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나드 베일린: 대서양의 역사 ━ 개념과 범주
- 책 밑줄긋기/책 2023-25
- 2023. 5. 31.
대서양의 역사 - 버나드 베일린 지음, 백인호 옮김/뿌리와이파리 |
한국어판 서문
서문
Ⅰ. 대서양 역사의 개념
Ⅱ. 대서양 역사의 현황에 관하여
감사의 글
옮긴이의 글
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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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대서양 역사의 개념
18 제2차 세계대전의 영향으로 제국주의 역사와 탐험 및 발견의 역사는 연구주제로 크게 성장하고 강화되었지만, 새로운 종류의 이해를 탐구하는 것보다는 단지 전체적인 풍경을 확대하는 데만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 제도와 법과 혁명과 생생한 발견들은 있었지만 협회나 사회조직이나 지속적인 문화적 만남은 없었다. 무엇보다 단순히 좀더 많은 정보를 요구하는 질문들만 있었고 아직 해결되지 않은 중요한 질문들은 없었다. 주제들의 통합도 없었고, 어떠한 보편적 중요성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하는 개념도 없었다. 거대 서사에서 다만 어떤 요소들에 대한 개별적인 설명들만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때에, 그러니까 제2차 세계대전 동안 그리고 대전 직후에, 상황이 변하기 시작하였다. 변화의 기원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역사학계 움직임의 일반적 특징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부분적으로는, 비록 부분적이기는 하지만, 근본적인 충동은 역사 연구 내부에 있지 않고, 외부 다시 말해 역사가들의 인식의 외부 맥락을 형성하는 공적 영역에 있었다. 궁극적인 기원은 1917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당시 27살로 유럽 전쟁에 대한 미국의 개입을 주장했으며 이미 매우 영향력 있는 기자였던 월터 리프먼의 저술에서 찾아볼 수 있다 1917년 2월에 "리프먼이 썼던 사설 가운데 가장 중요한 사설인" 「새로운 공화국」에서, 리프먼은 유럽 전쟁에서 미국의 이해관계는 연합국과 함께하며, 조국은 단순히 "대서양 고속도로"를 보호하기 위해 개입할 뿐 아니라, 다음의 사항들을 보호하기 위해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구 세계를 하나로 묶는 이해관계망을 보호하기 위해 개입해야 한다.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심지어 스페인, 벨기에, 네덜란드, 스칸디나비아 국가들과 범아메리카 국가들은 그들의 깊은 필요와 심오한 목적에 있어서 하나의 공동체이다 ······ 우리는 굴복함으로써 대서양 공동체를 배신해서는 안 된다. ······ 우리가 반드시 싸워야 하는 것은 바로 서구 세계의 공동 이해관계와 대서 양 강대국들의 통합을 위해서이다. 우리는 우리가 사실상 하나의 거대한 공동체이며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행동해야 한다는 사실을 인식해야만 한다.
두 달 후에 미국이 전쟁에 개입함으로써 리프먼은 자신의 주장이 정당했음을 입증 받았다.
그러나 공식적이고 지속적인 대서양 공동체를 건설하려던 리프먼의 희망은 전쟁 후의 고립주의 정책으로 인해 사그라들었고, 대공황이라는 국내 혼란 속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나 1917년의 리프먼의 생각들은 잊히지 않았고, 제2차 세계대전 중에 개입이라는 또 다른 투쟁을 치르면서 먼저는 포레스트 데이비스 그리고 그 후에는 리프먼 자신에 의해 재발견되었다.
21 리프먼은 대전 이후의 새로운 세계질서는 "단 하나의 국가가 아니라 역사적으로 문명화된 공동체인 거대한 지역의 국가들의 연합"이 될 것이며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고 주장하였다. 리프먼의 주장에 따르면 이들 국가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섬처럼 서로 분리된 핵심 군사대국들의 '대양 체제oceanic system'인 대서양 공동체가 되리라는 것 혹은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대서양 지역 안에서도 국가 간 차이가 존재하지만, 이 차이는 "지중해 서쪽에서 대서양 분지 전체를 아우르는 서구와 라틴 기독교 세계의 연장"인 "동일한 문화 전통 안에서의 다양성"을 말한다.
비록 리프먼이 역사에 대한 일반적 의식에 의존하고 있지만, 데이비스의 저술처럼 리프먼의 저술도 정치적 저술, 다시 말해 자국의 이해를 보호하기 위해 윌슨의 보편주의와 하나의 세계라는 이상주의를 포기한 현실정치Realpolitik 프로그램이다. 전후 세계를 대서양 국가들이 주도하는 지역세력 중심지들의 연합으로 보는 리프먼의 세계관은, 다른 시사 해설가들과 정치가들에 의해 인용되었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전개된 대립적인 세계질서에 이용되었다. 1945년 이후 십 년 동안 마샬플렌, 트루먼 독트린, 그리고 북대서양조약기구가 탄생하였다. 그리고 이 시기에 서구 전체에 걸쳐 대서양 동맹을 지지하는, 서로 역할이 겹치는 비정부 기구들이 지나치게 많이 출현하였다.
Ⅱ. 대서양 역사의 현황에 관하여
78 역사가들의 세계는 공적 세계와 마찬가지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이삼십 년 사이에 변화하였다. 이러한 변화들 가운데에는 대서양 지역을 뚜렷하게 구별되는 활동무대로 인식하는 변화가 있었는데 이는 결코 계획하거나 조정한 것이 아니었다. 대서양 역사를 주제로 서술한 역사가들은 다양한 시각, 다양한 이유와 다양한 동기를 가지고 대서양 역사에 접근하였다. 일부 학자들은 단순히 국지적인 관심을 추구하다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넓은 범위를 연구하게 되었고, 다른 학자들은 기존의 연구보다 좀더 넓은 범위를 탐구하기로 결심하였다. 대다수 학자들은 대서양 역사라는 주제가 드러내는 논리를 따라가고 있었다. 어느 누구도 현대 정치학을 역사에 투영하려고 하지 않았지만 리프먼이 "서양세계를 통합하는 뿌리 깊은 이해 관계망"이라고 부른 것을 확인하고 보호하기 위해 자신들 주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투쟁을 알아차리지 못한 역사가는 거의 없었다. 역사가로서 그들은 정치와 유리되어 있었지만 그들은 당대를 사는 사람들이었고, 그들의 인식은 그들 영역의 좀더 큰 맥락에서 자연스러운 표현을 발견하고 있었다.
83 역사는 가장 넓은 의미에서 본다면 서사narrative, 곧 연대기와 발달과 변화에 대한 이야기이며, 성장과 변화 그리고 소멸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렇게 볼 때 대서양 역사도 예외가 아니다. 대서양 역사는 시공간상의 큰 주제이며, 지리, 환경, 민족지, 경재 정치의 관점에서 볼 때 복잡한 대상이고, 자체적으로 발달과 변화의 기본단계들을 거치며, 그 자체로 하나의 이야기로 볼 수도 있다. 대서양 역사의 이야기 전체를 망라하는 것 또는 그 차원들을 올바로 나타내는 것조차 간단한 일은 아니지만 전체의 윤곽을 그려보거나 특정한 측면을 제시하려 노력한다면 적어도 기본 주제들을 명확히 하는 데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려면 기존의 역사서술에서 물려받은 두 가지 한계를 극복해야한다. 첫째 대서양 역사는 여러 나라들의 역사와 그 나라들의 해외 확장을 결합한 것이며, 대서양 역사의 근본적인 특성은 서로 다른 4-5개 유럽 국가의 역사와 서아프리카와 아메리카 토착민들의 지역적 역사를 집합했다는 데에 있다는 가정이다. 하지만 대서양 역사는 부분들을 더한 것이 아니다. 대서양 역사는 부분들의 합보다 더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대서양 역사는 영국적인 만큼이나 스페인적이며, 포르투갈적인 만큼이나 네덜란드적이고, 아메리카적인 만큼이나 아프리카적이다. 둘째 공식적 구조와 법적 구조가 현실을 반영한다는 가정이다. 근대 초 세계에는 어디에나 공식적인 설계design들이 있다. 예컨대 국가적 · 중상주의적 경제 정책, 제국적 · 지역적 정부 행정 조직화된 종교의 원칙과 제도에 대한 설계들이 있다. 그러나 이런 공식적인 설계들이 현실을 반영하는 경우는 드물다. 공식적인 구조 아래에는 고유의 패턴을 지닌 비공식적인 현실이 있다.
내가 볼 때 출발점은 대서양의 근대 초 3세기 전체를 아우르는 특정한 특징들을 정의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대서양 역사는 그 요소들과 근본적 성격이 역사기들 앞에 움직임 없이 놓인 정체된 역사적 구성단위가 아니다. 대서양 역사는 움직이는 세계에 대한 이야기이다. 대서양 역사의 두드러진 특징들은 되풀이해서 바뀌었다. 문제는 대서양 역사의 영속적 단층persistent strata을 추상적인 용어로 설명하기 위해 근대 초 대서양 세계 전체를 한덩어리로 묶는 것이 아니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우리가 해야 할 과제는 그 반대이다. 추상적이고 메타역사적인 구조적 요소들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대서양 세계의 발전과 움직임, 역학을 단계적으로 표현하는 것, 다시 말해 대서양 역사를 하나의 과정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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