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원의 북리스트 | 사회사상의 역사 - ‘사회’

 

 

2023.03.06 사회사상의 역사 - ‘사회’

1.1 사회사상이란 무엇인가

넓은 의미의 사회: “인간 관계의 총체가 하나의 윤곽을 가지고 나타난 경우의 그 집단” “주요한 형태... 가족, 촌락, 길드, 교회, 회사, 정당, 계급, 국가”(고지엔広辞苑, 제6판)

이 책에서 대상으로 삼는 사회: ‘법의 지배’를 원리로 하는 ‘합리적 국가’를 가진 공동체, ‘시장’을 경제적 기반으로 하는 공동체. 이 책에서 탐구하는 사회사상은 근대적 정치·경제 사상, 근대적 국가 사상의 다른 말

 

사카모토 다쓰야의 《사회사상의 역사》 세번째 시간이다. 지난번까지 사회사상사를 왜 배우는가를 이야기했다. 오늘부터 본격적으로 사회사상에 대해서 논의해 보도록 한다. 첫번째 시간에 말한 것처럼 사카모토 다쓰야의 이 책은 굉장히 좋은 책이다. 그런데 완전히 좋은 책은 세상에 없다. 따라서 이 책을 읽어나가면서 앞서서 세미나를 했던 「정치사상사」와의 관계, 또는 그런 것을 보완하면서 어떤 점을 유념해서 읽을 것인가를 이 책을 통해 얻을 수 있고, 또 이 책은 경제학자가 쓴 책이기 때문에 가령 오트프리트 회페의 경우에는 정치철학자이다, 정치철학자라기보다는 칸트 형이상학, 윤리학을 연구한 사람이다, 그러다보니 사회사상에서도 경제학을 배제할 수는 없는데, 경제학적인 논의들, 그리고 현실정치에 관련된 부분이 모자란 부분이 있다. 그에 비하면 사카모토 다쓰야의 이 책은 경제학과 관련된 부분들에 대해서 굉장한 강점을 보이고 있고 특히 스코틀랜드 계몽주의라고 불리는 흄 시기, 흄과 아담 스미스쪽에 굉장히 통찰력있는 논의들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에 읽고 공부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폭넓고 깊게 흄과 아담 스미스에 대해서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는 흄이라고 하면 회의주의, 인식론 또는 자연종교에 관한 것들만 거론되다보니 그런 현실정치·경제·사회에 관련된 부분들이 있다는 것 조차도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그것을 보완해서 읽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한다.

 

오늘은 서장 사회사상이란 무엇인가에서 첫번째 섹션 사회사상의 역사란 무엇인가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아주 짧은 부분인데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할 개념들을 거론하고 있다. 서장 사회사상이란 무엇인가 아래에 1. 사회사상의 역사란 무엇인가, 2. 사회사상사의 방법, 3. ‘시대’와 ‘사상’의 문맥, 4. 사회사상의 기본 문제: ‘자유’와 ‘공공’의 관계, 4번째 절인 사회사상의 기본 문제를 제외하면 아주 일반론을 다루고 있다. 4. 사회사상의 기본 문제: ‘자유’와 ‘공공’의 관계는 저자가 이 책 전체에서 설정한 문제의식이다. 이 문제의식이 타당하게 설정하게 되었는지 아닌지는 차지하고, 1,2,3절의 부분은 사회사상을 공부하는 사람은 반드시 일종의 암기처럼 외워야 한다. 이런 것들은 정말 말그대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문제설정이다. 요즘에 인공지능이 많이 발전해서 공부하지 않아도 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첫번째 절에서는 절 제목은 "사회사상의 역사란 무엇인가"라고 했는데 역사라고 하는 것을, 그러니까 사회사상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얘기되었는데 사회사상의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논의가 거의 없다. 그게 좀 불만이기는 하지만 지금 현재 여기 나와있는 개념 설명을 아주 뚜렷하게 알아 둘 필요가 있다. 고지엔, 이와나미쇼텐에서 간행하는 일본어 사전인데, 제6판을 보면 사회라는 항목이 이렇게 쓰여있다고 한다.  "인간관계의 총체가 하나의 윤곽을 가지고 나타난 경우의 그 집단", 핵심은 "인간관계의 총체", "하나의 윤곽을 가지고 나타난" 이 말은 객관적으로 실체적을 가지게 되면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즉 사회라는 것은 객관적 질서 속에서 나타나는 인간관계의 총체라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을 우리는 사회라고 불러도 되고 공동체라고 불러도 된다. 헬라스어로 koinonia, 그렇게 불러도 무방하다. 사회라는 말을 가장 넓은 의미로 쓰면 그냥 사회라고 하지 않고 공동체, 인간공동체, 집단, 인간집단이라고 말해도 된다. 그러면 그러한 종류의 공동체는 무엇이 있겠는가. 여기에 보면 그 "주요한 형태"로서 "가족, 촌락, 길드, 교회, 회사, 정당, 계급, 국가" 등을 들고 있다. 가족 공동체, 촌락 공동체, 길드 공동체, 교회 공동체, 회사도 공동체이다. 공동체라고 하면 왠지 친밀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을 가리키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인간이 모여 있으면 그냥 공동체이다. 그리고 일정한 정도의 질서와 규율이 있으면 공동체이다. 정당, 그런데 계급 공동체는 좀 아니다. 일본어 사전에 그 항목을 쓴 이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으나 약간 항의를 하고 싶다. 계급은 뭔가 추상적 원리에 더 가까운 말인 것 같다. 계급은 빼고 싶다. 계급이라는 말은 그 공동체에 어떤 특징적인 부분을 가리킬 때 사용하는 용어인 것 같다. 저자의 규정도 아니고 사전에서 가져온 규정이니 그러려니 하고 지나갈 수 있을 것 같다. 그렇지만 우리는 사전이라고 해도 무작정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보면서 한번쯤은 의심을 품어볼 수 있는 지점이 있다. 가장 넓은 의미에서 사회 또는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사회, "가족에서 국가까지 포함하는 인간의 공동생활 일반의 여러 형태로서 '사회'를 파악하면 인류는 지구상에 출현한 이래로 일관되게 모종의 '사회' 생활을 영위해왔다는 말이 된다." 가족 공동체도 사회의 하나이다. 그러면 거기에서는 정치사상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촌락은 있을지 모르지만. 그런데 사회를 이렇게 말해버리면 사회사상의 역사는 가족제도도 사회사상을 다룰 때 살펴봐야 하고, 회사법도 사회사상을 다룰 때 살펴봐야하는 항목이 된다. 사회사상은 도대체 무엇인가 물음을 물었을 때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을 하기 위해서는 사회란 무엇인가를 뚜렷하게 정리를 해야 하는데, 저자도 50년도 더 전에 출간된 대표적 개설서인 『사회사상사 개론』의 저자들이 한탄했듯이, 바로 "여기에 사회사상사를 다루는 사람들의 고뇌가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사회라고 하는 것을 명료하게 구분해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가족, 촌락, 길드, 교회, 회사, 정당, 국가를 사회라고 한다면 우리는 도무지 가족과 교회 사이에 어떤 같은 사회라는 범주 안으로 그것을 묶어 넣을 수 있는 것을 발견하기 어렵다. 요즘엔 온라인 커뮤니티, 동호회, 얼굴은 잘 모르지만 온라인을 통해서 만난 사람들의 무리. 거기에는 일정한 정도의 규칙도 그 규칙에 따라서 사람들이 반드시 지켜야 하는 질서도 있다. 암묵적인 관습도 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말하는 '분위기'라는 것도 있다. 그러면 사회라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그것이 명확하게 규정되지 않으면 그것에서 생겨나는 사회사상이라는 것도 규정하기 어렵다. 그래서 저자는 인간의 공공 생활의 여러 형태를 다 포괄하는 인간공동체라는 의미에서의 사회 개념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아예 처음부터 "이 책에서 사용하는 '사회(society)'의 의미는 처음부터 의식적으로 한정되어 있다. 그것은 세계 각지에서 면면히 구축되어온 인간의 사회 일반을 뜻하지 않는다." 어떤 지역에 있는 사회, 어떤 지역에서 특정한 시기 이후부터 형성된 인간공동체, 그리고 인간공동체에서 어떤 원리들이 적용되었던 곳을 사회라고 규정한다. "이 책에서 말하는 '사회'는 실질적으로는 근대 사회, 특히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에서 시작되는 유럽 사회와 그 연장선상에서 성립된 북미 대륙 사회를 가리킨다." 이것도 정확한 것은 아니다. 유럽 사회라고 하면 동유럽, 중부유럽까지 포함한다는 것도 아닐 수 있고, 발칸 반도와 같은 남부유럽도 있다, 그런 곳은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은 없다. 

서장 12 『고지엔(広辞苑)』(제6판, 이와나미쇼텐에서 간행하는 일본어 사전 ━ 옮긴이)의 '사회' 항목에는 "인간관계의 총체가 하나의 윤곽을 가지고 나타난 경우의 그 집단"이라는 설명이 있으며 그 "주요한 형태"로서 "가족, 촌락, 길드, 교회, 회사, 정당, 계급, 국가" 등을 들고 있다. 이처럼 가족에서 국가까지 포함하는 인간의 공동생활 일반의 여러 형태로서 '사회'를 파악하면 인류는 지구상에 출현한 이래로 일관되게 모종의 '사회' 생활을 영위해왔다는 말이 된다.

서장 12 50년도 더 전에 출간된 대표적 개설서인 『사회사상사 개론』의 저자들이 한탄했듯이, 바로 "여기에 사회사상사를 다루는 사람들의 고뇌가 있는" 것이며 이러한 사정은 요즘도 별반 다르지 않다.

서장 12 이 책에서 사용하는 '사회(society)'의 의미는 처음부터 의식적으로 한정되어 있다. 그것은 세계 각지에서 면면히 구축되어온 인간의 사회 일반을 뜻하지 않는다. 이 책에서 말하는 '사회'는 실질적으로는 근대 사회, 특히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에서 시작되는 유럽 사회와 그 연장선상에서 성립된 북미 대륙 사회를 가리킨다.


여기까지만 일단보면 근대 서구, 또는 북미를 포함하는 서구 사회사상사인가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그것들을 좀 더 세부적으로 보면 "법의 지배를 원리로 하는 합리적 국가를 가지는 사회"라고 말한다. 북미 대륙과 유럽 사회라고 할지라도 정치적인 측면에서는 "법의 지배를 원리로 하는 합리적 국가를 가지는 사회"이다. 그러면 "법의 지배를 원리로 하는 합리적 국가"가 아닌 인간 공동체도 있을테고, 그러면 그런데서 등장한 사상은 여기서 다루지 않겠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목차에 제시된 것처럼 마키아벨리라든가 홉스라든가 이런 사람들의 사회사상을 다루고 있는데 적어도 그들의 사회사상은 법의 지배를 원리로 하는 합리적 국가를 일정한 정도로 전제하고 있는 사상이라는 것을 의미하겠다. 저자가 보기에 그렇다는 것이다. 본인이 보기에는 가령 루터라든가 이런 사람들이 법의 지배를 원리로 하는 합리적 국가를 가진 사회에서 살았는가 아닌 것 같다. 칼뱅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예외적인 것도 있기는 하지만 일단 저자는 기본적으로 이런 정도의 요건은 갖춘 곳에서 생겨난 사상을 논의의 대상으로 삼겠다고 하는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하나 제시한 것이다.  "둘째로는 '시장'을 경제적 기반으로 하는 사회" 이것은 경제적인 측면의 규정이다. 그러면 이 둘을 묶으면 법의 지배를 원리로 하는 합리적 국가를 가지는 사회에서 생겨난 사상은 정치사상일테고, 시장을 경제적 기반으로 하는 사회에서 생겨나는 사상은 경제사상이겠다. 그러면 이 둘을 묶어서 근대 법치국가와 근대 시장경제국가 또는 근대 법치국가와 근대 시장경제사회, 법치사회라는 말은 없으니까 법치라고 하는 것은 법을 제정하는 국가를 반드시 전제하게 된다. 나머지는 그냥 규약이다. 근대적 법치국가와 근대적 시장경제 국가를 묶어서 근대 사회사상이라고 말한다. 그러면 지금 이야기하는 사회라는 말은 사실은 근대적 법치국가, 근대적 시장경제 국가와 동일한 의미를 가지는 것이겠다. 이 둘을 묶어서 저자는 아주 좁은 의미의 사회라는 개념을 쓴다. 그래서 "이 책에서 펼쳐질 사회사상의 역사는 근대국가와 시장경제의 관계를 원리적으로 고찰한 사상의 역사이며”,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근대 법치국가와 근대 시장경제국가의 관계를 원리적으로 고찰한 사상의 역사이다. 예를 들어서 이제 정치경제학political economy이라고 하는 것, 그러면 정치경제학이라고 하는 것이 아담 스미스의 정치경제학, 칼 마르크스의 책을 보면 《정치경제학 비판》이 있다. 책 제목에 정치경제학이 있다. 바로 근대 법치국가와 시장 경제를 기반으로 한 근대 국가이다. 근대 국가의 학문이 바로 정치경제학이다. 그러면 마르크스가 《정치경제학 비판》이라고 한 것은 바로 근대 법치국가와 근대 시장경제 국가를 비판하는 것이다. 또는 근대 법치국가와 근대 시장경제 국가를 지탱해주는 또는 그런 국가를 정당화해주는 정치경제학 사상을 비판하는 것이다. 또는 그때는 정치경제학이라는 말을 사카모토 다쓰야의 개념으로 말하면 사회사상이겠다. 다시 말해서 마르크스가 쓴 책 제목 중에 《정치경제학 비판》은 아주 좁은 의미의 정치경제학을 말하는 것이다. 바로 자기가 살아가던 시대의 근대국가, 법의 지배를 원리로 하는 합리적 국가와 시장을 경제적 기반으로 하는 국가 그 둘을 말한다. 다시 정리해서 말하면 이 책의 저자가 탐구대상으로 삼고 있는 사회는 근대의 법치국가와 근대의 시장경제 국가이다. 그리고 근대의 법치국가와 근대의 시장경제 국가를 사회라고 하는 말로 포괄한다. 따라서 사회사상의 역사를 다른 말로 풀어 말하면 근대 법치국가와 근대 시장경제 국가에 관한 사상의 역사라고 말할 수 있고, 또는 마르크스가 사용했던 용어 또는 당대의 스코틀랜드 계몽주의들이 사용했던 용어로 말하면 근대 정치경제학의 역사라고 말할 수 있다. 같은 말들이 호환돼서 사용될 수 있다.

서장 13 이 책에서 말하는 고유한 의미의 '사회'는 첫째로 '법의 지배'를 원리로 하는 '합리적 국가'를 가지는 사회를 말하며, 둘째로는 '시장'을 경제적 기반으로 하는 사회를 말한다.

서장 13 이 책에서 펼쳐질 사회사상의 역사는 근대국가와 시장경제의 관계를 원리적으로 고찰한 사상의 역사이며, 각 시대에 각 지역에서 살았던 사상가들이 그들을 둘러싸고 출현한 국가 및 시장에 관한 문제들과 씨름한 역사이다. 


그러면 그런 것들을 다룰 때 다음 절의 2. 사회사상사의 방법과도 관련이 되는데 그냥 정치경제학의 역사 또는 정치사상·경제사상의 역사 또는 사회사상의 역사가 되는데 이런 것들은 추상적으로 하늘에서 뚝 떨어져서 시대와 무관하게 하느님 말씀처럼 영원불변한 진리를 다루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아주 당연하게도 당대의 시대사와 묶어서 이야기될 수밖에 없다. 벌써 규정 자체가 '근대'라는 시대가 나온다. 이 책에서 말하는 고유한 의미의 사회라고 하는 것, 사회사상이라고 하는 것은 정치경제학 그 다음에 정치사상, 경제사상과 호환해서 쓰일 수 있다. 그런데 그것은 특히나 근대 이후의 법의 지배와 시장을 경제적 기반으로 하는 국가를 바탕으로 한다. 그러면 저자가 지적하고 있듯이 "고대의 아테나이는 ... 시장경제를 터득하고 있었다." 그런데 "근대적 의미의 법치국가가 아니었으며 시장경제를 일반적 기초로 하지도 않았다." 이 책을 읽어본 분은 알겠지만 "고대의 아테나이"로 되어있다. 대개 아테네라고 그런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아테나이로 표현한다. 아테네로 말하는 것과 아테나이로 말하는 것이 아무 차이도 없는 것 같지만 이런 것들이 역자의 일종의 센스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읽을 때 굉장히 가독성이 좋다. 번역 실력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어 실력의 문제이다. 그러니까 저자는 고대의 도시국가(폴리스)는 시장경제를 일반적 기초로 하지도 않았고, 그 다음에 법의 지배를 원리로 하는 법치국가가 아니었으니 당연히 고대 아테나이, 폴리스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를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시장경제의 원리가 공동체 아래에 '묻혀(embedded)있었으며" 또는 묻어 들어가 있으며, "순수한 경제활동이라기 보다는 공동체의 정치적 · 종교적 제도의 일환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명료한 사실이다. 물론 아리스토텔레스에서의 돈의 개념, 화폐의 개념을 보면 보수획득술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니다. 흔히 하는 속된 말로 '돈 놓고 돈 먹기'가 없던 시대는 아니다. 그렇지만 근본적으로 그것이 그 사회의 전적인 주도적인 원리로서 작동하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근대적 법치국가, 근대적 시장경제 국가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서장 13 예컨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활약한 고대의 아테나이는 고도로 발달한 도시국가(폴리스)로, 지중해 세계나 소아시아와의 교역을 기반으로 한 시장경제를 터득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경우의 국가는 근대적 의미의 법치국가가 아니었으며 시장경제를 일반적 기초로 하지도 않았다.

서장 13 근대 이전의 여러 사회에서는 시장경제의 원리가 공동체 아래에 '묻혀(embedded)있었으며 그 자체로 순수한 경제활동이라기 보다는 공동체의 정치적 · 종교적 제도의 일환이었다.

 

여기서 지금 근대라는 말이 사용되는 맥락을 보면 근대라고 하는 것은 반드시 시대를 가리키는 말은 아니다.  근대적이다 라고 할 때 아직도 2023년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도 근대적이지 않은 곳이다. 그러면 법의 지배를 원리로 하는 합리적 국가 그리고 시장을 경제적 기반으로 하는 사회, 이것을 흔히 근대 사회라고 부른다. 근대 사회라고 하는 것은 modern society라고 할 수 있는데 지금 근대국가 또는 근대사회라는 말이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 그런데 modern society라는 말은 시대적으로 르네상스 이후의 모든 사회를 modern society라고 할 수 있는가 그런 것은 아니다. modern society라는 말을 추상적 원리적으로 사용한다고 할 때는 바로 이 두 가지, 법의 지배와 시장경제 속성이 반드시 충족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법의 지배를 원리로 하는 합리적 국가, 시장을 경제적 기반으로 하는 사회 이 둘은 사실 굉장히 긴밀하게 맞물려 있다. 이런 사회는 어떤 곳인가에 대해서 설명해보겠다. 저자가 사회사상의 역사를 쓰면서 이런 특징을 가진 국가, 인간집단만을 대상으로 하겠다고 천명한 이상 그것이 무엇인지 명료하게 알아 둘 필요가 있다. 저자가 다루고 있는 사상가들 중에는 루터라든가 칼빈이라든가 근대적이지 않은 사상가들도 있다. 왜 그 사람들은 근대인들인데 근대적이지 않은가를 해명할 필요가 있다. 우리 한국사회를 예를 들어 말해보겠다. 한국사회는 법의 지배를 원리로 하는 합리적 국가인가를 물어볼 수 있다. 당연히 법의 지배를 원리로 하는 합리적 국가라고 얘기한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측면이 있다. 그리고 법의 지배를 원리로 하는 합리적 국가는 일단 기본적으로 각각의 개인이 법적인 절차에 따라서 자신이 살고 있는 집단 공동체에서의 의사결정 과정에 평등하게 참여할 수 있는 바탕이 마련되어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렇지 못한 것들이 꽤 많다. A라는 지역이 있다고 해보겠다. A 지역은 흔히 말하는 마을(촌락)공동체이다. 시골이라는 말이 좋은 말인데, 시골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그런 시골에서는 마을이 있고 마을 공동체가 있고 아주 오랜 세월동안 그 공동체 구성원들이 일종의 향약, 마을의 규약을 만들어서 향약을 지켜온다. 그리고 마을 공동체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서로 조절하거나 공동체를 대표해서 외부의 어떤 행정기관과 교섭을 할 때 그 공동체 의사결정을 하고자 할 때 향약에 근거하여 판단을 한다. 다시말해서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도 법이라고 하는 것이 모든 영역에 개개인에게까지 속속들이 파고들어가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법의 지배를 원리로 하는 합리적 국가가 전면적으로 실현되어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무슨 얘기인가. 그런 공동체가 분명히 실제로 있다. A라는 마을에 공동체 향약이 있다. 그 향약은 적어도 그 마을 공동체에 40년 정도는 거주한 사람만이 그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인정할 수 있다는 향약이 있는 곳이 있다. 그러면 적어도 토박이이다. 그리고 그 마을 공동체를 이루는 가구수가 가령 70가구라고 가정한다면 70가구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350명이라고 한다면 350명 전원이 일종의 1인1표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가구당 한 표이다. 그런데 가령 외지에서 그 공동체로 귀촌한 사람이 10 가구 있다고 해보자. 그런데 귀촌한지가 길어가 10년이고 짧으면 2년이다. 그러면 귀촌한 사람들은 공동체의 의사결정에 참여할 자격이 없다. 그런데 그 향약은 법이 아니다. 그냥 공동체의 규약일 뿐이다. 법의 지배를 원리로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그 공동체에 일종의 개발 소재가 생겼다고 해보자. 그 공동체 지역 일대에 하수처리장을 그 공동체에 세우자는 제안이 시로부터 왔다고 해보자. 그러면 그 마을에서 회의를 해서 결정을 해야 한다. 그런데 그 마을 공동체에 있는 일종의 향약에 따라서 새로 이주해온 사람들 즉 40년 이상 거주하지 않은 사람은 의사결정에서 제외된다. 그리고 40년 이상 거주한 사람들은 그 지역에 땅을 많이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보상금 넉넉히 받고 땅 팔고 떠나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그 마을이 좋아서 귀촌을 한 사람들은 공동체 의사결정에 참여하지도 못하고 어느날 갑자기 하수종말처리장이 들어선다는 뉴스를 듣게 된다. 그러면 그 사람이 가만히 있겠는가. 우리는 찬성한 바 없다고 항의를 해봐도 향약의 규칙에 따라서 그렇게 해줬다고 할 것이다. 그러면 시에 가서 따져봐도 향약에 의존해라 이렇게 갈등이 오고가고 법정 소송을 하고 시에서 하는 어떤 것들에 대한 가처분 소송이 들어선다. 그때서야 법의 지배가 작동한다. 그런데 그 법의 지배라고 하는 것은 그런 경우 어떻게 작동하겠는가. 우리가 살고 있는 모든 단위로 법의 지배가 모든 차원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런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사실 인구가 줄어들고 지방이 소멸한다고 많이 말하지만 그런 지방 소멸은 이런 갈등들이 굉장히 큰 역할을 한다. '더러워서 떠나야지'하고 익명이 서로 보장되는 도시로 가게 된다는 것이다. 도시로 오면 공동체 규약이 어디있는가, 법대로 한다. 물론 대단지 아파트 이런 곳은 아파트 규약이 있다. 그런데 그 규약이라고 하는 것도 언제든지 법적인 논의의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법에 호소해서 해결할 수 있는데, 우리가 일반적으로 마을 공동체라고 하는 곳에서는 그게 관철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한국사회에 여전히 위력을 가지고 작동하는 향약들을 모두 모아서 한번 조사를 해보면 그것이 상당히 많은 지역에서 '일종의' 법적인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위력이 얼마나 발휘되고 있는가를 한번 개량화해보면 한국이 과연 법의 지배를 원리로 하는 합리적 국가인가에 대한 평가도 가능해진다. 한국은 그렇게 법의 지배를 원리로 하는 합리적 국가는 아니다 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법의 지배를 원리로 하는 합리적 국가 그리고 시장을 경제적 기반으로 하는 사회는 근본적으로 그 법의 지배와 시장에서의 행위 이런 것들은 각각의 독립적 개인, 의사결정의 주체로서의 개인을 전제하고 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독립적인 주체로서의 개인을 전제로 하는 것 그것이 바로 민주정, 절차적 합리성을 따지는 민주정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이다. 

 

저자가 말하지 않고 있는 부분, 몰라서 안하는 것인지 일부러 안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여기에 보완할 수 있는 부분은 근대적 법치국가와 근대적 시장경제 국가가 작동하기 위한 보이지 않은 전제는 의사결정 주체로서의 개인이 전제가 되고, 그 다음에 각각의 개인이 합리적인 절차에 따라서 공동체의 의사결정에 가담해야 한다 라고 하는 민주정의 원리가 관철되는 곳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법치국가라고 하는 말이 그것을 함축한다. 그래서 근대적 민주정이라고 하는 것도 여기에 포함시켜야 온전한 의미에서의 근대 사회사상가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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