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룡: 과학의 위로 ━ 답답한 인생의 방정식이 선명히 풀리는 시간

 

과학의 위로 - 10점
이강룡 지음/한빛비즈

프롤로그: 앤드루 와일스의 용기

1장 빛과 입자
무한과 유한: 앎이란 이미 아는 것으로 아직 모르는 것을 알아내는 지혜
빛의 속성: 언제나 삶의 최단 경로를 알고 있는 동네 주민들
전기와 자기, 전자기파: 전자파로 둘러싸인 안전한 세상
주파수와 공명: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누리는 인생의 행복
아날로그와 디지털: 이분법으로 풀 수 없는 복잡다단한 인생사
현대 문명의 기반, 반도체

2장 시간과 공간
상대성 원리: 보는 관점에 따라 달라 보이는 인생의 오묘함
특수 상대성 이론: 달라 보였던 것들이 하나였음을 깨달았을 때의 벅찬 희열
일반 상대성 이론: 훌륭한 사람들이 일으키는 거대한 일렁임
시간과 시계: 자기만의 일상을 구축한 이의 근사하고 단정한 삶
표준과 단위: 게으름에서 오는 느슨함과 부지런함에서 오는 유연함
일상 용어와 과학 용어

3장 과학과 수학
스칼라와 벡터: 과속을 피하는 방법과 목적지까지 가는 방법
계산과 방정식: 복잡한 인생 고민을 푸는 지혜
패턴 인식과 기하학: 적합한 삶의 방식을 찾으려는 본능
미분과 적분: 어머니의 사랑을 미분하면 남는 것
삼각함수와 로그: 우리의 감각을 통역해주는 멋진 계산법
수학과 물리학, 그리고 예술

4장 우주와 인간
우주의 탄생: 12월 31일 밤 11시 59분 59초에 시작된 과학의 역사
원소와 주기표: 하나뿐인 세계에 존재하는 사람 수만큼의 세상들
생명 원리: 물질이 생명으로 바뀌는 기적
진화: 살아남은 자가 강한 자라는 살벌한 실전 인생
기억의 메커니즘: 인간 존재의 소멸은 사망이 아닌 망각
과학자들의 인생 특강

에필로그: 지식의 성장과 공동체 정신
부록: 내가 읽은 과학책 연대기

 


에필로그: 지식의 성장과 공동체 정신

252 우주를 구성하는 물질 대부분이 정체를 규정하기 어려운 '암흑물질'로 가득 차 있다는 점을 알고 나면, 자연스럽게 우리가 모르는 것에 대해 겸손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리학자 닐스 보어는 '전문가란 자신의 좁은 영역에서 가능한 모든 실수를 해 본 사람'이라고 규정했다. 학자와 전문가란 우리가 어디까지 모르는지, 아직 모르는게 얼마나 방대한지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다. 무엇을 모르는지 잘 알기 위해 우리는 이렇게 오늘도 공부를 하는건지 모르겠다. 

유명한 관광지에 다녀온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찍는 사진이 있다. 원근감을 이용해 엄지와 검지로 에펠탑을 잡고 있거나 두 손으로 피사의 사탑을 떠받치고 있는 구도를 연출한다. 즉, 거리는 무시하고 눈에 보이는 대로 연출한 것이다. 동아시아의 고대인들은 음양의 조화가 우주 생성의 이치라고 보았는데 달을 '음'의 상징으로 해를 '양'의 상징으로 보았다. 해와 달을 동등한 자격으로 다루었던 것은, 그 둘이 각기 낮과 밤을 밝히는 데다 눈으로 보기에 크기도 같았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어마어마한 차이가 나는 이 두 천체가 지구에서 같은 크기로 보이는 것은 신기한 우연이다. 

음양오행설은 우주의 순환 원리를 인간의 삶과 조화시키려는 사상이다. 음양은 달과 해를 가리키고, 오행은 밤하늘의 움직이는 다섯 천체인 목/화/토/금/수, 즉 목성, 화성, 토성, 금성, 수성을 가리킨다. 고대인들의 눈에 보이는 행성이 이 다섯 개였다. 지구 저편의 고대 바빌로니아 사람들도 똑같은 것들을 보았다. 그들은 음양오행설 대신 이 다섯 행성에 해와 달을 추가하여 일주일 단위로 된 달력을 만들었다.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는 우주 생성을 다룬 플라톤의 대화편에 나오는 정다면체에 주목했다. 정다면체는 정4면체, 정6면체, 정8면체, 정12면체, 정20면체 등 5개뿐이다. 케플러는 이 다섯 개 정다면체를 태양계 다섯 행성과 연관 지어 지구를 포함한 각 행성들의 궤도를 분석하려고 했다. 위대한 과학자들도 후대 관점에서 보면 이렇게나 무모한 시도들을 많이도 하곤 했다. 

관측 장비와 기술이 발전하면서 태양계의 다른 행성들인 천왕성, 해왕성, 명왕성이 차례로 발견되었다. 1781년은 천문학 역사에서 매우 의미가 깊은 해다. 수천 년 동안 당연하게 여겼던 밤하늘의 다섯 행성 외에 다른 하나가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천왕성은 움직임이 매우 느리고 어둡기 때문에 그동안 아무도 태양계의 행성일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발견자인 윌리엄 허셜은 적외선의 존재를 발견한 과학자이기도 하다. 

1846년의 해왕성 발견은 수학의 위력을 대중적으로 잘 보여준 흥미로운 사건이었다. 천왕성 발견 후에 천왕성의 궤도 운동을 정확히 계산하려는 시도가 이어졌는데 기존 조건들을 정확히 입력해도 아주 미세한 오차가 종종 발생했다. 천문학자들은 천왕성 궤도에 영향을 미치는 '미지의 천체'가 주변에 있다는 것을 가정했다. 그리고 새로운 조건으로 방정식을 새로 만들었다. 그 다음에 그 미지의 천체가 있어야 할 자리를 확정한 뒤 그곳을 면밀히 관찰하였더니, 이제껏 보지 못했던 새로운 천체가 나타났다. 해왕성이었다. 아는 만큼 보이는 건 역시나 만고불변의 지혜였다. 

1930년에 발견된 명왕성은 크기도 너무 작고 여러 조건을 두루 충족하지 못하여 현재 태양계 행성의 지위를 잃어버렸다. 로웰천문대 연구원이었던 클라이드 톰보가 명왕성을 발견했다. 공개모집으로 '명왕성Pluto'이라는 새로운 이름이 붙여졌는데 줄여서 'PL'이라고 표기한다. 참고로 로웰천문대 설립자인 퍼시벌 로웰의 머리글자가 P와 L이다. 하나 더 참고로, 퍼시벌 로웰은《서유견문》을 지은 조선 개화기의 선비 유길준과 친구사이였다. 그는 유길준의 미국 유학을 도왔다. 뉴호라이즌스호는 명왕성 탐사 임무를 부여받은 우주탐사선으로 2006년에 발사되어 2015년에 명왕성에 도착했다. 명왕성 곁에 다가온 호라이즌스호에는 명왕성 발견자인 클라이드 톰보의 유해 일부가 함께 타고 있었다. 선구자를 향한 천문학자들의 존경과 추모 방식이 깊은 감동을 준다. 

당대의 지식이 미치는 우주관을 '코스모스'라고 부르는데, 우리의 코스모스는 확장되고 전환되면서 계속 발전해왔다. 우리가 아는 우주는 우리가 현제 아는 우주일 뿐이다. 허블 우주망원경의 시대가 되자 과학자들은 우주 탄생의 비밀을 다 밝힐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에 들떴다. 허블 망원경 성능의 100배를 자랑하는 제임스웹 망원경을 우주로 보낸 2022년의 천문학자들의 자신감과 기대감도 허블 때와 비슷하지 않을까. 

괴델이 증명한 수리논리 체계의 불완전성, 양자역학이 알려주는 소립자 세계의 불확정성 등 현대 과학을 규정짓는 특징은 한마디로 '불확실성'이다. 과학 공부는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모른다고 말하기 위해서 하는 거다. 확실한 것이 결국 아무것도 없음을 확인하는 과정이 과학 공부다. 학생이 모른다고 하는 말과 박사가 모른다고 하는 말은 맥락이 전혀 다르다. 학생의 모름은 호기심과 궁금함의 모름이지만, 박사의 모름은 인류가 아직 밝히지 못한 미지의 세계를 가리키는 모름이기 때문이다. "그건 아빠도 모르겠어." 그 말 한마디를 아들에게 건네기 위해 인생의 여러 가지를 경험한다. 그 숱한 것을 두루 경험했기에 모르겠다는 말을 웃으며 할 수 있는 것이다. 나보다 어린 세대에게 모른다는 말 한마디를 잘 하려고 먼 길을 돌아오는 게 인생 공부다. 

과학 공부는 내게 알려주었다. 태양계 끝자락에서 보면 1픽셀밖에 안되는 작고 푸른 이 행성이 우리의 집이라는 점, 우리 인류 호모 사피엔스는 서로 도우며 살도록 진화해왔고, 그러기에 우리도 공동체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해야 한다는 점, 나는 그걸 따로 증명하려고 하지 않고 자명한 공리로 받아들인다. 내 삶의 모토는 바로 이 공리이며, 여기서 인생의 여러 명제와 정리들이 나왔다. 삶이 더욱 더 풍부하고 아름다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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