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역사연구회: 시민의 한국사 2 - 근현대편

 

시민의 한국사 2 - 10점
한국역사연구회 지음/돌베개

책을 펴내며

제6편 개항기
제7편 식민지기
제8편 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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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편 개항기

한국이 근대 국가를 수립하려는 움직임을 시작한 19세기 후반부터 일본에 병탄되는 1910년까지를 다룬다.
1860년대에는 서양 제국의 침략을 방어하기 위해 중국에서 양무운동, 일본에서 메이지유신이 전개됐다. 조선에서는 고종이 즉위하면서 그 아버지인 흥선대원군이 권력을 위임받았다. 홍선대원군은 안동 김씨 축출, 서원 철폐 등을 통해 무너진 왕권을 강화하고, 병인양요 · 신미양요 등을 통해 외세를 물리치면서 대내적 권위도 확보했다.

조선 정부가 1873년부터 친정을 시작하면서 국정 기조가 변화했다. 조선 정부는 중국과 일본의 개혁을 참조하면서 한국을 근대 국가로 변화시키려 했다. 일본과 조일수호조규, 청과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뿐 아니라 미국 · 영국 · 프랑스 · 러시아 등 열강과 조약을 체결함으로써 조선은 근대적 세계질서에 편입됐다.

조선 정부는 통리기무아문 · 교련병대 · 내무부 등 신설기구를 중심으로 근대적 국가체제를 구성하려 했다. 이 과정에서 소외된 구식 군대가 봉기를 일으키고 민씨 척족과 개화 세력이 충돌했으며, 지방관의 부패와 수탈로 고통받던 민중과 결합한 동학 교단이 전국적으로 봉기했다.
청일전쟁으로 동아시아의 질서는 일본 중심으로 변화했다. 개화 세력은 일본의 보호를 받으면서 갑오개혁을 추진해 한국사회의 모습을 근대적으로 변모시키려고 했으나 삼국간섭과 아관파천을 거치면서 패퇴했다. 이후 독립협회를 만들고 조선을 입헌군주제로 바꾸려던 시도도 전제군주제를 지향한 고종과 충돌하며 좌절됐다.

고종은 황실을 중심으로 근대화 정책을 추진하려 했으나 러일전쟁으로 인해 어려워졌다. 입헌군주정과 민권을 지향하는 세력이 다시 활동하기 시작했으나 헤이그특사사건 이후 일본은 고종을 강제퇴위시키고 내정을 장악했다. 이에 저항하는 양반 유생과 구식 군대의 의병투쟁은 참담한 희생을 치렀고, 개화 세력은 민중을 계몽해 민족의 실력을 키우는 데 역량을 집중했다.

1910년 일본이 한국을 병탄해 '조선'으로 개칭함으로써 한국은 조선총독부를 통해 일본의 통치를 받게 됐다. 

 

제7편 식민지기

일본의 식민지가 된 1910년부터 해방을 맞이한 1945년까지 다룬다.
식민지기는 한국 근대사의 역동적이고 복합적인 전개과정을 보여줬다. 이시기에 한국은 유례없는 수난을 겪었다. 역사상 처음으로 주권을 완전히 상실한 식민지로 전락했다. 일제는 조선총독부를 설치하고 식민지 지배체제를 구축해 한국 민족을 억압 · 차별 · 수탈하는 한편 민족성 말살(민족동화)을 획책했다. 그 과정에서 한국은 일본의 대륙 침략과 일본 자본의 활동에 적합한 식민지 자본주의 사회로 변모해갔고 사회경제적 대일(對日) 예속화와 민족간 불평등은 심화됐다.

이에 한국인들은 민족운동을 활발하게 전개했다. 비밀결사운동 · 독립군기지 건설운동 · 실력양성운동 · 사회주의운동 · 의열투쟁 · 무장투쟁 등 시기와 장소에 따라 다양한 노선과 방식의 운동을 벌였다. 그 과정에서 거족적인 3·1 운동을 일으켰으며, 항일 공동전선을 구축하기 위한 민족협동 · 통일전선운동을 끊임없이 추진했다. 이를 통해 신분계층지역 · 이념 · 종교 등의 차이를 넘어선 민족적 정체성과 민족의식이 강화됐다. 동시에 한국인들은 중국의 혁명 세력이나 일본의 반-제제 세력 등과 함께 반제 연대투쟁도 전개했다.

한편 식민지기 한국사회는 근대적으로 변화해갔다. 외래의 새로운 기술 · 학문 · 사상 · 제도 · 문화 등은 수용과 변용의 과정을 거쳐 확산되면서 사회전반이 근대적으로 변화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농민 · 노동자 · 청년 · 학생 · 여성 등은 자신의 목소리를 집단적으로 내는 사회 세력으로 성장해 다양한 대중운동을 펼치기 시작했다. 이러한 가운데 민족주의 운동세력과 사회주의 운동 세력 등은 신사회의 방향을 둘러싸고 경쟁과 갈등을 벌였다. 그러다 해방 직전 각 세력의 이념적 지향성은 정치적으로는 민주공화제, 사회경제적으로는 균등사회의 실현으로 모이는 경향을 보였다. 이는 해방 후 신사회 · 신국가 건설의 좌표가 됐다.

제8편 현대

1945년 해방 이후 현재에 이르는 동시대사를 다룬다.
일제의 패망으로 조선이 해방되자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미소 양군이 한반도를 분할 점령했으나 해방 직후 남북을 막론하고 거의 모든 한국인이 자주적 통일독립국가 건설과 민주적 개혁의 조속한 실현을 열망했다. 그것은 일제 식민지기 민족해방운동의 전개 과정에서 도출된 결론이었지만 그 과제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남북 간에 차이가 나타났고, 결국 남북에 각기 다른 정부가 수립되는 것으로 이어졌다. 여기에는 미소 양군의 점령과 양국의 대한정책이 결정적 영향을 끼쳤다.

좌우합작 · 남북협상 등 분단을 저지하려는 한국인들의 노력이 결실을 맺지 못한 채 남북에 각각 정부가 수립되자 이는 곧이어 내전으로 이어졌고 미국과 중국의 참전으로 국제전으로 비화하면서 한반도는 냉전의 최전선이 됐다. 전쟁의 포화가 휩쓸고 지나가자 전 국토가 황폐화됐고 인명피해도 막심했으며 휴전 이후 양측의 대치 상태가 지금까지도 70여 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4·19 직후와 1980년대 후반의 민간통일 운동, 1970년대의 남북회담, 2000년대 이래 양측의 교류협력운동, 양측 정상의 2000년 6·15 공동선언과 2018년 판문점 선언 등 남북은 여전히 통일과 평화체제 수립을 위해 계속 노력하고 있다.

한국은 1950년대 원조경제, 1960~70년대 개발독재를 거치며 1990년대 중반까지 경제적으로 고도성장을 이뤘으나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로 커다란 위기를 겪었다. 자본시장 개방, 부실기업 정리, 대량해고와 구조조정, 공기업 민영화 등 뼈를 깎는 노력 끝에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으나 그 과정에서 많은 기업이 외국 투기자본의 먹이가 됐고 일시적으로 국가 채무가 급증했다. 또한 국내적으로 경제력의 집중과 사회경제적 양극화가 일어났다. 최근 한국은 세계 10위를 넘나드는 경제 규모를 갖췄지만 동시에 분배구조의 개선과 양극화 해소, 사회적 안전망의 확충과 복지정책의 확대 등 해결해야 할 여러 가지 난제를 안고 있다.

4월 혁명, 6·3 항쟁, 3선개헌 반대운동으로 이어진 1960년대 민주화운동이 유신 반대운동, 재야민주화운동, 학생운동 등 1970년대의 민주화운동으로 이어지고, 그 흐름이 전태일 열사의 분신으로 상징되는 1970년대 민중운동과 결합해 1979년 부마항쟁으로 폭발하면서 박정희 군사독재 정권은 종막을 고했다. 전두환 등 신군부의 독재체제 수립을 저지하기 위한 1980년 5월 '서울의 봄'이 그 연장선이었다면 광주민주화운동은 1980년대 민주화운동의 대중화와 한층 조직화된 민중운동의 성장을 예고했다.

1987년에 일어난 6월항쟁은 민주주의의 제도화를 위한 결정적 계기를 제공했으며 이후 각종 사회운동과 시민운동의 성장은 민주화를 위한사회적 토대를 강화시켰다. 2000년대 들어 노무현 대통령 탄핵 반대, 효순·미선사건, 광우병 사태 등 한국사회의 주요한 이슈들이 제기될 때마다 등장한 촛불집회는 시민사회의 참여를 확대하는 한국사회의 독특한 대중적 행동 양식이 되었으며, 2016~2017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적폐 청산을 요구하는 시위를 거치며 촛불혁명으로 승화됐다.

민중적 참여의 확대 속에 이룬 한국사회의 민주화는 민주주의적 사상 · 의식의 개화와 문화적 다양성의 확대를 동반했다. 군사독재체제하의 극심한 사상적 탄압에도 불구하고 장기간의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민주주의 회복과 정치사회적 개혁을 위한 지적 탐구가 지식인과 학생, 문화인들 사이에서 이어졌다. 민주화운동이 6월항쟁 이후 대중적 실천 단계로 접어들자 과거사 청산과 정리 작업이 본격화되는 등 시민의식과 역사의식도 한층 고양됐다.

개인용 컴퓨터와 인터넷이 생활 전반에 광범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SNS가 발달하자 최근 대중문화가 뉴미디어, 디지털문화와 결합하면서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방탄소년단(BTS)에 대한 전 세계적 팬덤 현상, 영화 〈기생 충〉, 〈미나리〉의 아카데미상 수상 등이 보여주듯이 이제 한류는 동아시아지역에서의 일시적 유행을 넘어 세계인이 공유하는 문화적 아이콘이 됐다. 코로나19로 초래된 팬데믹 상황에서 K-방역이 모범적인 방역체계로 주목을 받는 등 한국의 국가적 위상이 제고되면서 이제 지구촌 많은 사람이 한국사회의 생활 양식, 한국인의 사고와 행동방식을 진지하게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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