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원의 북리스트」에서 제공하는 《사회사상의 역사》을 듣고 정리한다.
2023.03.29 사회사상의 역사 - 마키아벨리(1)
마키아벨리의 시대에는 자본주의의 맹아적 형태가 등장
참조: 남종국, ⟪이탈리아 상인의 위대한 도전: 근대 자본주의와 혁신의 기원⟫
마키아벨리 시대에는 미래에 ‘근대국가’가 될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정치공동체들이 있었다. 이탈리아는 1861년 통일될 때까지는 근대국가의 외양들 띠지도 제도를 갖추고 있지도 않았다. 그런 까닭에 마키아벨리가 가졌던 문제의식이 근대국가와 관련되어 있다고 판단하기는 어렵다. 마키아벨리의 ‘조국’ 피렌체는 규모의 경제와 군사력의 결여로 근대국가로 전화되지 못하였다.
참조: 찰스 틸리, ⟪유럽 국민국가의 계보 - 990~1992년⟫
《사회사상의 역사》 오늘부터 본문, 본론에 들어가겠다. 제일 처음으로 사카모토 다쓰야가 다루고 있는 사람은 마키아벨리이다. 《사회사상의 역사》의 본문, 본론을 읽는 구체적인 방법을 말하려고 한다. 이것은 그냥 책에 이런 내용이 있다고 하는 것을 소개하고 있다기 보다는, 그것을 소개하는 것은 물론 당연히 하고, 우선 이 책 안에 하나의 섹션들이 있는데 섹션별로 상세하게 검토를 해나가면서 읽으려고 한다. 이 내용이 어떤 내용인가를 설명도 하고 이 부분은 좀 더 생각을 해봐야 한다 또는 이 부분은 조금 의아한 지점이 있다, 지나친 일반화가 있다 라든가 이런 것들을 검토하면서 일단 있는 그대로 내용을 읽고 책 내용에서 좀 더 생각해봐야 하는 점들 또는 검토가 필요한 부분들을 이야기한다. 회페의 《정치사상사》를 읽을 때도 그랬다. 그런 다음 예전에 회페의 정치사상사 토론을 했던 내용과 대조해서 겹치는 부분이 있으면 회페는 이 문제를 이렇게 봤는데 사카모토 교수는 이렇게 본다 하는 것들을 그때그때 얘기하려고 한다. 그리고 회페는 전혀 거론하지 않았던 부분들이 어디가 있는가도 얘기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회페의 정치사상사 토론을 할 때 회폐의 내용을 요약했었는데, 그 요약문을 일단 비교하고 그리고 회폐의 내용을 요약한 것과 사카모토의 얘기를 비판적으로 검토한 것을 덧붙이면 그것대로 적절한 요약이 또 만들어 질 수 있다. 사카모토 책은 제가 읽고 요약하면서 비판적으로 검토할 부분까지 정리를 했고, 그 비판적으로 제가 검토한 부분에 어떤 근거를 가지고 그것을 비판을 했는가를 정리했다. 사카모토의 책을 먼저 얘기하고 그 다음에 회페와 비교해서 서로 보완할 수 있도록 하고 마지막으로 정치사상사 토론을 했던 제가 논평을 덧붙인 부분을 뒤에 붙여서 회폐-사카모토-저의 논평을 묶어서 하나의 일종의 잠정적 완결본을 만들어 놓으려고 한다. 그게 지금 하고 있는 일이다. 그러니까 사카모토를 읽으면서 분명히 우리가 장점으로 취해야할 부분들이 있다. 그런 것들을 촘촘하게 검토해서 제시하려고 한다.
사카모토 교수는 각각의 사상가들을 읽어나가면서 시대의 문맥과 사상의 문맥 이 두가지를 얘기한다. 시대의 문맥을 보면 "시장경제의 부활과 근대국가의 태동"으로 되어있는데 마키아벨리에서는 시대의 문맥을 잘 이야기하지 않는다. 저도 마키아벨리를 읽으면서 시대의 문맥은 별로 그렇게 생각해보지 않았다. 이것을 좀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다 라는 문제가 떠올랐다. 시대의 문맥의 첫번째 섹션, 제일절이 "시장경제의 부활과 근대국가의 태동"이다. 이 제목은 일단 받아들이기는 하되 좀 보류할 필요가 있다. 어떤 것에서 보류를 해야 하는가. 시장경제의 부활이라는 말, 여기서 부활이라는 것은 예전에는 있었는데 다시 등장한 것이 부활이다. 그런데 예전에는 있었는데 다시 부활하려면 그 예전에 즉 마키아벨리 시대 이전에 시장경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시장경제가 있어야 한다고 말할 수 있으려면 뭐가 있을까, 찾아보면 없다. 그러면 일단 부활보다는 등장이 적당하겠다. 그리고 여기서 근대국가의 태동이라는 말은 굉장히 조심스럽게 써야 하는 부분이다. 조금 이따가 근대국가라고 하는 말을 마키아벨리 시대에 과연 쓸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다시 한번 상세하게 말하겠는데 어쨌든 시대의 문맥이라고 하는 것의 제목을 "시장경제의 부활과 근대국가의 태동"으로 달아놓은 것은 일단 보류를 할 필요가 있다. 시장경제가 부활한 것이 아니라 새롭게 등장했다고 하면 말이 되고, 과연 그리고 마키아벨리 시대에 등장한 여러 코뮌, 또는 정치적 공동체들을 근대국가의 씨앗으로 볼 수 있는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유럽의 도시와 국가라고 하는 것이 그렇게 근대국가로 쉽게 넘어가는 그런 맥락을 갖고 있지는 않다. 그렇다면 저자가 마키아벨리는 "근대사회와 근대국가가 직면한 근본적 사상 문제를 적확히 파악하고 이를 후세의 사상가들에게 피할 수 없는 과제로 남겼다." 과연 그러한가 마키아벨리의 문제의식이라고 하는 것이 근대사회와 근대국가가 직면한 것이었는가, 이것에 대해서는 좀 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마키아벨리의 사회 사상에서 《군주론》의 인간관이라든가 이어지는 내용에서 《로마사논고》의 공화제론이라든가 이 부분, 그리고 마키아벨리의 자유와 공공, 이 부분이 과연 근대국가라고 하는 것과 어떻게 연결되는가. 이것에 대해서는 좀 여지가 있다. 생각을 더 해봐야한다. 마키아벨리가 15세기 후반에서 16세기 중반을 살았던 사람인데 과연 이 시대를 그렇게 말할 수 있는가, 제목에서 생각해봐야 하고 근대사회와 근대국가가 직면한 근본적 사상 문제를 파악했는가 또 "고전고대 이래의 사상 전통을 한 몸에 떠안으면서도 눈앞에 출현중인 근대사회의 현실이 제출하는 근본적 문제에 처음으로 맞선 인물이었기 때문이다."라고 했는데 마키아벨리 눈앞에 과연 근대사회의 현실의 문제가 제출되었는가. 1520년에 죽은 사람 눈 앞에 그것이 등장했다고 보기에는 어렵다. 굉장히 시대를 땡겨 내려와 버리는 것이다. 이것은 일반적인 얘기보다는 사카모토 교수의 개인적인 입론인데 과연 이것을 얘기하려면 근대사회와 근대국가가 직면한 어떤 그런, 마키아벨리 시대가 근대사회와 근대국가의 시대인가에 대해서 논변을 해야 하는데 그것이 그런 증거가 없다. 그런 점에서는 문제를 봐야하겠다. 마키아벨리가 물론 예술작품으로서 또는 인공물로서의 국가라는 것을 얘기했는데 그것이 근대국가는 아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좀 더 많이 생각해봐야 한다. 그렇다해도 이것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과연 마키아벨리가 근대적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는가에 대해서는 제가 가지고 있는, 사카모토 교수가 이것에 대해서 근대라는 말 자체를 명료하게 규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과연 마키아벨리의 어떤 점을 보고 근대라고 얘기하는가에 대해서는 좀 의아한 지점이 있다. 법의 지배를 원리로 하는 합리적 국가 그리고 시장을 경제적 기반으로 하는 사회가 근대 서구 사회인데 법의 지배를 원리로 하는 합리적 국가를 과연 마키아벨리가 생각했는가, 그건 아니다. 《군주론》을 읽어봐도 그건 아니기 때문에 이것은 마키아벨리에게 지나치게 소급 적용한 근대라고 하는, 근대사회와 근대국가의 문제의식을 소급적용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부분에 대해서는 유보해야 한다. 그런데 마키아벨리의 시대가, 15-16세기 시대가 상업의 부활이라는 말로써 규정되는 시대라고 얘기하는데 "봉건제와 농조제에 기초한 자급자족적 경제 구조는 11세기 무렵에 시작된 '상업의 부활'(앙리 피렌)에 의해 극적으로 변화한다." 앙리 피렌의 《중세 유럽의 도시》라는 책이 있다. 4장의 제목이 상업의 부활이다. 그런데 마키아벨리가 상업의 부활이라고 하는 것, 그게 11세기이다, 11-12세기이면 High Middle Age 중세전성기이다. 이것을 마키아벨리와 연결시켜서 보기는 곤란하다. 마키아벨리의 시대적 배경이다? 글쎄 마키아벨리가 자기보다 300년 이전 시대를 자신의 배경으로 삼는다는 것은 곤란한다. 상업의 부활, 그리고 원격지 무역의 출현, 현금 욕심에 생산물 지대의 금납화를 추진했고, 이것이 농노제의 붕괴를 이끌었다고 되어있고, 그 다음에 "봉건영주의 지배에서 해방된 농민은 자치도시의 시민이 되거나 그대로 독립 자영농이 되어 근대 사회의 담지자가 되어간다." 이것은 지나친, 성급하게 역사를 중간을 뚝 떼어서 과거와 15-16세기를 이어 붙이는데 중간을 떼 내버린 것이다. 그 부분이 조금 무리한 연결고리가 있다. 그리고 "도시 경제의 출현과 병행하여 이를 촉진한 것이 다양한 형태의 근대국가의 출현이다."라고 했는데 다양한 형태의 근대국가라고 하는 말은 적절한 표현이 아니고 근대국가라는 말은 최종적인 성과물이다. 다시 말해서 근대국가가 될 조건들을 갖춘 여러 후보자들이 등장했다. 다시 말해서 도시국가도 있고, 도시제국도 있고, 연합도 있고, 종교조직도 있다. 39페이지를 보면 " 10세기 무렵의 유럽 세계는 황제, 국와, 봉건영주, 로마교회라는 복수의 권력이 복잡하게 뒤얽힌 중층 구조를 이루었으며, 근대적 의미의 영역적 · 통일적 권가권력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이 말이 같은 문단에 있다. 이 문단의 시작이 "다양한 형태의 근대국가의 출현"이라고 했는데 그 문단 끝에는 "근대적 의미의 영역적 · 통일적 국가권력은 존재하지 않았다."라고 되어있으니 이것은 한 문단 안에 서로 대립되는 말이 있는 셈이다. 도시 경제의 출현이라는 것이 10, 11세기, 앙리피렌느의 말을 받아들인다면 11세인데, 11세기에는 근대적 의미의 영역적 · 통일적 국가권력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황제, 국왕, 봉건영주, 로마교회라는 복수의 권력이 복잡하게 뒤얽힌 중층 구조를 이루고 있었다. 이것이 사실은 마키아벨리에게 굉장히 중요한 배경이 된다. 《군주론》을 읽어보면 다양한 종류의 군주국들에 대해서 논의를 하는데 교회 군주국도 있고 그렇다. 그러니까 근대적 의미의 영역적 · 통일적 국가권력은 존재하지 않았고, '군주국'들이 있었다. 신성로마제국이라는 것도 사실 국가라기 보다는 그냥 연합회의체이다. 그리고 신성로마제국이 962년에는 도이치 국왕 오토1세의 대관에 의해 형식적으로는 1806년까지 존속하는데 그렇다면 962년에 신성로마제국이 성립하였는데 10세기 무렵의 유럽세계를 본다면 신성로마제국이 있던 시기이다. 그 시기의 유럽에는 High Middle Age의 시대이기 때문에 다양한 형태의 근대국가가 출현하지는 않았다. 그 다음에 그 다음 문단이 복잡하게 뒤얽힌 중층 구조, 영역적 · 통일적 국가권력은 존재하지 않다는 것에 대한 보충 설명이 있다. 이것 역시 마키아벨리의 시대까지도 계속되어 왔기 때문에 마키아벨리의 시대 배경으로 우리가 삼을 수 있다.
제1장 37 근대사회와 근대국가가 직면한 근본적 사상 문제를 적확히 파악하고 이를 후세의 사상가들에게 피할 수 없는 과제로 남겼기 때문이다.
제1장 37 마키아벨리야말로 고전고대 이래의 사상 전통을 한 몸에 떠안으면서도 눈앞에 출현중인 근대사회의 현실이 제출하는 근본적 문제에 처음으로 맞선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제1장 38 봉건제와 농조제에 기초한 자급자족적 경제 구조는 11세기 무렵에 시작된 '상업의 부활'(앙리 피렌)에 의해 극적으로 변화한다.
제1장 38 봉건영주의 지배에서 해방된 농민은 자치도시의 시민이 되거나 그대로 독립 자영농이 되어 근대 사회의 담지자가 되어간다.
제1장 39 도시 경제의 출현과 병행하여 이를 촉진한 것이 다양한 형태의 근대국가의 출현이다.
제1장 39 그 결과 10세기 무렵의 유럽 세계는 황제, 국왕, 봉건영주, 로마교회라는 복수의 권력이 복잡하게 뒤얽힌 중층 구조를 이루었으며, 근대적 의미의 영역적 · 통일적 국가권력은 존재하지 않았다.
다시 말해서 마키아벨리의 시대 배경은, 다시 정리해서 말하자면 "다양한 형태의 근대국가의 출현"이라고 하는데, 근대국가라고 하는 것은 다양하지 않다. 근대국가라는 형태는 딱 하나이다. 모형으로서 이념형ideal type으로서 하나가 있고 그런 근대국가가 앞서 말한 것처럼, 그런 근대국가가 되기 위한 후보들이 등장했는데 그게 바로 "황제, 국왕, 봉건영주, 로마교회라는 복수의 권력", 권력이라기 보다는 권위, "복수의 정치적 권위가 복잡하게 뒤얽힌 중층 구조"으로 되어있는 것이다. 로마교회는 권력이라기보다는 권위라고 말하는 것이 적당하고, 신성로마제국 황제도 권력을 갖고 있다기 보다는 권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10세기 무렵의 유럽 세계가 권력과 권위가 구별되고 있는 시기라는 것을 생각해 볼 수도 있다.
39페이지를 보면 "스페인, 프랑스, 잉글랜드, 스웨덴 등지에서는 왕권의 강화와 집중이 진행되어 절대왕정의 기초가 형성되었지만", 아직 절대왕정국가도 성립하지 않았던 때이다. 마키아벨리 때는 아직 절대왕정국가도 성립하지 않았던 때이다. 당장의 절대왕정의 시작이 빨랐던 잉글랜드, 잉글랜드가 마키아벨리 시대의 절대왕정의 기초가 형성되지 않았던 때고, 그 다음에 "신성로마제국이 된 독일에서는 봉건 영주가 그대로 영방 군주로 상승 · 전화했기 때문에 통일적 절대왕정은 형성되지 않았다." 절대왕정도 아직 성립되지 않았기 때문에 근대국가를 논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 다음 "영주제의 지배력이 약했던 이탈리아에서는 일찍부터 피렌체나 베네치아 같은 소규모 도시 공화국이 생겨나 있었던 데다 나폴리왕국이나 밀라노 공국 같은 대규모 군주국도 존재해 정치적 분열 상태가 이어졌다." 이런 정치적 분열 상태는 언제까지 계속되는가, 나폴레옹 전쟁기에도 이어진다. 그래서 "이런 이탈리아의 정치적 분열은 타국의 침략이나 지배를 받으면서 1861년에 통일될 때까지 계속된다." 그러면 이탈리아에서는 근대국가가 언제 성립되는가, 1861년이다. 통일 이탈리아가 바로 근대국가이다. 다양한 형태의 근대국가가 이탈리아에 있지 않았다. 1861년 통일 이탈리아가 바로 근대국가이다. 그래서 저자는 이렇게 얘기한다. "이처럼 규모나 형태는 제각각일지언정 이는 모두 단일한 영역을 단일한 정치권력이 지배하는 근대국민국가의 선구적 형태들이었으며", 선구적 형태라는 것은 그것이 꼭 근대국가로 발전해간다는 것은 뜻은 아니다. 그냥 맹아적 형태이다. 나중에 어떤 것은 근대국가가 되고 어떤 것은 안되고 만다. 이 영역에서 지금 당장은 깊이 있게 참조할 필요는 없는데, 찰스 틸리의 《유럽 국민국가의 계보 - 990~1992년》라는 책이 있다. 이 시기가 출발점인 것은 맞다. 원제는 Coercion, Capital and European States: AD 990-1992이다. 결집, 자본, 그리고 유럽의 국가들. 이 책에 보면 피렌체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 지중해의 도시국가와 상업도시들, 이런 도시들은 유럽에서 결국 우세한 국가가 되지 못했다. 왜 그랬는가. 더 큰 국가들의 상업화와 자본 집중에 의해서 작은 상업국가들이 이전에 누렸던 이점, 즉 광범위하게 차입하고 효율적으로 세금을 걷고 큰 육지국가를 저지하는데 해군력을 의존할 수 있다는 점이 축소되었고 그 다음에 정말 핵심적인 것은 규모가 작고 주권이 분할된 경우에 있었기 때문에 전쟁에서 명백히 분리하게 되는 방향으로 점차 변했으며 그에 따라서 큰 국가에 패했다. 특히 피렌체와 밀라노의 공화국들은 15세기와 16세기에 군사적 필수조건의 중합 때문에 무너졌다. 그러면 15세기와 16세기가 마키아벨리의 시대이다. 마키아벨리가 1469~1527년이다. 마키아벨리가 활동하던 시대의 피렌체는 결국 어떻게 되었는가, 전쟁을 치룰 수 있는 규모의 국가가 아니었기 때문에 근대국가가 될 수 없었던 것이다. 이탈리아의 그런 소규모 도시국가들은 전쟁을 치룰 수 있는 규모, 즉 규모의 경제와 그것과 짝을 이루고 있는 전쟁 수행능력에서 현저하게 뒤떨어졌다. 그렇기 때문에 15세기와 16세기에는 전쟁에서 조직이고 기술적인 혁신을 이룬 그런 정치적 공동체들만이 근대국가로 전화해 나아갈 수 있었다. 그것을 잘 생각해둘 필요가 있다. 따라서 유럽 내륙에서의 자치도시 출현하고 봉건사회의 기초를 무너졌다는 것이 곧바로 근대국가의 성립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그 과정이 굉장히 오랜 시간에 걸쳐서 이합집산을 거듭하고 그러면서 근대국가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나폴레옹 전쟁에서 만나는 국가들 중에 근대국가의 규모를 갖췄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일단 프랑스, 그 다음에 영국 그리고 포르투갈, 에스파냐, 그러나 이탈리아는 아니다. 이탈리아는 수없이 많은 공국들이 있다. 그리고 프로이센은 근대국가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고 그 외의 도이치 지역에서는 근대국가로 나아가지 못한 공국들이 많이 있었다. 그 다음에 폴란드 리투아니아 공화국이 있었는데 러시아와 그 주변 나라들에 의해서 분할이 된다. 그러면 폴란드 리투아니아 공화국도 근대국가라고 할 수 있는데 무너졌고, 러시아 제국도 근대국가, 그 다음에 오스트리아 그렇게 된다. 그러면 유럽에서 영국, 프랑스, 에스파냐, 포르투갈, 그리고 오스트리아, 러시아, 이 나라들이 근대국가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탈리아에서는 근대국가가 될 수 있는 후보자들은 있었을지언정 "마키아벨리가 나고 자란 피렌체야말로 그러한 유럽 근대의 출범을 상징하는 존재였다."고 말하는 것은 굉장한 비약이다. 피렌체는 그 정도의 나라가 아니었다.
제1장 39 스페인, 프랑스, 잉글랜드, 스웨덴 등지에서는 왕권의 강화와 집중이 진행되어 절대왕정의 기초가 형성되었지만, 신성로마제국이 된 독일에서는 봉건 영주가 그대로 영방 군주로 상승 · 전화했기 때문에 통일적 절대왕정은 형성되지 않았다.
제1장 40 영주제의 지배력이 약했던 이탈리아에서는 일찍부터 피렌체나 베네치아 같은 소규모 도시 공화국이 생겨나 있었던 데다 나폴리왕국이나 밀라노 공국 같은 대규모 군주국도 존재해 정치적 분열 상태가 이어졌다. 이런 이탈리아의 정치적 분열은 타국의 침략이나 지배를 받으면서 1861년에 통일될 때까지 계속된다.
제1장 40 이처럼 규모나 형태는 제각각일지언정 이는 모두 단일한 영역을 단일한 정치권력이 지배하는 근대국민국가의 선구적 형태들이었으며, 유럽 내륙에서의 자치도시 출현과 연동하여 중세 봉건사회의 기초를 무너뜨렸다. 그리고 마키아벨리가 나고 자란 피렌체야말로 그러한 유럽 근대의 출범을 상징하는 존재였다.
그러면 제1절의 제목이 근대국가의 태동인데 이것은 일단 기각되어야 한다. 근대국가의 태동을 가지고 마키아벨리의 시대적인 상황을 논의한다는 것은 어렵다. 그런데 시장경제의 '등장'을 보자고 한다면 11세기는 마키아벨리의 배경으로 삼기에는 지나치게 멀다. 그런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앙리 피렌느는 중세 유럽의 도시들을 다루고 있다. 그래서 사실 앙리 피렌느의 책을 마키아벨리를 읽으면서 참조하는 것은 적절한 배경이 되지 않는다. 앙리 피렌느의 책은 일단 8세기 말까지의 지중해산업이 있고, 9세기 상업의 쇠퇴, 11세기에 상업이 부활하면서 그 다음에 도시의 형성과 부르주아지가 어떻게 도시의 주인이 되었는가를 다루고 있다. 대체로 봐서 11세기, 12세기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따라서 앙리 피렌느의 책을 과연 마키아벨리를 레퍼런스로 삼을 수 있는가, 그것은 곤란하다. 오히려 적절한 것은 남종국 교수가 쓴 《이탈리아 상인의 위대한 도전》이라는 책을 레퍼런스로 참는 것이 적절하다. 이 책은 저자가 머리말에서 그렇게 말하고 있다. "11~15세기 유럽 경제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베네치아, 제노바, 피렌체, 시에나 등의 이탈리아 도시와 그 상인들의 이야기다." 이것은 상인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책이다. 그런데 배경이 11~15세기 유럽 경제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이탈리아 도시와 그 상인들의 이야기다. 그러니까 마키아벨리 시대의 사회 경제적인 배경을 알고자 한다면 《이탈리아 상인의 위대한 도전》를 읽는 것이 적당하겠다. 특히 여섯째 이야기가 14세 초반 국제적인 거상으로 성장한 피렌체 상사의 성공과 파산에 관한 이야기이다. "6장 규모의 경제", 이 시기를 다룰 때, 이 책의 부제가 "근대 자본주의와 혁신의 기원"이다, 따라서 "시장 경제의 부할"이라기 보다는 마키아벨리의 시대에는 근대 자본주의의 맹아적인 형태들이 이탈리아 상인들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었다는 것을 우리가 분명하게 얘기할 수 있다. 그것은 마키아벨리에 대한 배경으로 우리가 삼을 수 있다. 그러면 이 사람들에 대한 얘기가 자본주의라고 분명하게 규정할 수 있다. 이때를 자본주의라고 말하는 것은 페르낭 브로델의 규정에서도 우리가 알 수 있다. 그러니까 특히 7번째 이야기인 제노바 상인들은 자본주의가 자유시장경쟁이 아니라 독점을 유지할 수 있는 권력이었다는 브로델의 지적처럼 제노바 상인들은 자본주의의 선구자들이었다. 당시 독점이 최고의 상업기술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렇게 얘기하고 있다. 그리고 아직은 기독교의 윤리적 가르침이 상인들을 짓누르는 이데올로기의 장벽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물론 베네치아 상인들은 예외이다. 종교적 금기를 깨뜨린 베네치아 상인들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리를 하면 마키아벨리의 시대를 문맥을 본다고 하면 자본주의가 등장하는 시기이다. 그리고 그 자본주의는 이탈리아 상인들이 씨앗을 뿌리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피렌체도 자본주의가 등장하는 자본주의의 초창기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마키아벨리는 바로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이다. 그 다음 국가에 관한 한은 근대국가적인 어떤 정치제도나 이런 외양도 보이지 않았고 정확하게 보면 나중에 근대국가가 될 종류의 여러 공동체들이 등장하던 시기였다. 그리고 피렌체도 그런 자치도시의 하나였다. 따라서 마키아벨리가 처음에 얘기나온 것처럼 "근대사회와 근대국가가 직면한 근본적 사상 문제를 적확히 파악"했는가, 그리고 "눈앞에 출현중인 근대사회의 현실이 제출하는 근본적 문제에 처음으로 맞선 인물"이었는가 그것은 마키아벨리의 시대가 근대사회도 또는 근대국가도 아니었기 때문에 논점이 일탈된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여기서 마키아벨리의 시대 문맥은 달리 설정할 필요가 있다. 달리 설정함으로써 마키아벨리의 문제 의식 자체가 달라지는 것이다. 가령 《군주론》이라든가 《로마사논고》와 같은 텍스트들을 근대국가와 시장경제의 부할이라는 맥락에서 읽는다면 읽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런 것에 관한 얘기가 없기 때문이다. 토마스 홉스를 읽는다고 하면 그렇게 읽을 수는 있다. C.B.맥퍼슨처럼 근대 자본주의 경제가 출현하는 시기의 배경을, 《리바이어던》을 그런 배경으로 놓고 읽는다고 하면 읽을 수 있다. 그런데 마키아벨리는 그렇게 읽을 수 없다. 따라서 마키아벨리는 당시 상업 도시들의 시대를 살고 있기는 했지만 그가 경제적인 문제 어떤 의식을 갖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점, 그 점을 분명히 해 둘 필요가 있다. 그리고 찰스 틸리도 지적했듯이 규모가 작고 주권이 분할된 경우에 전쟁에서 명백하게 불리한 방향으로 변하게 되는 그 시대, 즉 규모의 경제와 근대적 군사력 이런 것들이 있었는데 그 지점은 마키아벨리도 관심을 가졌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남종국 교수의 《이탈리아 상인의 위대한 도전》은 이야기니까 재미있기는 한데 학문적으로는, 이 시대를 전반적으로 조명해서 성격성 특성을 드러내 보이거나 그러지는 않는다. 그런데 경제적인 것을 마키아벨리의 시대적인 배경으로 삼는다는 것은 곤란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앙리 피렌의 《중세 유럽의 도시》를 여기서 레퍼런스로 갖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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