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기 다케시: 한국사의 계보

 

한국사의 계보 - 10점
야기 다케시 지음, 박걸순 옮김/소와당

1. 한국사의 개막
2. 삼한에서 삼국으로
3. 북진정책의 전개
4. 단군신화의 탄생
5. 고조선 계승
6. 간도로 가는 길
7. 대한제국의 꿈
8. 역사관의 상극

한국어판 서문
저자 서문
저자 후기
옮긴이의 말
참고문헌 해제

 


1. 한국사의 개막

18 요하의 상류(서요하)는 현재 중국 내몽골 자치구에 속해 있는데, 그 근방의 유목세력이 여러 차례 밀고 내려와 교통로인 요서을 위협했다. 혹은 달리 말하면, 선사사시대부터 유목 세력이 요서 회랑을 장악하고, 요하의 동쪽 요동지역과 그에 연결된 한반도 지역으로 중국인이 진출하지 못하도록 막고 있었다고 말하는 편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그 근거를 들자면, 요하 동쪽의 대표적인 민족으로 알려진 여진족, 만주족의 언어와 한반도 사람들의 언어는 모두 알타이어 계통에 속하며, 몽골어와 대단히 밀접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일본어와 한국어가 과연 알타이어 계통에 속하는지에 대해서는 전문가들 사이에서 다양한 이론이 있는 것 같지만, 어쨌든 문법구조가 매우 유사한 것만은 틀림없다. 이와 달리 중국어는 중국 티베트어계에 속하며, 중국어 어휘가 한국어에 대량으로 들어와 있다고는 하지만, 기본적인 문법구조 자체는 한국어와 완전히 다르다. 언어 · 습속 · 역사의 공유를 기초로 형성되는 각종 민족집단에 있어서 특히 언어를 공유하는 것이 민족 형성의 가장 중요한 핵심 요소라고 한다면 한국인들은 적어도 선사시대에 있어서는 중국 본토의 중국인보다는 오히려 몽골 고원의 유목 세력과 가까운 존재였다. 

실제로 북아시아에서 폭넓게 나타나는 샤머니즘은 한반도에 거주했던 고대인들의 기층문화를 이루었다. 그 후 요서회랑이 개통되면서 중국 세력이 요동과 한반도에 진출했고, 그에 따라 고도로 발달한 한자 문화와 정치제도(율령제), 그리고 한역 불경을 매개로 하는 불교문화 등이 한반도에 유입되었으며, 그것이 한반도에서 성립되었던 역사상 여러 나라에서 상층문화를 형성했다.

한국문화는 얼핏 보기에는 중국문화와 매우 유사하지만, 그 근저에 내재된 민족문화는 중국의 그것과는 다르다. 이러한 한국문화의 이중성은 무엇보다도 요서회랑의 개통 혹은 폐쇄라고 하는 역사지리적 관점에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2. 삼한에서 삼국으로

78 조선의 사료를 두고 삼한의 통일이라고 말하는 경우, 그것은 통일 신라에 의한 '삼국' 통일을 가리키는 경우보다도 고려의 태조(왕건)에 의한 '후삼국' 통일을 가리키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 통일신라 말기에는 후백제의 견훤 태봉(후고구려)의 궁예 등 지방 호족 세력이 각지에서 할거했지만, 이 중 궁예의 부장이었던 왕건이 고려를 건국하고(918), 신라와 백제(후백제)를 병합해서 한반도를 재통일했다. (936년) 왕건에 의한 후삼국 통일을 사료에서는 일반적으로 '삼한 통일'이라고 칭하고 있다.

단 후삼국시대에 '백제'와 '고구려'가 부흥했다고 해도, 그것은 '신라'에 대항하는 명분으로서 그 권위를 추대했을 뿐, 견훤과 궁예 · 왕건 등이 저마다 백제와 고구려 왕실의 혈통을 이어받아 계승한 것은 아니었고, 또 유민으로서의 의식을 가진 것도 아니다. 그들이 '백제'와 '고구려'의 부흥을 표방했던 것은 기껏해야 일반 민중의 자연스런 지역감정에 호소하는 정도였고, 반드시 신라에 대항할 역사적인 권위의 근거를 필요로 했을 뿐이다.

200년 이상에 걸친 통일신라의 통치 기간은 일찍이 고구려 · 백제의 유민들을 지배하고 동화하기에 충분한 기간이었다. 이 점은 일찍이 조선(고조선) 사람들이 낙랑군의 지배를 통해서 중국인 사회에 동화해 갔던 과정과 똑같다고 생각된다.

그러한 통일신라가 분열하고 이번에는 고려 태조에 의해 '삼한 통일'이 행해졌지만, 그것은 신라 말기에 분열했던 지방 세력을 재통일한 데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통일신라에 의한 '삼한 통일'은 한민족의 역사적 · 민족적인 구조를 결정한 획기적인 사건이며, 그것에 의해서 지금까지 이어지는 한국인들의 '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이 처음으로 확립되었다고 해도 결코 과언은 아닐 것이다.

 

7. 대한제국의 꿈

238 조선의 국호를 고친 이유는 그것이 '천하를 가진 호'로서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왜 어울리지 않는가 하면, 그것은 기자의 옛 봉토인 조선이라는 이름이 중국의 책봉을 받은 제후국으로서의 이미지와 구분하기 어렵게 결부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만 조선의 국호는 기자가 독자적으로 정했던 것으로, 기자는 주나라 무왕의 봉건을 받았던 것도, 신하로 복속했던 것도 아니라고 하는 이른바 '기자불신론'은 조선후기 지식인들이 곧잘 받아들였던 화제 중 하나였고 무엇보다 '조선'은 '기자의 옛 봉토'이기 이전에 단군조선(중국의 '요'와 병립해서 독자적으로 국호를 정했다고 하는 '단군조선')의 국호가 아니었던가? 따라서 '조선'이라고 하는 국호 그 자체에서 '독립'과 '자주'의 이념을 포함시킬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유래가 있는 '조선'이라는 국호를 버리고 '대한'이라는 국호를 정한 것은 무릇 황제의 '천하를 가진 호'가 '두 글자'가 아닌, '한 글자'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황제제도 그 자체에 내재한 역사적이며 전통적인 논리에 따르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240 이 경우 한 글자 왕보다 위에 군림하는 황제의 '천하를 가진 호'는 진한 이래의 사례를 끌어올 것도 없이 당연히 한 글자였고, (거란 등 이민족 정권을 제외하면) 예외는 없었다.

'대원(大元)', '대명(大明)', '대청(大淸)' 등의 경우 '대(大)'자는 단순한 존칭이었고, 실질적인 의미를 가진 것은 '원(元)', '명(明)', '청(淸)' 등의 한 글자였다. 덧붙여 말하자면, 한 · 당 · 송 등은 황실의 시봉 국호를 '천하를 가진 호'로 썼지만, 원 · 명 · 청 등은 구체적인 지명이 아니라, 그 통치 이념[文義]으로 '천하를 가진 호'를 정했다는 데 특징이 있다.

이처럼 '천하를 가진 호'가 대개 한 글자라고 하면, 중국 황제에게 복속하는 '조선국왕'으로서의 '두 글자' 국호를 그대로 '천하를 가진 호'로 전용하는 것은 아무래도 맞지 않는 것이었다.

'조선'은 민족의 시조로서 자리매김했던 단군조선의 국호이고, 또한 동방 교화의 기원으로 자리매김되었던 기자조선의 국호이기도 하지만, 아무리 그러한 전통을 존숭한다 하더라도 황제로 이름을 올린 이상 '두 글자'가 아닌 '한 글자' 국호를 정해야만 했다.

이 경우 적당한 후보로는 '삼한'의 약칭인 '한(韓)' 이외에는 있을 수가 없었는데, 더욱 적당하기로는 중국을 필두로 여러 외국에서도 또한 오랫동안 이전부터 '조선'의 국호를 문학적 수사로는 한 글자인 '한(韓)'이라고 관습적으로 불렀기 때문이다.


후기

268 1910년 한국병합으로 대한제국은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고, '대한'이라고 하는 국호도 소멸되었다. 이후 지역 이름은 조선이라고 불렸고, 조선총독부가 조선을 통치하게 되었지만, 1945년 패전으로 일본은 한반도 통치권을 상실했고, 광복을 맞이한 한반도에서는 미국과 소련의 냉전 아래 그 남부에서는 대한민국(한국), 북부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이 성 립하여 지금까지 이르고 있다.

본래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가였던 지역에서 '한(대한)'을 국호로 하는 국가와 '조선'을 국호로 하는 국가가 남북으로 대치하게 되었다. 이에 대해 일본에서는 그 지역과 민족에 대해 일반적인 호칭으로서는 '조선'을 사용했고, 지역명으로는 '조선반도', 민족명으로서는 '조선민족'이라고 부르는 것을 일반적인 관례로 한다. 이 경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북조선'으로 불러왔던 것은 지역 호칭으로서의 조선반도 북부를 점하는 국가라고 하는 뜻이지만, 그렇다면 남부를 점하는 국가는 '남조
선'으로 불러야 되는가 하면, 그것은 현재 국교를 유지하는 우호국에 대한 배려로서 '대한민국'을 줄여서 '한국'으로 쓰는 것을 관례로 한다. 모순이라고 하면 모순이다.

최근에는 더욱 해당지역을 '한국/조선'으로 병기하여 부르는 경우도 많아졌다. 이것도 어느 편인가 하면 '한국'에 대한 배려가 강하게 작용한 결과일 것이다. 그러나 '한국/조선'으로 병기해서 부르는 경우, 그것은 남북 각각의 국가 · 지역을 개별로 가리키는 것인가, 아니면 한반도(조선반도)의 지역 · 민족 전체를 가리키는 것인가 애매모호한 경우가 적지 않다.

어찌되었든 일본의 현상에서는 '한국'이라고 하는 단어를 한반도 남부의 국가와 지역을 가리키는 뜻으로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지역 호칭과 민족 호칭으로서 한반도와 한민족 등의 용어(한국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용어)는 일본에서는 일반적으로는 쓰이지 않는다. 우리들이 세계사 교과서에서 학습한 '삼한'의 기술(한반도 남부에 존재했던 '마한 · 진한 · 변한 등의 부족국가군을 가리킨다)도 역시 이른바 '한국'이 한반도의 남부의 나라이고 남부 지역을 가리킨다고 하는 이미지에 막연한 근거를 주고 있는 것도 확실할 것이다.

그렇지만 한국의 '한'은 원래 한반도 전역을 가리키는 것이었고, 그것은 현행 대한민국 헌법 제1장 제3조에서도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명기되어 있는 바와 같다. 그러면 전근대 전통적인 '삼한'의 개념에서 말하자면 그것은 한반도(조선반도) 전역이란 원래 처음부터 고대의 '고구려 · 백제 · 신라' 삼국, 즉 '삼한' 영역을 모두 포함하고, 따라서 지금의 중국 동북부(옛 만주)도 역시 한반도 사람들의 전통적인 의식 안에서는 '삼한'의 영역 속에 편입되어 있는 것이었다.
삼한이라고 하는 개념의 이 뜻밖의 확대━그 형성 ·발전의 역사를 객관적으로 더듬어 찾음으로써 이 책은 한반도 사람들의 전통적인 민족의식 영역의식의 일단을 보고자 했다. 여기에는 한반도 사람들의 전통 의식에 따른 다양한 오류와 곡해가 포함되어 있지만, 그것을 일단 이야기로서 받아들이고, 또 외부 민족(특히 여진인과 만주인)의 '시선'에 의해 상대화해 가는 데에도 마음을 쓰려고 했다.

이 책의 제목은 원래 일본 관례대로라면 단지 '조선사의 계보'로 하면 좋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남북의 분단국가가 내건 '대한'과 '조선'의 국호(각각 삼한 전역을 의미함)에서는 한반도 사람들의 역사의식 · 민족의식이 옹축되어 들어가 있다. 그것들을 종합하여 건져내기 위해 일본어판 제목에서는 감히 '한국/조선'이라고 하는 두 개의 국호(혹은 지역 명칭)를 병기했던 것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