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원의 북리스트 | 사회사상의 역사 (마지막)

 

 

2023.07.04 사회사상의 역사 (마지막)

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앵겔스가 《공산당 선언》을 작성, 그 팜플렛을 작성한 게 1848년이다.  1848년이라는 기준 연도를 기억해야 된다고 여러번 이야기를 했다. 그 해가 굉장히 중요한 해라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그것을 기준으로 이렇게 저렇게 생각을 해봐야 된다는 것이다.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에 보면 부르주아계급과 프롤레타리아 계급, 즉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의 대립 이 두 가지가 이를테면 극명하게 드러나 있다.  그게 현실적으로 그 당대 사회의 계급적인 층위들을 면밀하게 분석해서 집약해 놓은 것이 아니라 혁명 투쟁 선언문이기 때문에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두 계급을 등장시킨 것이다. 1848년이라고 하는 연대를 생각해 보면 그게 영국에서는 빅토리아 시대Victorian era이다. 빅토리아 여왕의 생몰연대가 1819년에서 1901년이다.  거의 100년 가까이 살았는데 빅토리아 여왕이 재위한 시기가 1837년부터 1901년까지이다. 그러면 그 가운데 1848년이 들어가게 된다. 사실상 그때가 영국이나 유럽 대륙에서는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의 기원이라고 할 만한 여러 가지 사건들 또는 사회 구조들이 등장하고 있다. 그런데 반드시 그 시대를 부르주아 계급과 프롤레타리아 계급으로만 나눌 수는 없다. 이를테면 빅토리아 시대를 보면 피터 홉커크의 《그레이트 게임》을 봐도 아프가니스탄에서 공을 세운 사람들을 빅토리아 여왕이 작위를 주고 그런다. 그때 꼭 부르주아 계급 또는 신흥 중산층에 속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은 다시 말해서 귀족이나 상류층 엘리트에 속하는 사람들이고, 그 다음에 노동 계급 그리고 이제 최하층계급underclass으로 나눌 수 있다. 그리고 이제 언더클래스에는 정말 온갖 종류의 사람들, 룸펜 프롤레타리아트라든가 이런 사람들도 포함이 된다. 그러기 때문에 1790년에 아담 스미스가 죽었는데, 1790년에 아담 스미스는 이런 시대가 오리라는 걸 예상을 못했겠다.  물론 아담 스미스의 시대도 자본주의의 맹아가 아주 뚜렷하게 드러난 시기이긴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사회의, 이를테면 형성 장소, 형성 시기로서의 빅토리아 시대 그때만큼의 정교한articulate  세밀하게 발전한 그런 사회 계층, 사회 계급 그런 것들은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빅토리아 시대가 끝나면 이제 2차 세계대전이 들어가기 전까지, 즉 1차 세계대전과 전간기,  2차 세계대전를 거치면서 사실상 빅토리아 시대에 형성되었던 그런 계급들도 다시 굉장히 복잡하게 나뉜다. 예를 들어서 2천년대 들어서는 더 이상 부르주아라든가 프롤레타리아라든가 이런 계급 분류, 범주는 어떤 의미 있는 분석 범주가 되지 못한다. 그냥 그것은 이데올로기적인 구호에서 사용되는 것이고, 말그대로 정치적인 개념이지 경제적으로는 유의미한 개념이 아니다. 이를테면 현대사회에서는 사회 계층을, 앞서서도 있었던 상류 엘리트 층 그 다음에 미들 클래스, 미들 클래스도 또 이렇게 저렇게 나눈다. 미들 클래스도 그 직업에 따라서 또 분류되기도 한다. 그다음에 워킹 클래스는 아주 전통적인traditional 워킹 클래스가 있는데 그 전통적인 워킹 클래스들 중에서도 자신이 워킹 클래스라는 의식을 갖고 있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그런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분류를 하면 분명히 워킹 클래스에 속하는데 자신이 워킹 클래스 의식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들도 있고, 그 다음에 노동자인데도 부유한 워킹 클래스는 아닌데 전통적인 워킹클래스보다는 좀 덜 버는 그리고 좀 말하자면 서비스 직종에서 일하는 그런 사람들, 워킹 클래스가 굉장히 세분화된다. 중산층도 그렇긴 하지만 워킹 클래스가 특히나, 그 다음에 이제 빅토리아 시대에는 최하층 언더 클래스라고 불리던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여전히 자리를 잡고 있다. 그렇다면 그 최하층 계급에 속하고 있던 사람들이 21세기에 들어서면 이를 테면 이제 서비스 워킹 클래스 그러니까 영역 노동자가 된다든가 또는 계절 노동자처럼 계약직 노동자로서 이제 한다든가 그런 식의 분류가 세밀하게 일어나게 된다. 그리고 그들이 앵겔스가 쓴 《영국 노동계급의 상황》에서 아주 잘 보여주고 있듯이 워킹 클래스가 어디에 사는가라는 것들도 굉장히 중요한, 그리고 워킹클래스가 살고 있는 곳들을, 이른바 힙하다고 여겨지는 생활 방식을 추구하는 어퍼 미들 클래스upper middle class, 그러니까 상류층에 속하는 중산층들이 또 틈을 파고 들어가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런 경우에는 젠트리피케이션이라든가 이런 방식으로 그게 드러나서 공간이 또 재구축되는 것이 된다. 그 과정에서 또 다시 뭐가 또 개입되어 들어갔느냐 하면 문화적인 표지들이 그 안에 또 끼어 들어가게 된다. 피에르 부르디외가 말한 것과 같은 문화적 아비투스habitus가 또 개입되어 들어간다. 그러니까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에서는 아담 스미스라든가 마르크스, 앵겔스라든가 이런 사람들이 살았던 시대로부터 그들도 학문적인 개념들을 길어 올렸다. 그런데 그렇게 그들이 길어올린 개념이라고 하는 것은 당대 사회를 분석하고 당대 사회를 좀 더 정밀하게 과학적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어떤 그런 시도에서 그런 개념들이 등장했는데, 그때 이후로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굉장히 정말 압도적으로 변해버렸기 때문에 그들이 사용했던 개념들을 가지고 지금 뭔가를 논의하는 것은 굉장히 무의미하다. 가끔 그런 사람들이 있긴 있다. 그건 그 사람들이 하나의 자신이 가지고 있는 아주 극명한 정치적인 이념을 강조하기 위해서 그리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퍼트리기 위해서, 깊은 감동과 함께 집어넣어주기 위해서 그 bg와 pt의 대립 이런 것들을 얘기하는 것이지 그게 사회과학적으로 유의미한 분석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물론 데이비드 하비처럼 여전히 마르크스가 《자본Das Kapital》에서 제시했던 그런 분석의 틀이 현대사회의 시간과 공간에, 그러니까 시공간 분석에 여전히 의미가 있다는 얘기가 설득력 있게 들리긴 하지만 과연 그것이 얼마나 의미가 있는지 그것에 대해서는 저는 좀 회의적이라고 생각을 한다. 욘 엘스터의 책들을 읽어봐도 그렇고 또는 코와코프스키의 마르크스주의 연구 사상사 그런 걸 봐도 그렇고, 적어도 세 가지 측면은 생각을 해야 한다. 경제적인 측면 그 다음에 문화적인 측면, 앞서 말씀드린 아비투스와 같은 거 그런 것들도 생각을 해봐야 한다. 그리고 지금 이제 오늘 《사회사상의 역사》에서 읽으려고 하는 제7장 철학적 급진주의의 사회사상 이 부분도,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굉장히 단순하게, 논의를 단순화해서 진행을 하는데 이것도 일단은 읽어볼 만한 어떤 그런 논의는 되지만 여기에서 제시하고 있는 그런 설명틀들은 정말 오래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받아들여서 철학적 급진주의의 사회사상 부분에 있는 시대의 문맥을 받아들이는 것은, 이것을 외울 정도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싶다.  


"유럽에서 '이중혁명(the Dual Revolution)'의 불씨를 댕겼다. 역사가 에릭 홉스봄에 따르면 '이중혁명'은 1789년의 프랑스에서 1848년의 2월 혁명까지의 시대를 가리키며, 자본주의의 확립은 시민혁명과 산업혁명이라는 이중의 혁명을 필요로 했다는 역사 인식을 의미한다." 일단 이 이중혁명이라고 하는 구도가 적절한 시대 구분인지에 대해서는 지금은 신뢰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예전에는 이 부분을 가지고 생각을 많이 했는데 그 뒤로 사상사 책을 읽어보거나 역사 책을 보면서 1789년의 시민혁명, 프랑스 혁명을 시민혁명이라고 규정하고, 그 다음에 1848년 2월 혁명을 시민혁명과 산업혁명이라고 하는 것, 그 두 가지를 논의하기 위해서 이중 혁명이라는 것이 호출되어 나온다. 그런데 1848년 산업혁명이라고 하는 것, 그것이 과연 어느 정도 선까지 1848년 2월 혁명을 설명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을 생각해 본다면 좀 아닌 것 같다. 왜냐하면 1815년에 유럽 협조체제가 등장했고, 1848년에, 물론 2월 혁명이 굉장히 중요하긴 하지만, 여전히 보수반동의 시대였기 때문에 바로 그 《공산당 선언》 첫머리에서 그 얘기를 한다. 이 시대는 2월 혁명이라고 하는 프롤레타리아트 혁명이 중요하기보다는 그것은 역사에서 큰, 두드러진 어떤 변곡점을 이루지는 못했다고 생각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냥 이 시대는, 영국은 빅토리아 시대 그리고 이제 대륙은 그 세기 말,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 유럽에서의 자본주의가 그리고 제국주의가 일취월장하는 시기였다. 그리고 세계사의 측면에서 보면 이게 1848년의 2월혁명이라고 하는 것이 그렇게 엄청나게 중요한 사건은 아니다. 그 다음에 이제 저자가 프랑스 혁명에 대해서 논의를 쭉 해놨는데 미국 독립혁명을 이념 혁명이라고 보고 프랑스 혁명을 경제적 이익을 위한 혁명으로 데뷔시킨 것, 한나 아렌트가 'On Revolution'에서 그 얘기를 했는데 이런 설명들은, 한나 아렌트의 얘기는 학문적인 것이 아니라 그냥 저널리스트가 에세이를 쓰듯이 한 것이기 때문에, 차라리 피터 홉커크처럼 무슨 기록이라도 충실히 참조해가면서 하면 좋은데 한나 아렌트의 얘기들은 그냥 머릿속에서 이럴 것이야 라고 생각한 그런 것들을 가지고 논의를 한다. 대표적으로 그런 학문적이지 않고 개념 규정도 충실하지 않은데 많이 인용되는 책 중에 하나가 《전체주의의 기원》 이런 것들이다. 그것은 거의 팜플렛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제7장 203 미국의 독립은 프랑스혁명의 도화선이 되어 유럽에서 '이중혁명(the Dual Revolution)'의 불씨를 댕겼다. 역사가 에릭 홉스봄에 따르면 '이중혁명'은 1789년의 프랑스에서 1848년의 2월 혁명까지의 시대를 가리키며, 자본주의의 확립은 시민혁명과 산업혁명이라는 이중의 혁명을 필요로 했다는 역사 인식을 의미한다.


그 다음에 이제 프랑스혁명에 대해서 얘기를 하는데 저는 프랑스혁명을 이렇게 간단하게 정리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어렵지 않나 그렇게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철학적 급진주의에 이르는 이런 과정을 첫 번째 시대의 문맥에다가 얘기를 해놨는데 시대의 문맥에서, 물론 프랑스혁명이 굉장히 중요한 사건으로 들어가고 있는데, 《철학적 급진주의 형성》을 봐도 대륙에서의 프랑스혁명이 끼친 영향이 그렇게 크지 않다. 물론 프랑스혁명이 일어나서 벤담의 사상적 전회가 일어나고 하는 것들이 있다. 엘리 알레비의 책을 읽어봐도 그건 아주 분명하게 드러나는데 그것보다는 오히려 영국 내에서 일어났던 여러 가지 사건들이 철학적 급진주의에서는 중요한 시대적인 맥락이 되지 않나, 프랑스혁명을 지나치게 철학적 급진주의로 끌어들여오면 시대의 문맥과는 적절치 않다. 그리고 버크의 보수주의 철학이 있는데 버크도 철학적 급진주의에서는 중요한 연결고리가 있지만 철학적 급진주의의 성립 배경을 보면 오히려 멜서스라든가 고드윈, 리카도, 리카도 그런 사람들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지금 제7장 철학적 급진주의의 사회사상 이 부분은, 리카도의 경제학 원리라든가 이런 부분은 지금 얘기하는 것으로 그냥 넘어가려고 한다. 왜냐하면 지금 《철학적 급진주의 형성》을 통독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자세하게 읽은 다음에 정리하는 게 낫지 여기에서 이런 것을 하는 거는 좀 그렇다. 그리고 8장은 후진국에서의 자유라고 해서 칸트와 헤겔이 나와있는데 글쎄, 그리고 9장이 마르크스의 자본이고 10장이 존 스튜어트 밀이다. 그리고 11장이 막스베버, 12장이 케인즈, 하이에크인데 이건 서로 긴밀한 연결고리를 만들어내기 어려운 사람들을 이렇게 이어붙여 두었기 때문에 이것은 이것대로 따로 읽어야 될 필요가 있지 않겠나 그런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프랑크푸르트 학파와 케인즈, 하이에크 이 세 덩어리를 함께 얘기하는 것, 케인즈, 하이에크를 얘기할 수 있는데 프랑크푸르트 학파를 거기다가 붙여두는 것도 《사회사상의 역사》라는 책을 쓰려다 보니까 이렇게 구성을 하고 그 다음에 프랑크푸르트파에서 자유와 공공이라는 것이 과연 얼마만큼의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이런 것에 대해서는 좀 회의적이다. 어쨌든 이런 게 중요한 주제이기는 한데 이 중요한 주제에 대해서 이렇게 짧은 책에서 정리해서 개관을 한다 하기에는 조금 모자라지 않나 그렇게 생각을 한다. 칸트와 해결의 사회사상 은 사회사상의 역사 전체를 볼 때는 그렇게 크게 중요하지 않다. 사회사상의 역사 전체를 볼 때는 도이치라고 하는 지역이 그 사회사상을 만들어내기에는, 사회라고 하는 것 자체가 역동적으로 움직여야 되는데, 거기는 국가학이 발전했지 사회학은 발전하지 않은 곳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리고 코와코프스키의 마르크스주의는 통독을 하려고 생각을 하고 있다. 그래서 그것은 그때 하고 《철학적 급진주의 형성》은 이제 통독을 마저 끝내야겠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사회사상의 역사》 이 책은 그냥 한번 쭉 읽어볼 만은 한데 이것을 교과서처럼 촘촘하게 읽을 만한 그런 것은 아니다. 이것으로 마무리를 해두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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