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원의 북리스트 | 사회사상의 역사 - 제5장

 

 

2023.06.13 사회사상의 역사 - 제5장

《사회사상의 역사》 오늘은 제5장 루소의 문명비판과 인민주권론 이 부분을 검토해 보겠다.  《사회사상의 역사》 이 책은 여러 차례 얘기했듯이 지금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 낡아버린 논의의 구도, 프레임을 가지고 있다. 무심코 받아들이면 안 되는 것들이 꽤 있는데 이것들을 검토하면서 책을 읽어가면서 어떤 부분은 주의해야 되는가 그런 것을 얘기하려고 한다. 우선 제1절은 ‘시대'의 문맥: 문명사회의 위기인데 조심해야 되는 부분이 있다. 지금 현재 18세기 루소가 등장하는 이 시기, 시기가 문명사회론이다 이런 얘기를 하게 되면, 이것은 이 시대의 사상사에 대한 논의에서는 그렇게 좀 도식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역사 자체를 들여다보면 이게 문명사회론이다, 이때의 유럽이 지금 이제 계몽에서 문명으로 가는 시기다 그렇게 말하는 것, 제2절의 제목이 계몽에서 문명 비판으로 인데, 이렇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저는 이제 앞으로 17세기, 18세기 유럽, 17세기는 일반 위기인 것은 분명한데 그 일반 위기가 계몽주의에 의해서 극복되고 그 다음에 계몽주의가 다시 또 문명사회론으로 전개되어 간다, 이건 진보적 역사관이 가지고 있는 전형적인, 영국식으로 말하자면 휘그 사관이다. 자유가 확대되어가는 과정이다 이렇게 말하는 것일 수 있겠는데 이 적절치 않은 이 논의 구도이다.

 

우선 보면 141페이지에 "계몽사상이 꽃핀 18세기 전반이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성장'의 시대였음에 비해 18세기 후반은 '위기와 혁명'의 양상을 띠기 시작한다." 이런 것들이 가장 전형적인 안정과 성장 그리고 위기와 혁명 이런 대비 구도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데 18세기 전반과 18세기 후반을 이렇게 파악하면 안 된다. 우선 제가 지난번에 "계몽사상과 문명사회론의 전개"가 다뤄진 제4장도 그렇고 그 다음에 제3장에서도 그렇게 얘기했는데 18세기 전반과 18세기 후반을 안전과 성장시기 그 다음에 위기와 혁명의 양상 이런 식으로 논의하는 건 적절치 않다. 우선 다시 한 번 거론을 하자면 베스트팔렌 체제가 1648년에서 1700년까지 지속된다. 50년 정도 지속되죠. 1648년에 30년 전쟁이 끝나고 베스트팔렌 조약이 맺어진다. 그래서 1700년 딱 그렇게까지, 즉 17세기 후반부가 베스트팔렌 체제가 된다. 그런데 베스트팔렌 체제가 어떻게 해서 깨지게 되는가. 프랑스가 에스파냐 왕의 계승 전쟁 1701년에서 1714년까지 지속된 에스파냐 왕이 계승 전쟁에 개입을 하게 된다. 그러니까 "18세기 전반이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성장 시대" 였다라는 말 자체가 굉장히 사태를 호도하고 있는 그런 용어라고 할 수 있다. 프랑스가 에스파냐 왕위 계승 전쟁에 개입해서 패배해버린다. 그리고 거의 동일한 시기에 대북방전쟁에서는 스웨덴이 패배를 하게 된다. 그러니까 18세기 전반이라고 하는 게 베스트팔렌 체제가 깨져 나가기 시작하면서 사실은 18세기 후반의 위기와 혁명이라고 하는 것이 어떻게 보면 이제 준비되고 있던 시기다. 그렇게 말하는 것이 역사의 연속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설명이다. 갑자기 안정과 성장이었는데 그러면 결정적인 것이 여기 보면 식민지 미국의 독립 선언과 프랑스 혁명이다 라고 되어 있다. 그런데 식민지 미국의 독립선언이 또 영국 중상주의 체제의 붕괴를 보여주고 그 다음에 프랑스 혁명이 절대 왕정 체제 내 개혁에 의한 근대화라는 프랑스 계몽의 전략이 파탄했음을 의미한다 라고 했는데 글쎄, 이렇게 쉽게 경제적인 어떤 체제와 그 다음에 사상운동이었던 프랑스 계몽의 전략을 혁명에 의해서 파탄되었다 그렇게 연결시킨다는 것은 굉장히 도식적이고 적절치 않다. 적어도 에스파냐 왕위 계승 전쟁과 대북방전쟁에 의해서 베스트팔렌 체제가 깨지면서 18세기 전반이 위기를 슬슬 성숙시킨다. 그렇게 성숙시키면서 영국은 이때 이제 프랑스가 에스파냐 왕위 계승전쟁에서 패배하면서 유럽의 서쪽 지방은 영국이, 말하자면 패권자로, 헤게몬hegemon으로 등장을 하게 되고 이제 북방에서는 대북방전쟁에서 스웨덴이 러시아에 패배함으로써 러시아가 헤게몬hegemon으로 등장을 하게 된다. 그렇게 해서 이제 18세기 후반으로 이어져 가게 된다.

제5장 141 계몽사상이 꽃핀 18세기 전반이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성장'의 시대였음에 비해 18세기 후반은 '위기와 혁명'의 양상을 띠기 시작한다.


그러니까 루소와 스미스가 "계몽사상의 역사적 한계를 입증한 이후 계몽사상 내부에서 그 한계를 넘어서려는 사상가가 등장할 필요성"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필요는 없다.  스미스는 우리가 《철학적 급진주의 형성》 이런 것을 읽어봐도 스미스가 뭔가를 극복하려고 등장했다기보다는 그 당시에 스코틀랜드 계몽주의의 연장선상에서 영국이 이제 향후 대영제국으로 나아가는 데 있어서 뭔가를 실천적으로 정책적으로 제시하려고 했다 하는 것이 이제 아담 스미스의 업적이라면, 아담 스미스도 한계를 보여준다. 그리고 프랑스는 중농주의 학파가 등장하면서 정치경제학을 과학화하는 그런 성취를 보여주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과연 이 루소가 계몽사상의 내부에서 그 한계를 넘어서려는 사상가 인가 그리고 과연 루소의 문명 비판이라고 하는 것이 그 당시 사회에 대한 어느 정도 적실성 있는 비판인가 그런 것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루소가 시대적인 맥락을 뭘 가지고 있는가, 글쎄 루소의 사상을 조금 이따 보면서 얘기를 좀 해보겠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이제 스웨덴이 대북방전쟁에서 스웨덴이 러시아에 패하기 전에는 일단 16세기 중반 이후부터, 그러니까 1648년에 끝난 30년 전쟁에 말하자면 스타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스웨덴이 그렇게 된 게 1523년 이후 그러니까 16세기 중반 이후이다. 그때부터 국력을 키워와서 17세기 중반에 오면서부터 스웨덴이 아주 유럽의 강자로 등장을 하게 된다. 그런데 그 전의 얘기를 잠깐 보면 1397년 칼마르 동맹이라는 것이 있다.  덴마크가 주도해가지고 스웨덴과 노르웨이를 자기 주도 아래에 두는, 즉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이게 거의 연합 왕국 수준으로 결합이 되는데 그게 1397년, 1400년이라고 보면 는데, 그때의 칼마르 동맹이라고 한다. 그런데 덴마크가 주도해서 스웨덴과 노르웨이를 거의 복속시키는 수준으로 삼국동맹을 맺게 되는데 그렇게 함으로써 덴마크가 유럽 최대의 왕국이 된다.  그런데 이제 1520년 무렵에 스웨덴이 독립을 요구하고 그것을 못마땅하게 여긴 덴마크가 이제 스톡홀름에 가서 그 귀족들을 죽이는 이른바 스톡홀름 피바다 사건이라는 게 벌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웨덴은 강력한 독립 요구를 계속하게 되고 그렇게 하면서 스웨덴이 덴마크로부터 독립을 하게 되는 게 1523년이다. 1523년, 그때가 바로 이제 동맹이 해체된다. 그런데 덴마크가 스웨덴이 독립을 해나가면서 칼마르 동맹이 해체되었다고는 해도 여전히 덴마크는 북유럽의 강자였고 그 여파가 남아 있었다. 유럽 최대의 왕국이라고 하는 그 명성의 여파가 남아 있었다.  다시 말해서 16세기 중반 그러니까 1500년대 중반쯤에 유럽에서는 신흥 강자로 떠오르는 게 스웨덴이기는 한데 덴마크도 무시할 수 없는 그런 국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에스파냐는 말할 필요도 없다. 에스파냐가 이제 쇠퇴하게 된 건 나중 일이니까. 그런데 영국은 이 때가 바로 엘리자베스1세 시대이다. 1533년에서 1603년까지가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이 그 재위에 있던 시기이다. 영국은 에스파냐나 스웨덴에 비하면 국력이 뒤지는 상태였다. 이때 영국 사람들이 덴마크나 스웨덴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았겠는가. 엘리자베스 1세 시대에 한 번 생각해 볼 만한 지점이 있다. 그걸 또 생각해보면 셰익스피어가 덴마크를 어떤 시선으로 보았겠는가 그리고 그 당시 영국 사람들이 덴마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했겠는가. 지금은 영국과 덴마크는 비교가 안 되지만 1397년 칼마르 동맹부터 1523년 동맹이 해체되었는데 거의 150년 가까이 유지된 유럽의 최대 왕국을 이끌었던 덴마크, 그 나라가 이제 점점 쇠락해지고 있는 그런 상황 그게 바로 이제 엘리자베스 1세 시대의 유럽 발트해 연안을 둘러싼 그런 정세라고 할 수 있다. 이건 난외로 그 당시 국제 정세가 그렇다. 엘리자베스 1세 시대 그러니까 에스파냐의 무적함대를 물리쳤다 하는 것도 정말 엄청나게 운이 좋은 것이다. 그냥 지나가다가 에스파냐 정도는 우리 가볍게 이길 수 있어 라는 그런 수준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게 이제 국운이 따른다 그렇게 말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설명 요소가 없을 정도로 그렇다. 


루소가 문명사회의 현실을 위기적인 것으로 파악했다 라고 하는 것이 그 당시에 과연 문명사회 위기를 루소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는가 그것은 좀 과잉 설명이다. 루소만 좀 그랬다고 보는 것이 오히려 적절하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 보면 루소의 《인간불평등 기원론》이라든가 이런 것들이 굉장한 통찰력을 보여주는데 그 당시에 과연 그런 것들이 있을 수 있었겠는가 그런 것들은 좀 생각해 볼 만한 여지가 있다. 그리고 이제 18세기에는 오히려 예전에 「정치사상사 토론」을   하면서 푸코의 《안전, 영토, 인구》를 인용했던 것처럼 루소처럼 문명사회를 비판하는 것이 주류 사람들의 관심사였다기보다는 프랑수와 케네, 즉 중동주의 학파, 이런 사람들처럼 경제적 통치라고 하는 건 오히려 문명을 좀 더 촘촘하게 해야 하는 그런 것들이 더 중요한 것들이다. 루소가 그것에 좀 반대되는 영역으로 나아간 것이 아닌가 그렇게 보는 것이 적절하겠다.

 

정리해서 얘기하면 문명사회라고 하는 것에 대한 비판, 이것이 루소라고 하는데 그것은 당시 그 시대의 문맥과는 거리가 있다. 오히려 이 당시 시대 유럽 대륙에서의 시대적인 맥락을 가장 잘 반영하고 있는 그런 사상은 중농주의 학파라고 말하는 것이 적절할 수 있다. 

 

그 다음에 계몽주의라고 하는 것, 디드로라든가 이런 계몽주의 학파, 계몽 철학자들, 그 계몽 철학자들도 영국은 물론 몽테스키외라든가 이런 사람들이 영국을 동경한 것도 사실이긴 하지만 그들이 강조했던 건 과학이다. 과학적 합리주의 이런 것들이 훨씬 강조되었다. 루소가 프랑스와 영국의 현실을 "강자와 약자의 불평등을 본질로 하는 부패하고 타락한 것으로 보았다."  이건 루소 개인의 생각인데 그 당시의 사람들이 과연 루소처럼 문명비판을 생각하고 있었는가 그것에 대해서는 다른 이견을 또는 적절치 않은 판단을 한다고 볼 수 있다.  그 다음에 143페이지에 보면 "루소는 프랑스혁명을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사상은 『백과전서』 이상으로 프랑스혁명을 사상적으로 준비한 것이었다." 30년 전에는 이것이 통설이었다.  제가 30년 전에 박사학위 논문을 쓸 때 이건 누구나 다 받아들인 통설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프랑스혁명을 루소가 사상적으로 준비했다 라고 하는 말을 주장하는 사상사가는 아무도 없다. 《프랑스혁명의 문화적 기원》 이런 책들, 로제 샤르티에 이런 사람들이, 이런 프랑스혁명을 논하는 사람들이 다 이제 이것을 논박을 해내버렸고, 프랑스혁명을 사상적으로 준비한 것이었다는 것은 이를테면 좌파적인 견해로 앙리 소불(알베르 소불) 이런 사람들이 내놓은 얘기인데 이런 논의들은 지금은 김응종 교수의 《프랑스혁명사는 논쟁 중》 이런 걸 봐도 이제는 루소가 프랑스 혁명을 사상적으로 준비했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회사상의 역사》 이 책은 이런 부분들에서 업데이트가 아니라 전면적으로 이 사태를 바라보는 프레임을 다시 좀 정비할 필요가 있겠다.

제5장 143 루소는 프랑스혁명을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사상은 『백과전서』 이상으로 프랑스혁명을 사상적으로 준비한 것이었다. 


그 다음에 오트프리트 회페가 얘기했던 것처럼 사정없는 문명 비판을 한 건 사실인데 "이성과 진보에 대한 자기 시대의 자부심에 맞서 고대 도시국가 체제와 고대의 공화주의적 덕을 주창했다"라고 되어있다.  그러니까 루소의 이런 점들을 보면 과연 루소가 문명을 비판한 건 맞는데 그게 대안으로 제시한 것들은 과연 어떤 정도의 수준에 있었던 것인가 그거 좀 문제가 있겠다. 

 

두 번째 섹션이 "계몽에서 문명비판으로"로 되어 있는데 이게 그렇게 단선적으로 계몽이 문명비판으로 나갔다고 하는, 사상이 그렇게 단선적으로 변하면 얼마나 공부하기가 쉽겠나, 그런 것은 좀 그렇다. 그 다음에 루소의 문제, 세 번째 섹션 루소의 '문제'라고 하는 것은 아주 분명하다. 이것은 얘기가 아주 정확하게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그런 부분이다.  루소는 이것을 문제로 삼은 건 틀림없다. 그런데 이제 인간이라고 하는 존재가 불평등한 곳에 살고 있다 이런 것이다. 그러면 인간 불평등 기원론은 《인간 불평등 기원론》은 인간의 불평등을 고착시키는 절차들에 대해서 그게 이제 문명사회 때문에 그런 것들이 되어 있다. 그런데 그게 이제 앞서 얘기한 것처럼 그 당시 사회의 일반적인 어떤 코멘트를 받을 만한 얘기인가 그건 아니라는 것이다. 사회라고 하는 것은 정치적 결사체이다. 사회계약론 또는 정치적 법의 원리들 이것을 할 때 《인간불평등 기원론》에서의 사회는 자연적 결사체이다. 그리고 이제 인간 집단 일반에서는 관습적 불평등이라고 하는 것이 특권privilege이라고 하는 것이다.  부와 명예와 소유, 이런 것들, 특권. 그것이 이제 관습적 불평등이 실정법을 가지고 정당화시키고 불평등을 고착화시킨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인간 불평등 기원론》에 등장하는 사회는 인간의 자연적 결사체인데 그런 자연적 결사체에 있는 관습적 불평등을 실정법을 가지고 정당화시켜서 그 불평등을 고착화시키게 된다. 그게 바로 이제 문명이라고 하는 것이다.  실정법이라고 하는 것을 문명의 대표적인 요소로 제시를 한다. 그런데 그런 불평등을 제거하려면 사회를, 관습적 불평등이 통용되고 있고 그것을 실정법으로 정당화하고 있는 자연적 결사체를 전면적으로 폐기하고 완전히 사회 계약이라고 하는 것을 통해서 일반의지를 성립시키고 질적으로 다른 종류의 정치적 결사체를 성립시켜야 한다. 이게 바로 루소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다. 즉 그게 바로 사회계약론이다. 그러면 루소가 말하는 사회계약론의 이 사회계약은, 여기에서도 로크하고 비교도 있는데, 로크와는 종류가 다른 것이다. 로크는 동의에 의한 정치사회가 있고 신탁에 의한 정부수립 이렇게 이중의 구성을 취했다고 하는데, 로크는 말 그대로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사회계약인 contract에 해당한다. 그런데 루소가 말하는 사회계약은 명칭은 사회계약이라고 써 있는데 사실은 pact이다. 그러니까 일반의지를 성립시키는 사회계약이다. 그래서 이제 홉스가 말하는 것과 같은 covenant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신약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루소는 사회계약이라고 하는 말을 쓰고는 있지만 이게 실질적으로는 covenant에 해당한다 라고 이야기를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전체주의적인 것이다.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홉스가 말하는 covenant나 루스가 말하는 사회 계약은 일반 의지를 성립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일반 의지라고 하는 것을 성립시킴으로써 전체주의 국가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당연히 루소는 민주정과 아무 관계가 없고 전체주의 국가의 핵심이 되는 것이다. 그것을 생각해 둘 필요가 있겠다. 

 

그 다음에 158페이지를 보면 " '사회계약'에 의한 인간성의 변화(인간 혁명)를 상징하는 것", 이것은 아주 잘 잡았다. 그런데 이 사회계약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성의 변화를 유발한다. 전혀 다른 종류의 존재 방식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게 바로 이제 루소의 사회계약론에 나오는데 인류는 존재 방식을 바꾸지 않으면 소멸할 것이다.  즉 일반 의지에 동의하는 사회계약을 해서 질적으로 다른 종류의 정치적 결사체를 성립시켜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예전에는 도시국가라는 이름을 갖고 있었고 지금은 공화국이라고 부르거나 이제 정치체라고 부르거나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그게 바로 이제 루소가 말하는 사회 계약의 의미이다. 그러면 이제 루소의 사회 계약에 있어서 공공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이고 개인의 자유라고 하는 건 무엇인가. 개인의 자유, 권리라고 하는 건 사실은 성립할 수 없다. 공공의 것에 완전히 스스로를 복종시키는 그런 삶, 그런 삶이 바로 루소가 지향하고 있던 그런 정치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루소는 전체주의의 기원에 해당하는 사람이다. 멀리 그 기원으로 가자면 종교적인 신약에 의해서 성립하는 그런 국가들 신정 국가, 그런 국가들도 다 전체주의적 국가라고 할 수 있는데 근대에 있어서는 이제 홉스와 루소, 홉스와 루소를 같은 맥락에서 우리가 볼 수 있다 그렇게 말할 수 있다. 

제5장 158 루소는 '사회계약'에 의한 인간성의 변화(인간 혁명)를 상징하는 것이 개인의 자유(권리)와 공공의 이익의 관계에 관한 논의이다.


다음 주에는 이제 "제6장 스미스에게서의 경제학의 성립"을 한번 보겠다.  요즘에 포스타입에서 하고 있는 《철학적 급진주의 형성》과 연결해서 보면 상당히 재미있는 그런 부분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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