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원의 북리스트 | 사회사상의 역사 - 제3장(3)

 

 

2023.05.30 사회사상의 역사 - 제3장(3)

  


 

오늘 《사회사상의 역사》는 제3장 고전적 ‘사회계약’ 사상의 전개에서 제4절 홉스의 기계론적 인간관과 절대주권 이론을 검토하겠다.  있는 그대로 읽는 것이 아니라 검토하겠다고 말하는 것은, 사실 우리가 홉스의, 저자가 홉스에 대해서 쓴 것을 뭔가 대조해서 볼 수 있는 자료가 있다. 「정치사상사 토론」에서 회페의 저작에 나타난 얘기를 정리했었고 거기에 덧붙여서 논평을 붙여 놓은 것이 있다. 그것을 가지고 검토를 해보는 것이 지금 해보려는 일이다. 먼저 지난 시간에 얘기했던 사회계약의 논리 이 부분을 다시 한번 말하면 홉스와 로크는 둘 다 사회계약이라는 것을 말했기 때문에 그 둘을 고전적 사회계약 사상이라고 하는 범주 아래 집어넣을 수는 있겠는데 그것은 단순히 contract를 말했다고 해서 그들을 같은 범주 아래 묶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이 말하는 social contract라는 것,. 그것이 어떤 내용을 가지고 있는가를 볼 필요가 있다. 토마스 홉스에 있어서의 social contract와 존 로크에 있어서의 social contract는 아주 성격이 다르다. 아주 본래적인 의미에서의 리버릴리즘, 즉 자유주의라고 불리는 리버럴리즘은 자연적 자유natural liberty 또는 개인이 가진 자유individual natural liberty를 발현한 것으로의 property, 그리고 그 property를 가지고 사회적인 계약을 맺고 또는 사회구성체를 만들어 내고 하는 것을 그것을 원리의 출발점으로 삼아서 철저하게 individual natural property라고 하는 것에서 출발해서 그것을 바탕으로 점유Besitz, occupation, possession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재산property을 도이치어로는 점유Besitz에서 소유Eigentum로 가는 것인데, 그것을 바탕으로 사회적인 원리로 도출해내는 것이 일반적인 리버럴리즘이라고 한다. 그 자유주의 가장 전형적인 이론은 존 로크에서 발견할 수 있는데 홉스는 그것과 다르다. 그리고 존 로크는 철저하게 individual liberty이기 때문에 바로 그런 것을 가지고 각각의 개인이 property로서 표상되는 liberty를 가진 개인이 자유로운 계약liberal contract을 맺는다. 그것이 바로 그가 civil society 또는 state를 만들어 내는 원리이다. 그래서 아주 본래적인 의미에서의 소유적 개인주의possessive individualism 그리고 그것의 리버럴리즘은 로크에서 발견할 수 있다. 홉스는 리버럴이라는 말을 썼다고 해도 그렇게 분류할 수 없다. 그래서 제3장 고전적 ‘사회계약’ 사상의 전개라는 것은 적절한 제목이 아니고 홉스와 로크를 하나로 묶어서는 안된다는 것 그리고 여기에 더욱이나 루소까지 끼워넣으면 큰일난다. 로크를 하다보면 얘기가 나오는데 107페이지를 보면 "국민의 생명 · 자유 · 재산(life, liberty, estate)'으로서의 '프로퍼티(property)'의 보호"라고 나온다. 그러니까 로크할 때 더 하기로 하고 우선 "홉스의 기계론적 인간관과 절대주권 이론"을 본다. 제목은 아주 딱 맞다. 절대주권 이론이라는 것이 있다. 그런데 이제 절대주권 이론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해명하는 것이 오늘 얘기의 중심이다.  

 

책을 보면 홉스의 생애가 있는데 이 생애라고 할 때 1630년대에 대륙을 경험해서 근대적 과학과 철학의 기풍을 접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중요한 얘기이겠다. 그 다음에 "1640년에 장기의회와 내전(청교도 혁명) 동안에 쓴 『법학원리』에 의해 왕당파로 지목"되었다. 법학원리라는 책, 이것은 일반적으로 홉스의 저작에 대한 명료한 설명은 엘로이시어스 마티니치가 쓴 《홉스》 평전이 있다. 거기에 잘 정리가 되어있다. 그러니까 법학원리라고 하지 않고 법의 원리라고 하는 책이 있다. 지금 왕당파로 지목되어 이렇게 되어있는데, 글쎄 그렇기는 할 것 같다. 홉스가 왕정복고 이후에 찰스2세와 화해를 했고 연금을 지급받기 시작했다. 물론 법의 요소들에서는 정치적으로 왕에게 저항하는 의회를 비판하고 왕당파를 옹호하고 종교적으로 가톨릭 교회와 개신교회에 대립각을 세우며 영국 국교회를 옹호했다. "왕당파로 지목되어 파리로 망명"했다는 부분들은 일정한 정도는 맞는 말이기는 한데 지나치게 간단하게 볼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다. 예전에 엘로이시어스 마티니치의 책을 참조해서 홉스의 저작들을 「정치사상사 토론」 할 때 정리해 둔 것이 있다. 그것을 다시 한번 참조하면서 볼 필요가 있다. 예전에는 홉스의 저작들이 어떤 순서로 쓰였다든가 이런 것들이 단순 명료하게 정리가 되었는데 지금은 잘 안된다고 하는 것을 생각해둘 필요가 있다. 그 다음에 《시민론이》이 1642년에 나왔도 《리바이어던》이 1651년에 나왔는데 왕당파라고 무임을 샀다는 얘기. 그다음에 "국왕의 비호 아래 사색과 집필을 계속했다." 찰스2세 비호 아래서 했다는 것은 맞는 얘기이다. 대체로 맞는데 이 책에 나와있는 얘기는 굉장히 단편적이기 때문에 저작과 생애에 대해서는 그냥 단순히 믿으면 안되고 조금 더 상세하게 정리해두는 것이 더 낫겠다. 간단하면 간단할 수록 속편하기는 한데 그렇게 속 편한 것을 찾다 보면 정확성과 엄밀함이 떨어진다. 정확성과 엄밀함이 떨어질 것이면 애초에 공부를 왜 하겠는가. 공부를 한다고 하는 것은 정확성과 엄밀함을 추구하면서 그것을 명료하게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지 간단명료하게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제3장 97 1640년에 장기의회와 내전(청교도 혁명) 동안에 쓴 『법학원리』에 의해 왕당파로 지목되어 파리로 망명해, 마찬가지로 망명중이던 황태자(훗날의 국왕 찰스2세)의 수학교사가 된다.


그 다음에 "홉스 필생의 과제는 베이컨과 데카르트가 기초를 다진 근대과학의 방법을 인간과 사회의 문제에 적용하는 것"이었다. 방법적으로는 수학적 방법을 가지고 해야 한다는 것, 두번째로는 종교전쟁과 내전이라는 정치적 현실이 있고, 그 다음에 도덕적으로는 공동의 확신이 사라진 상황, 이것을 회페는 "홉스는 이 세 가지 도전을 자기 철학체계에서 결합하여 전통 전복적 논증모형인 사회계약론을 만들어 낸다"고 말했다. 글쎄 홉스에게서 사회계약론보다 더 중요한 것은 주권을 성립시키는 신의계약covenant이다. covenant라고 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그러니까 홉스는 covenant주의자이지 contract주의자는 아니다 라고 말할 수 있다. 그 다음에 99~100페이지에 나와있는 부분들은 대체로 홉스의 논지를 따라가서 성립해 있다고 하겠다. 그런데 거기서 한가지 100페이지를 보면 "개인은 주권자가 되는 '개인 혹은 합의체'에 만물에 대한 자연적 권리를 양도하며, 전쟁 상태를 탈출해 '국가(commonwealth)'를 수립한다. 홉스가 강조한 것은 이 탈출을 최종적으로 가능케 하는 것은 인간의 '이성'이 아니라 '죽음의 공포'라는 정념이라는 것이었다. 이 경우에 국가 주권은 절대적인 것이지 않으면 안되는데," 이 부분이 이제 대개의 경우 홉스에서 주권자 되는 개인 혹은 합의체라고 하는 것을 국가라고 생각하기 쉽다는 것이다. 그것은 조금 다르게 생각해볼 수 있다. 일단 인간이라는 존재는 자연상태에 머물러 있게 된다. 경쟁을 하고 타인에 대한 불신이 있고 영광에 대한 욕망이 있어서 모두가 경쟁을 하는 자연상태에 머무르게 된다.  이것은 내란의 상태이다. 홉스가 직면했던 정치적 상황을 일정한 정도로 표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거기서 벗어나야 하는데 그 방법은 자연법이다. 자연법이라고 하는 것은 내란을 벗어나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자연법의 제1법칙이 있다. 《사회사상의 역사》에서 보면 자연법이라는 것은 제2자연법에 따르는 것, 사람들이 자신의 자연권(자기보존권)을 서로 방기하는 것이다. 자연법의 제1법칙은 평화를 추구하라는 것이다. 그것이 어떻게 하면 평화를 추구할 것인가 라고 할 때, 여기서 중요한 것이 하나 있는데 100페이지를 보면 "계약 위반의 이익(쾌락)보다도 처벌의 공포(고통)가 더 큰 제도를 창출할 필요"라는 부분에서 계약이라는 말을 그냥 그대로 썼다. 저자는 홉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covenant와 contract를 구별한다는 것이다. 그것에 대해서 거론을 하지 않는다. 그러면 우리가 홉스의 정치사상을 이야기할 때 covenant와 contract를 구별해서 얘기하지 않으면 심각한 결함이 있는 설명이라고 보면 된다. 그것이 무슨 말인가. 자연상태에서 벗어나는 열쇠는 자연법의 제1법칙은 평화를 추구하라는 것인데 평화를 추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제2 자연법이라고 하는 것이 있는데 자기 보존권을 버리라는 것이다. 자기 보존권을 버리기로 약속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과 covenant를 맺는다는 것이다. 사실 정확하게는 다른 사람들과 covenant를 맺는 것이 아니라 주권과 covenant를 맺는 것이다. 그러니까 covenant라는 것은 신의계약인데 그 계약이라는 것이 contract가 아니라 전적인 명령이다. 죽기 싫으면 이렇게 해야 해 라는 covenant를 맺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도 계약이라고 하면 계약일 수 있는데 우리가 일반적으로 당사자들과 당사자들 간 사이에 얼마든지 합의를 해서 바꿀 수 있는 것 아니라 전적으로 복종해야 하는 명령으로서의 신의계약을 맺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주권을 세우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홉스는 contract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주권을 세우는 신의계약에서는 미래에도 항상 그것에 복족할 것, 주권에 변함없이 복종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절대주권이라고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절대주권이라고 하는 것이 반드시 개인이다 그러면 우리는 독재자를 떠올리기 쉬운데 독재자를 떠올리면 안되고 하나의 불변하는 뭔가가 있어야 그것으로부터 인간과 인간 사이에 맺게 되는 contract라든가 법이라든가 이런 것들이 나오게 된다. 이를테면 적절한 비유는 아니겠지만 헌법을 생각하면 된다. 헌법이라는 것은 물론 우리가 합의를 해서 만들었는데 일단 모든 한국 사회에서 통용되는 모든 법은 헌법의 불변성이라는 것을 가정하고 그것으로부터 도출되어 나온다. 그러니까 헌법이라고 하는 것을, 물론 헌법재판소에서 헌법을 해석하기 하고 그런다, 그런데 그렇지 않고 헌법이라고 하는 것을 불변의 것이라고 생각하고 헌법에 있는 명령들을 우리는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하면 헌법을 만들어 내는 계약은 바로 covenant겠다. 그리고 그것 위에서 민법도 나오고 형법도 나오고 그렇게 된다. 그러면 그런 것들은 contract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러면 홉스는 일단 불변하는 것이 일단 하나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게 바로 절대주권이다. 그러면 여기에 저자가 쓴 것처럼 ‘개인 혹은 합의체'라고 했다. 그런데 이 개인이라는 말에서 혼동하면 안되는 것이 이 개인은 그냥 인격을 가진 개인이 아니라 하나의 법의 구현체로서의 비인격적 실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러니까 차라리 법적 인격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적당하겠다. 그것을 홉스는 얘기했다. 그래서 101페이지를 보면 "홉스의 절대주권은 절대군주 찰스 1세의 권력일 수도 있었고 청교도혁명의 지도자인 크롬웰의 공화주의적 권력일 수도 있었다." 이것이 그렇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데 홉스의 텍스트를 있는 그대로 면밀하게 읽어보면 이것이 꼭 특정한 살아있는 인격체로서의 어떤 인간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그냥 홉스는 불변의 비인격적인 실체로서의 주권sovereign을 생각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불변의 비인격적인 실체로서의 주권을 창설하자는 약속을 covenant라고 말했던 것이다. 그것을 생각해두는 것이 중요한 점이라고 하겠다.  

제3장 97 홉스 필생의 과제는 베이컨과 데카르트가 기초를 다진 근대과학의 방법을 인간과 사회의 문제에 적용하는 것이었으며, 영국 사회를 혼란에 빠뜨리던 정치와 종교를 둘러싼 심각한 대립을 종래의 종교나 정치 이데올로기가 아닌 새로운 학문의 방법으로 해결하는 것이었다. 

제3장 100 개인은 주권자가 되는 '개인 혹은 합의체'에 만물에 대한 자연적 권리를 양도하며, 전쟁 상태를 탈출해 '국가(commonwealth)'를 수립한다. 홉스가 강조한 것은 이 탈출을 최종적으로 가능케 하는 것은 인간의 '이성'이 아니라 '죽음의 공포'라는 정념이라는 것이었다. 이 경우에 국가 주권은 절대적인 것이지 않으면 안되는데, 주권을 수립하는 개인들의 의지가 주권자의 의지와 동일하다는 주권 수립의 논리 자체에 국가 주권의 절대성의 근거가 있다. 

제3장 100 '전쟁 상태'를 탈출하는 유일한 방법은 '제2의 자연법'에 따르는 것, 즉 사람들이 자신의 자연권(자기보존권)을 서로 방기하는 것이다. 

제3장 101 홉스의 절대주권은 절대군주 찰스 1세의 권력일 수도 있었고 청교도혁명의 지도자인 크롬웰의 공화주의적 권력일 수도 있었다. 

 

그 다음에 101페이지를 보면 "자유주의와는 거리가 먼 홉스의 정책론은 주권자에 의한 사상 · 언론 · 출판의 통제라는 주장에서도 드러난다."고 했는데 홉스의 정책론 이런 것들을 자유주의 측면에서 볼 수 있다. 홉스를 보면 민주정과는 아주 거리가 먼 사람이고 그러니 자유주의와 거리가 먼 것도 아주 당연한 것이겠다. 그런데 홉스가 강조점을 두고자 했던 것은 사실 그런 것은 아니었다고 하면 논점이 벗어난 지점도 있다. 바로 위를 보면 "홉스의 경제관은 절대왕정기의 중상주의 정책을 반영한 통제주의적인 것이며 시장 매커니즘의 자립적 성장이라는 관점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물론 그렇다. 홉스 시대에서 그것까지 생각해보기는 어렵다. 그런데 맥퍼슨이 쓴 《소유적 개인주의의 정치이론》을 보면 홉스야말로 또 자본주의 사회의 어떤 이데올로기로서의 자유주의적인 인간관을 가지고 있었다는 논변도 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홉스에 대해서 다르게 볼 수 있는 측면도 있다.  

제3장 101 홉스의 경제관은 절대왕정기의 중상주의 정책을 반영한 통제주의적인 것이며 시장 매커니즘의 자립적 성장이라는 관점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제3장 101 자유주의와는 거리가 먼 홉스의 정책론은 주권자에 의한 사상 · 언론 · 출판의 통제라는 주장에서도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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