 있다
제94장_신에게는 관상적 덕들이 있다
제95장_신은 악을 의욕할 수 없다
제96장_신은 아무것도 증오하지 않으며, 어떤 사물을 증오한다는 것도 신에게 어울릴 수 없다
제97장_신은 살아 있다
제98장_신은 그 자신의 생명이다
제99장_신의 생명은 영구적이다
제100장_신은 복되다
제101장_신은 그 자신의 지복이다
제102장_신의 지복은 완전하고 독특하며 다른 모든 지복을 능가한다

 


제1장 지혜로운 자의 과업

1. "내 입은 진리를 목상하고 내 입술은 불경不敬을 역겨워한다"(잠언 8,7).

2.a) 철학자가 사물에 이름을 부여하는 데 있어 따라야 한다고 여기던 일반 대중의 통상적인 어법에 따르면, 사물을 올바로 질서 잡고 잘 다스리는 이들이야말로 '지혜로운 자'라고 일컫는다. 그리하여 철학자는 "질서 잡는 것이야말로 지혜로운 자에 속한다"는 개념을 사람들이 지혜로운 자에 대해 생각했던 것들 가운데 하나로 여긴다.
  b) 목적으로 향하는 모든 것을 다스리고 질서 잡는 규칙은 바로 그 목적으로부터 취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 사물 저마다의 목적은 그것의 선이기에 사물은 자신의 목적에 적합하게 질서 지어졌을 때 비로소 가장 잘 정리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기술에서도 이런 것을 발견하는데, 자체 내에 다른 기술들의 목적을 내포하고 있는 그런 기술은 또한 그 다른 기술들을 다스리고 지배한다. 이와 같이 의술은 약제사의 기술을 지배하고 질서 잡는데, 이 의술이 추구하는 건강이야말로 약제사의 기술에 의해 마련되는 모든 약물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조선술에 대한 항해술의 관점에서도 이와 유사한 것이 드러나며, 기마술과 무기 제작술에 대한 전술의 관점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다른 기술을 지배하는 기술은 이렇게 '지배하는 기술'이란 의미에서 '건축술'과 같은 것이라 불린다. 이 때문에 '건축가'라불리는 기술자들도 자칭 지혜로운 자라고 한다.

3. a) 그렇지만 이와 같은 기술자들은 특정 사물의 개별적 목적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모든 사물의 보편적 목적에로까지 나아가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오직 구체적인 어떤 일에 대해서만 지혜롭다고 불린다. "나는 지혜로운 건축가로서 기초를 놓았습니다"라는 코린토 1서 3장 10절도 이런 의미로 말하고 있다.
  b) 그래도 단적으로 지혜로운 자라는 명칭은 오직 우주의 목적을 고찰하는 이를 위해 아껴 두는데, 이 우주의 목적은 곧 우주의 원리이기도 하다. 그래서 철학자에 따르면, '최고 원인'을 고찰하는 것이야말로 지혜로운 자의 과업이다.

4. a) 그러나 사물 하나하나의 궁극 목적은 그 사물을 최초로 만든 자나 움직이게 하는 자 자신이 지향하고 있는 바의 것이다. 나중에 설명되겠지만, 그러나 이 우주의 제일 창시자와 원동자는 바로 지성이다. 그러므로 우주의 궁극 목적은 지성이 좋아하는 것[선]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지성이 좋아하는 것은 진리다. 결국 온 우주의 궁극 목적은 진리임이 분명하며, 지혜는 무엇보다도 진리에 대한 고찰에서 비롯되지 않으면 안된다.
  b) 그래서 신적 지혜도 진리를 드러내기 위해 육신을 취해 이 세상에 왔노라고 증언하며, 요한복음 18장 37절에서도 "나는 진리를 증언하려고 태어났으며, 진리를 증언하려고 세상에 왔다"고 말한다.

5. 그러나 철학자는 제일 철학 또한 '진리에 관한 학문'이라고 규정하며, 그것도 어떤 임의의 진리에 관한 학문이 아니라, 모든 진리의 원천
이 되는 진리, 즉 존재하는 모든 것의 제일 원리에 관련되는 진리에 대한 학문이라고 규정한다. 그러므로 그러한 진리 역시 모든 진리의 원리다. 왜냐하면 사물은 존재 안에서와 마찬가지로 진리 안에서도 동일한 성향을 지니기 때문이다.

6. 그런데 상반되는 것들 가운데 하나를 추구하거나 다른 하나를 부정하는 것은 모두 동일한 학문에 속한다. 이는 마치 약이 건강을 북돋우는 동시에 질병을 물리치는 것과 같다. 따라서 지혜로운 자의 과업이 무엇보다도 제일 원리에 속한 진리를 숙고하고 또 그것을 다른 이들에게 알려 주는 것처럼, 이런 진리와 상반되는 거짓을 논박하는 것도 지혜로운 자의 과업이다.

7. 이리하여 서두에서 지혜로운 자의 이중 과업이 신적 지혜의 입을 통해 적절하게 지적된다. 그 이중 과업이란 [첫째] 진리라고 바꾸어 부를 수 있는 신적 진리를 신의 지혜에 대해 심사숙고하고 말하는 것인데, 신적 지혜는 '내 입은 진리를 목상하고'라는 말에서 그 진리에 대해 언급하며, [둘째] 진리와 상반되는 오류를 논박하는 것인데, 신적 지혜는 '내 입술은 불경을 역겨워한다'는 말에서 그 오류에 대해 언급한다. 여기서 불경은 신적 진리에 상반되는 거짓을 의미한다. 이 거짓은 '경건'이라고도 일컬어지는 종교와 상반되기 때문에, 종교에 상반되는 거짓은 '불경'이라는 이름을 얻는다.

 

제2장 필자가 이 저술에서 의도하는 것

8. 인간이 추구하는 모든 것 중에서 가장 완전하고 고귀하며, 가장 유익하면서도 즐거운 것은 지혜의 추구다.
  a) [지혜의 추구가] 가장 완전한 이유는, 인간이 지혜를 추구하는 데 헌신하는 한 이미 참된 지복의 일부를 소유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혜로운 자는 이렇게 말한다. "지혜에 머물러 있게 될 사람은 행복하다"(집회 14,22).
  b) [지혜의 추구가] 가장 고귀하다는 이유는, 인간이야말로 지혜를 추구함으로써 무엇보다도 "지혜로 모든 것을 만들어 낸" 신의 유사성에 다가가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사성은 사랑의 원인이므로, 지혜의 추구는 이런 친교를 통하여 무엇보다도 인간을 신과 결합하게 한다. 그래서 지혜서 7장 14절에서 지혜는 "사람들에게 한량없는 보물 지혜를 얻은 이들은 하느님의 벗이 된다"고 말한다.
  c) [지혜의 추구가] 가장 유익하다는 이유는, 우리가 지혜 자체를 통해 불사의 나라에 이르기 때문이다. 이유인즉, "지혜에 대한 갈망은 영구적인 나라로 데려가기 때문이다"(지혜 6,21).
  d) [지혜의 추구가] 가장 즐겁다는 것은, "[지혜]와 함께 지내는 데에 마음 쓰라릴 일이 없고, [지혜와] 같이 사는 데에 괴로울 일이 없으며 기쁨과 즐거움이 있기" 때문이다(지혜 8,16).

9. 결국 지혜로운 자의 과업이 우리의 고유한 능력을 넘어설지라도 우리에게는 신의 자비의 이름으로 그 과업을 착수할 자신감이 있으며, 가톨릭 신앙이 고백하는 진리를 우리 능력에 따라 알리며 이에 상반되는 오류를 배제하는 것을 우리의 의도로 삼고자 한다. 힐라리우스의 말을 빌리자면, "나는 이것, 즉 내 생애 제일의 과업이야말로 신 덕분이며, 나의 모든 말과 뜻이 신에 대해 말한다는 점을 의식하고 있다".

10. 그러나 오류를 하나하나 반박해 나가는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어렵다. 첫째, 우리는 오류를 범하는 개개인들의 신성모독적인 언명을 잘 알지 못하므로 바로 그들이 말한 것을 그들의 오류를 논박할 만한 근거로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방법은 교회의 옛날 학자들에 의해 이교도들의 오류를 논박하는 데 사용되었다. 그들은 스스로 이교도였거나 적어도 이교도들 틈에 살면서 그들의 가르침을 받았으므로 이교도들이 취한 입장들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11. a) 둘째, 이교도 가운데 마호메트교도나 비그리스도인과 같은 몇몇 사람들로 하여금 잘못을 깨닫게 할 수 있는 성경의 권위에 대해 그들은 우리와는 조금도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구약성경을 바탕으로 유대인에, 신약성경을 바탕으로 다른 이단에 반론을 제기한다. 하지만 그들은 [신약성경과 구약성경] 둘 중 그 어느 것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b) 따라서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찬성할 수밖에 없도록 하는 자연적 이성에 의지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럼에도 사실 자연적 이성은 신에 관한 사항에서는 결함이 있다.

12. 우리는 진리를 탐구하면서도 어떤 오류가 그 진리에 의해 배격되는지를 설명함과 동시에 증명에 의해 알게 되는 진리가 어떤 식으로 그리스도교 신앙과 일치하는지를 설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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