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티오의 책들 | 문학 고전 강의 — 49 제19강 아이스퀼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

 

2023.09.12 문학 고전 강의 — 49 제19강 아이스퀼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

⟪문학 고전 강의 - 내재하는 체험, 매개하는 서사⟫, 제19강 

Erinyes(복수의 여신들). Alēktō(끝없는 분노, endless anger), Megaira(질투하는 격노, jealous rage), Tisiphonē(복수에 가득찬 파괴, vengeful destruction) —> Eumenides(자비로운 여신들) 

아폴론. “그러니 그대는 그러한 고난의 풀밭으로 내몰리더라도 미리 / 지치지 말고, 팔라스의 도시로 가서는 탄원자로 앉아 / 여신의 오래된 신상을 꼭 껴안도록 하라! / 그곳에서 우리는 이 사건의 재판관들과, 그들의 마음을 / 설득할 말들을 갖게 될 것이며, 이 노고에서 그대를 / 완전히 해방해줄 수단을 발견하게 될 것이니라.”(자비로운 여신들, 78-83) 

코로스. “재앙에 물리지 않는 / 당파싸움이 이 도시에서 / 미쳐 날뛰는 일이 없기를!”(자비로운 여신들, 977-979)

 

 

《문학 고전 강의》 제19강이다. 오레스테스 이야기 3부작의 마지막 부분이 <자비로운 여신들>이다. 자비로운 여신들은 어디서 갑자기 등장한 사람들이 아니다. 이 자비로운 여신들 바로 그 앞에는 계속되는 그 복수가 있었다. 복수의 연쇄가 있는데 그 복수의 연쇄라는 것도 사실 사람이 결단하고 있는 것 같지만 거기에 반드시 개입이 되는 것이 있는데 희랍비극에는 복수의 여신들이 개입이 된다. 희랍 신화에서 따르면 복수의 여신들은 어떻게 등장했는가 하는 얘기는 약간 민망한 얘기들이 좀 있으니까 그것까지 우리가 여기서 따져 물을 필요는 없고 비극 작품이 아닌 비극에 대한 자잘한 얘기들을 할 때 찾아보면 된다.  

복수의 여신은 3명이다.  복수의 여신들Erinyes을 보면, 복수를 불러일으키는 정념, 정동, 분노, 그건데 첫째는 Alēktō, 끝없는 분노endless anger이다.  그러니까 복수의 여신 한 명만 가지고는 복수가 일어나지 않고 복수라는 행위가 일어나려면 일단 끝없이 분노를 해야 한다. endless anger가 일단 일어나야 한다. 그다음 Megaira, 질투하는 경노jealous rage이다. anger도 분노이고 rage도 분노, 격노인데, rage는 몹시 화내는 광분한다 정도가 되겠다.  복수의 신들Erinyes을 순서대로 여기에 적어놨는데 endless anger는 안에서 잔잔하게 깊은 빡침이 있는 상태이고, 그게 이제 jealous rage로 표출되기 시작을 하다가 그게 Tisiphonē로 가면 복수에 가득찬 파괴 vengeful destruction에 이른다. 이 세 개가 결합이 되어서 복수라고 하는 것이 성립한다. 말하자면 끝없는 분노endless anger, 질투하는 격노jealous rage, 복수에 가득찬 파괴vengeful destruction이 결합이 되어 복수가 일어나는데 그게 오레스테스에게 또는 클뤼타이메스트라에게 있었던 것이다. 제18강에서 보면 오레스테스가 그것을 정당화하고 있는데 죽은 어머니의 혼백이 불러온 복수 여신들에게 쫓기며 아폴론 신전으로 도망간다. 그런데 이게 그냥 도망간다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추방당한 것이다. 어머니 죽이고 아이기스토스를 죽였으니까 추방을 당했겠다. 그런데 제18강에서 보면 오레스테스가 자기를 정당화한 얘기가 있다. 《문학 고전 강의 》198페이지를 보면 "그리고 그 누구보다도 퓌토의 예언자 록시아스께서 내게 / 이런 행동을 하라고 촉구하셨오. 그분의 말씀인즉, / 나는 살인을 하더라도 벌받지 않을 것이라 하셨소." 이게 그냥 뻘소리가 아니라 신이 이런 얘기를 나한테 했다는 얘기를 오레스테스가 함부로 할 수는 없다. 아폴론이 했다는 얘기이다.  그러면 어디로 도망가는가. 아폴론 신전 안으로 피신해서 간다.  그곳은 신의 영역인데 신이 괜찮다고 했으니까 아폴론에게 의지해서 이제 해결을 보려고 간 것이다. 그래서 거기서 말한다. "아폴론 왕이시여, 그대는 올바른 행동이 무엇인지 알고 / 계시니, 보살펴주는 것이 무엇인지도 알고 계셔야 해요.  / 그대의 힘은 그대가 내게 약속하신 도움을 담보해 줄 거예요." 여기서 도움은 살인을 하더라도 벌받지 않을 것이다 라고 했던 그런 도움이다. 어머니를 죽여 복수를 하면 불행한 죄에서 벗어나고 마무리가 될 것이라고 했는데 그게 안 된 상태에서 오레스테스는 추방되었다. 

<제주를 바치는 여인들> 1029~1031행
오레스테스: 그리고 그 누구보다도 퓌토의 예언자 록시아스께서 내게 / 이런 행동을 하라고 촉구하셨오. 그분의 말씀인즉, / 나는 살인을 하더라도 벌받지 않을 것이라 하셨소. 

<자비로운 여신들> 61~63행
오레스테스: 아폴론 왕이시여, 그대는 올바른 행동이 무엇인지 알고 / 계시니, 보살펴주는 것이 무엇인지도 알고 계셔야 해요.  / 그대의 힘은 그대가 내게 약속하신 도움을 담보해 줄 거예요.  



이제 아폴론은 나약해지지 말고 인간의 세계로 가라고 얘기한다. 신한테 도망왔더니 신이 뒤를 봐준다고 해서 왔더니 다시 인간의 세계로 가라고 한다. 여기가 조금 이상하다. 아폴론이 무책임하게 자기가 해준다고 해놓고 이러면 되겠는가. 오레스테스는 뒤통수 맞은 셈이다.  그러면서 하는 말을 가만히 보면 팔라스의 도시 그러니까 아테나인데, "팔라스의 도시로 가서는 탄원자로 앉아 / 여신의 오래된 신상을 꼭 껴안도록 하라!" 그러면 일단 탄원자는 그렇게 하는 것 같다. 여신의 오래된 신상을 껴안으면 탄원자가 되고 그러면 이제 아레이오스 파고스 법정이 열릴 것이고, 아폴론이 하는 말 안에 그런 행위들이 지금 함축되어 있다. "그곳에서 우리는 이 사건의 재판관들과, 그들의 마음을 / 설득할 말들을 갖게 될 것이며, 이 노고에서 그대를 / 완전히 해방해줄 수단을 발견하게 될 것이니라."  이제 복수의 연쇄를 끊으려고 하니까 설득할 말들, 재판관들은 사람이다, 사람인 재판관들을 설득할 '말'들을 갖게 되고 이로써 이 노고에서 그대를 완전히 해방해줄 수단을 발견하게 된다고 했으니 202페이지에 적어 둔 것처럼 설득할 말이 바로 복수의 연쇄로부터 사람들을 해방해줄 수단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말들이 오고 가는 곳이 바로 아레이오스 파고스 법정이다.  중요한 부분이다. 일단 '말'을 한다. 오레스테이아 3부작의 마지막 부분인 <자비로운 여신들>에서 자비로운 여신들은 복수의 여신들이 변신을 한 것이다. 끝없는 분노와 질투하는 경로와 복수에 가득 찬 파괴를 가지고 있는 그 복수의 여신들이 아테나 여신의 설득으로 복수의 여신들이 변신해서 자비로운 여신들이 된 것이다. 그러니 이 자비로운 여신들이 이렇게 변신하게 된 것은 아테나 여신의 개입이겠지만 오레스테스는 사람으로서 해야 될 일이 신을 설득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서 말을 하게 되는 것이다. 

<자비로운 여신들> 78~83행
아폴론: 그러니 그대는 그러한 고난의 풀밭으로 내몰리더라도 미리 / 지치지 말고, 팔라스의 도시로 가서는 탄원자로 앉아 / 여신의 오래된 신상을 꼭 껴안도록 하라! / 그곳에서 우리는 이 사건의 재판관들과, 그들의 마음을 / 설득할 말들을 갖게 될 것이며, 이 노고에서 그대를 / 완전히 해방해줄 수단을 발견하게 될 것이니라. 


흔히 이 오레스테이아 3부작에서 이 자비로운 여신들을 가리켜서 모든 사태가 복수의 연쇄가 변증법적으로 해결된다 라는 그런 해설들을 한다. 그걸 모르는 건 아니었는데 《문학 고전 강의》에는 그걸 적어놓지 않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문학 고전 강의」 할 때나 이 책을 쓸 때나 지금이나 변증법이라고 하는 말을 아무 데나 써놓는 거 아니라는 생각이 아주 강하게 있다. 예전에 논문을 쓸 때도 그렇고 선생님이 가능하면 변증법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 해겔 철학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고 늘 얘기를 하셨다. 변증법이라고 하면 뭐라고 주장하기가 이게 뭐지하고 잘 이해가 안 되면 변증법적으로 해결되었다는 식으로 얘기해버리면 무슨 만능 도구처럼 사용되는 게 변증법이라는 단어이다. 그러니까 정확하게 어떤 사태를 변증법이라고 할 것인지 또는 어떠한 논리 구조를 가진 설득을 변증법이라고 할 것인지 이것이 규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변증법이라고 하는 말을 그렇게 함부로 쓸 수 없다. 설득할 말이 일단 좀 변증법에 가까울 것 같다. 

말dialogue로 설득한다. 변증법이라고 하는 말이 dialectic, 그러니까 dialogue에서 나온 말이니까 말로 한다는 것이다. 오레스테스가 재판관들에게 내가 어쩔 수 없이 죽인 것도 아니고 신도 뭐 이렇게 했어요 라고 일종의 변론apologia을 할 것이다. 그러면 재판관들이 괘씸한 녀석하면서 그것을 논박할 것이고 서로의 이제 대결agon이 오고 갈 것이다. 그 대결이 칼로 하다가 지금 말로 하는 상태이고 그러면서 재판관과 오레스테스가 어떤 합의에 이르게 되는 과정 전체가 사실 변증법dialectic인데, dialectic의 1번 뜻이 그것이다. 대화와 화해에 이르는 과정 그 전체들을 가리킨다. 대화하는 것도 변증법이고 그 화해의 결론에 이르게 되는, 결국에는 칼을 꺼내서 서로를 죽이게 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되면 agon는 실패되고 다시 복수의 연쇄가 계속 시작이 된다. 격노하는 분노를 가라앉히고 질투하는 격노를 가라앉히고 끝없는 분노를 가라앉히고 복수에 가득 찬 파괴를 멈추기 위해서 그렇게 하기 위해서 지금 dialogue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지금 바로 말이다. 말이라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 그래서 아주 다른 개념이 아니라 그걸 갖다가 우리는 정치라고 말한다. 그런 행위하는 것을 정치라고 한다. 그래서 아테나이에서는 아레이오스 파고스 법정이라고 하는 곳은 사실 재판이 벌어지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이다.  

그래서 그런 것들이 쭉 오고 가다가 결국엔 오레스테스에게 죄가 있다와 죄가 없다가 동수로 나타나게 된다.  그러면 이 상황은 인간이 도대체 풀 수 없는 이율배반의 상황이라는 것이다.  그것을 상징적으로 드러내 보여주는 것이고 바로 그렇게 해서 인간이 해결할 수 없는 그런 상황, 복수도 올바름을 실현해주는 수단이고 판결도 인간을 설득하는 말들도 올바름을 실현하는 수단인데, 복수는 사람이 끝없이 죽어가지만, 판결도 일단은 계속해서 얘기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까지 갔다. 거기에서 아테나 여신이 나서서 무죄 쪽에 표를 던진다.  그러면서 동시에 복수의 여신들에게 이제 그만하고 자비로운 여신으로 convert하게 한다. 그러니까 신들 사이의 갈등이라고 하는 것은 어쨌든 해결이 되었다. 복수의 여신들을 자비로운 여신들로, 그런데 인간 사이의 갈등은 신이 개입해서 해결이 되었다. 그러니 지금 이 끝없는 분노와 질투하는 격노와 복수에 가득찬 파괴는 인간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여기서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신들이 해결한 것도 변중법적이라고 한다면 인간이 참다운 의미에서의 화해에 이르는 변증법을 구현하려면 인간이 인간의 입장에 서있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인간끼리만 말을 계속 주고받아서는 안 된다. 오레스테이아 3부작에서 변증법에 관한 어떤 얘기가 바로 이 지점과 그 카산드라 얘기에서 나온다. 변증법이라는 주제로 그렇게 뽑아서 얘기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우리가 변증법이라고 하면 헤라클레이토스의 변증법 이런 것만 하는데 사실은 그것만 가지고는 추상적인 논변만 오고 가게 된다. 변증법이라는 게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변증법이 도대체 어떻게 나타나는가, 변증법이라는 걸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신들은 자기들끼리의 갈등을 해결하고 인간의 갈등도 해결해 주었다. 그러면 신은 화해라고 하는 궁극적인 목표에 이르렀다. 그러므로 인간도 화해라고 하는 궁극적인 목표에 이르려면 신들을 본받아야 한다라는 것이 여기서 나온다. 다시 말해서 신적인 입장에 올라서야만 해결이 된다. 그것이 변증법이다.  그런 변증법이라고 하는 건 첫째 복수를 멈추고 말로써 한다. 그다음에 그 말은 화해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거기까지이다. 그런데 인간은 불가능하다 그러니까 코로스가 "재앙에 물리지 않는 / 당파싸움이 이 도시에서 / 미쳐 날뛰는 일이 없기를!"이라고 말한다.  당파 싸움이라는 것은 서로 편갈라서 말싸움 하는 것이다. 코로스의 소망을 지금 얘기한 것을 묶어서 얘기해 보자면 "인간도 신적인 입장에 올라서서 진정한 의미의 변증법을 구현하기를" 이렇게 한번 생각을 해볼 수 있다.  그런데 인간이 그렇게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신들도 복수의 여신들이 자비로운 여신들로 변모transform했다. 형태 자체를 형상eidos 자체를 바꾸었다. 겉모습이 아니라 본질 자체를  바꾼 것처럼 인간도 transformation을 해야 한다.  재앙에 물리지 않는 당파 싸움이 이 도시에서 미쳐 날뛰는 일이 없으려면, 신들의 도움을 받지 않으려면 인간이 신의 입장에 올라서야 되고 그다음에는 인간도 자비로운 인간들이 되어야 한다. 복수하는 인간들이 아니라 자비로운 인간들이 되어야 한다.  그 자비라고 하는 것이 무엇인가. 뻔한 얘기이다. 메시아 예수의 말인 "너희는 서로 사랑하라." 그게 신이나 가능한 건데 우리가 어떻게 모든 일을 사랑하겠는가. 일단 자기 자신부터 사랑하기가 어렵다. 자기 혐오가 우리 모두에게 있다.  

<자비로운 여신들> 977~979행
코로스: 재앙에 물리지 않는 / 당파싸움이 이 도시에서 / 미쳐 날뛰는 일이 없기를!

요한복음 13.34 나는 너희에게 새 계명을 주겠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이제 오레스테이아는 끝내고 다음에는 《오이디푸스 왕》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참주 오이디푸스에 대한 분석도 참조해 볼 것이다. 《문학 고전 강의》는 다해서 40강으로 되어 있는데 이제 20강이다. 아직도 그리스 비극에 머물러 있는데 중요하니까 그렇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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