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티오의 책들 | 문학 고전 강의 — 58 제24,25강 아이스퀼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

 

2023.10.21 문학 고전 강의 — 58 제23,24강 아이스퀼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

⟪문학 고전 강의 - 내재하는 체험, 매개하는 서사⟫, 제24, 25강 
- 메데이아의 첫째 변설
“내가 파멸을 꾀하며 문턱을 넘다가 잡히면, / 나는 죽어서 내 원수들의 웃음거리가 될 거예요.”(382~383)

- 메데이아의 둘째 변설. ‘망설이는 메데이아’, ‘결단하는 메데이아’, ‘화난 메데이아’
“아아! 어떡하지? 애들의 반짝이는 눈을 보니 /나는 도무지 용기가 나지 않아요. 
...
아아! / 내 마음이여, 너는 절대로 그런 짓을 해서는 안 돼!”(1042~1057)

- 메데이아의 셋째 변설
“그 애들은 무조건 죽어야 해요. 필요하다면 / 생모인 내가 그 애들을 죽일 테야. / 자, 내 마음이여, 무장하라! (1240~1242)

- 에우리피데스 시대의 아테나이를 표상하는 것들
격분을 넘어 무자비할 정도의 행위를 저지르는 메데이아, 자신에게는 조금도 책임이 없다고 뻔뻔하게 변명하는 이아손, 그리고 아무런 해결책도 제시하지 못한 채 맺어지는 결말

 

 

에우리피데스의 《메데이아》를 읽고 있다. 예술적으로 소화한다는 것이 무엇일까에 대해서 아르놀트 하우저는 "예술적으로 채 소화되지 않은" 방식으로 다루고 있다고 얘기를 하는데 저는 그것에 대해서 그렇게 썩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에우리피데스의 작품에서 메데이아가 자신과 대화하는 것, 혼잣말하는 것 그런 것들, 온전한 의미에서 자기 자신과 홀로 대화하는 것은 굉장히 어렵다. 자기가 자기 혼자 대화를 하는 건지 아니면 혼잣말을 한다 해도 남을 탓하고 있는 건지 그것을 식별해내는 것이 그렇게 쉽지 않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오늘은 제24강과 25강을 다 읽고 설명을 하고 일단 에우리피데스를 마무리하고 다음 시간에는 브르노 스넬의 《정신의 발견》에서 희랍비극에서 신화와 현실 챕터 설명을 하겠다. 아이스킬로스부터 시작해서 에우리피데스까지 전체적으로 한번 정리를 해야 마무리가 되지 않겠나 그런 생각이 있기 때문이다. 제24강은 증오를 위한 증오에 빠져든 메데이아라고 제목을 붙여놨는데 증오를 위한 증오, 그것 자체를 위한 어떤 것, 가장 순정한 의미에서 순수한 의미에서의 증오이다. 증오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그런 상태. 우리도 '저 정도면 저 사람이 먹고 살 만한데 그리고 남에게 무시당하지 않을 만큼 있는데 왜 저렇게 돈을 위한 돈벌이를 계속하는가'라는 얘기를 하는 경우가 있다. 

233페이지를 보면 "순종"하던 메데이아는 이아손의 "배신"으로 인해 그를 미워하는 사람으로 변하였다. 이제 순종과 배신과 미움이 곧바로 제시된다. 전개가 굉장히 단순하다. 그리고 책에서 지적하고 있듯이 아이스킬로스나 소포클레스라면, 이아손과 메데이아 사이에 말도 오고 가고, 너 왜 그랬느냐 하는 과정이 제시될 텐데, 에우리피데스는 그렇지 않다. 메데이아가 '이야손이 나를 배신했구나'라는 코로스와의 대화도 있을 것이고, 상상을 해보자면, 코로스가 그것이 아닐 것이다, 뭔가 불가피한 상황이 있지 않았을까, 한 번 더 생각해 보자 이런 것이 있을텐데 그런 것도 없이 하녀가 하는 말로 규정을 한다. 드라마에서 코로스의 역할이라고 하는 게 드라마의 전개를 알려주거나 또는 관객에게 그런 전개를 알려주거나 또는 그 주인공의 내면의 세계를 대신 말해준다든가 하는 역할을 하는데 여기서는 하녀가 상황을 규정해준다.  


"지금은 / 모든 것이 미움으로 변했고, 애정도 식어버렸어요 / 이아온 님이 자기 자식들과 우리 마님을 배신하시고는." 딱 두 줄 이렇게 얘기하고 바로 하녀의 말 한마디로 그리고 이제 곧바로 메데이아는 저주를 퍼붓는다. "소박 맞은 어미의 저주받은 자식들이여, / 아비와 함께 사라져 버려라! 온 집이 무너져 내려라!"  그런데 크레온이 나타나서 자기 딸에게 재앙을 안겨줄까 두렵기 때문에 떠나라고 말하는데 이런 대화의 주고받음이 드라마의 전개에서 가슴 졸이게 하지도 않고 필연적인 전개 역할을 하지도 않는다.  

《메데이아》16-17행
하녀: 지금은 / 모든 것이 미움으로 변했고, 애정도 식어버렸어요 / 이아온 님이 자기 자식들과 우리 마님을 배신하시고는.

《메데이아》112-114행
메데이아: 소박 맞은 어미의 저주받은 자식들이여, / 아비와 함께 사라져 버려라! 온 집이 무너져 내려라!

 

오히려 중요한 것은 50행에 가까운 기나 긴 변설들이다. 그런데 이 변설들을 자세히 보면 그 증오 아래 놓여 있는 심성이 무엇인가를 우리는 발견할 수 있다. 심성이라고 하는 게 영어로 되게 mentality라고 말을 하는데 그런 건 심리학에서도 대게 구별을 한다. 예를 들면 우리가 정신 또 심성, 습속이라고 하는 것들이 있다. 심성은 mentality, 습속은 흔히 도이치로 Sitte인데 이는 굉장히 추상적인 것이고, '메데이아의 정신이 어떻게 되었다'라고 말하기보다는 심성은 주변의 상황 또는 그가 살고 있는 공동체에서의 일반적인 습속들에 의해서 형성이 되므로, 심성이 어떻게 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좋다. 그러니까 '착한 사람들 사이에서 살면 착해진다'라고 말하면 그들 공동체의 습속이라고 하는 게 착한 일을 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는 사람들이어서 그런 사람들 사이에서 살고 있으면 심성도 곱다 라고 얘기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심성이 곱다면 그는 이제 선한 정신을 갖게 될 것이다 라고도 그렇게 연결해서 말할 수 있다. 습속은 공동체의 것이다. 혼자서 가지고 있는 건 습관이겠는데 그 습관이라고 하는 것은 습속으로부터 습득된다. '습'이라는 말이 계속 이 앞에 붙어 있는데 그것으로부터 학습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증오 아래에 놓여 있는 심성을 보여주는 메데이아의 변설를 보면 정말 그냥 혼자서 돌출되어 나온다. 자기 혼자 하는 것 그리고 그를 뜯어 말리는 사람도 아무도 없다. 정말 좋게 말하면 고독한 개인의 결단일테고 아니면 혼자서 극단으로 가버리는, 그러면서도 "나는 그동안 내 새 원수를, / 아버지와 딸과 내 남편을 시신으로 만들고 말 거예요. [···] 내가 파멸을 꾀하며 문턱을 넘다가 잡히면, / 나는 죽어서 내 원수들의 웃음거리가 될 거예요"라고 말하는데, 걱정하는 게 원수들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이제 굉장히 새로운 주제라고 할 수 있겠다.  

《메데이아》 374-383행
메데이아: 나는 그동안 내 새 원수를, / 아버지와 딸과 내 남편을 시신으로 만들고 말 거예요. [···] 내가 파멸을 꾀하며 문턱을 넘다가 잡히면, / 나는 죽어서 내 원수들의 웃음거리가 될 거예요. 

 

나 개인의 복수가 굉장히 중요한 지상 과제로서 등장하고 혼잣말을 계속 해댄다. 스스로에게 "자, 메데이아여, 네가 알고 있는 것은 조금도 / 아끼지 말고 계획을 세우고 계략을 짜도록 해! / 끔찍한 일이라도 주저하지 마! 지금이라도 진정한 용기가 / 필요해. 

《메데이아》 401-404행
메데이아: 자, 메데이아여, 네가 알고 있는 것은 조금도 / 아끼지 말고 계획을 세우고 계략을 짜도록 해! / 끔찍한 일이라도 주저하지 마! 지금이라도 진정한 용기가 / 필요해. 

그런데 이제 이아손과 길게 말싸움을 한다 해도 이아손의 말이 메데이아에게 전혀 가서 닿지 않는다. 메데이아가 "고통만 안겨줄 뿐인 행복한 생활과, / 마음을 갈아먹는 부富는 내게 필요 없어요." 

《메데이아》 598-599행
메데이아:  고통만 안겨줄 뿐인 행복한 생활과, / 마음을 갈아먹는 부富는 내게 필요 없어요."

제25강의 제목이 저주를 실현하고 허망하게 사라지는 메데이아인데 이제부터는 그 저주가 허망하게 사라지는 것만이 남아 있는 상태이다. 두 번째 변설을 보면 가장 강력한 것인데 "아아! 어떡하지? 애들의 반짝이는 눈을 보니 /나는 도무지 용기가 나지 않아요"라면 폐기하고 싶다고 얘기하다가도 해치워야 한다 라고 하는 그런 자기 다짐, 그래서 1042행에서 1057행까지 15행 안에 망설이는 메데이아, 결단하는 메데이아, 화난 메데이아, 여러 종류의 메데이아들이 이 안에서 요동치고 있다. 

《메데이아》 1042-1057행
메데이아:  아아! 어떡하지? 애들의 반짝이는 눈을 보니 /나는 도무지 용기가 나지 않아요. 
 [···]  아아! / 내 마음이여, 너는 절대로 그런 짓을 해서는 안 돼!”(1042~1057)


예를 들어서 이제 우리가 다음에 읽을 《맥베스》에서 맥베스도 그렇고 그의 아내 레이디 맥베스도 그렇고 던컨 왕을 죽이기 전에 계속 갈등을 한다. 우리는 그를 악한 사람이다 말하기가 어렵다. 뜻밖에도 맥베스의 약한 모습 그다음에 레이디 맥베스가 나중에 스스로 괴로워하는 장면을 보면 이렇게 약한 사람이었나 하는, 캐릭터가 무너진다. 그의 행동들을 보면 그가 앞서 보여주었던 그런 행동들에서 우리가 감지했던 그런 게 무너진다. 그러니까 지난번에 말한 것처럼 《메데이아》라고 하는 이 작품이 인간의 내면 안에서 시시각각으로 달라지고 있고, 변해가고 있는 그런 정동情動emotion의 출렁거림 또는 요동치는 움직임 이런 것들을 다 보여준다고 하겠다. 그래서 이게 근대적이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메데이아의 심정은 "격분"으로 귀결된다.  그게 1078~1080행 세줄 부분에서 "내 격분이 내 이성보다 강력하니, / 격분이야말로 인간들에게는 가장 큰 재앙을 안겨주는 법", 이성보다 강력한 격분이다. 데이비드 흄이 말했다고 하는 '이성은 감정의 노예'라는 의미는 아니다. 사실 이 격분이라고 하는 걸 자기가 모르고 있는 게 아니다. 데이비드 흄이 그런 말을 했을 때는 잘 알지 못하는 것들을 가리키는 말이었을 텐데 이건 그것이 아니다. 격분하는 자아와 숙고하는 자아가 부딪혔다는 것, 물론 오이디푸스도 그렇기도 하다. 그런데 오디푸스는 자기가 스스로에게 이런 말들을 하면서도, 우리는 이 사람이 그래도 자기를 저주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서는 동시에 자기를 차분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메데이아》 1078-1080행
메데이아:  내가 얼마나 끔찍한 짓을 저지르려는지 나는 잘 / 알고 있어. 하지만 내 격분이 내 이성보다 강력하니, / 격분이야말로 인간들에게는 가장 큰 재앙을 안겨주는 법. 


그런데 메데이아는 잔인한 그것 자체에 매몰되어 있는, 그리고 이제 크레온과 그의 딸이 죽는 장면에 대한 그 사자의 묘사를 보면 이런 잔인한 일을 저지른 메데이아가 얼마나 잔인한 것인가.  

《메데이아》 1198-1201행
사자: 정수리에서는 / 피가 흘러내려 볼과 뒤섞이고, 독毒의 보이지 않는 / 이빨들에 살이 송진처럼 뼈에서 떨어져 나가니, / 실로 끔찍한 광경이었오.  

 

"정수리에서는 / 피가 흘러내려 볼과 뒤섞이고, 독毒의 보이지 않는 / 이빨들에 살이 송진처럼 뼈에서 떨어져 나가니, / 실로 끔찍한 광경이었오." 정말 실로 끔찍한 광경. 그리고 이제 이 드라마의 메데이아가 변설을 세 번 하는데 1236~1250행까지가 셋째 변설이다. 그리고 잔인함이 더한 잔인함을 불러온, 증폭되어 가는, 그러면서 아이들을 죽이겠다고 한다. "생모인 내가 그 애들을 죽일 테야. / 자, 내 마음이여, 무장하라!" 일말의 자기 연민도 없다. 어쨌든 에우리피데스가 소재를 정교하게 직조하지 못했다고는 하지만 그 정교하지 못함 자체가 저는 그 시대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것을 돌볼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메데이아 자신도 그렇고, 물론 《메데이아》를 구상해서 이렇게 드라마로 만들어서 무대 위에 올린 에우리피데스는 굉장히 치밀하게 공연을 했겠지만 "격분을 넘어 무자비할 정도의 행위를 저지르는 메데이야, 자신에게는 조금도 책임이 없다고 뻔뻔하게 변명하는 이아손, 그리고 아무런 해결책도 제시하지 못한 채 맺어지는 결말" 이 세 가지 메데이아와 이아손과 결말, "이 모든 것은 에우리피데스 시대의 아테나이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메데이아가 누군가, 지금 현재,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서, 또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에서, 인간 집단 속에서 메데이아가 누군가, 그리고 이아선은 누구인가, 그리고 그것이 결국에는 불러올 결말은 또 무엇인가, 그리고 그걸 보고 있는, 정말 무감하게, 또는 어찌 해볼 수 없는, 손쓸 힘이 없이 그걸 보고 있는 사람들은 또 누구인가, 이런 게 지금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모습이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든다. 

《메데이아》 1240-1242행
메데이아:  그 애들은 무조건 죽어야 해요. 필요하다면 / 생모인 내가 그 애들을 죽일 테야. / 자, 내 마음이여, 무장하라! 


예전에는 《메데이아》를 그냥 그저 그러려니 하고 읽었는데 이번에 한번 다시 읽어보니까 끔찍함은 둘째 치고, 정말 여기저기에서 나타나고 있는 그 무기력함이 참으로 언짢았다. 그 무기력함을 알고는 있는데 그것을 어찌 해볼 수 없다는 그런 것 때문에 더욱 언짢았다 그래서 소포클레스나 아이스킬로스보다는 메데이아를 한 번쯤은 더 읽어보는 게 지금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서는 더 나은 '시대적 독서', 시대를 함께하는 독서라고 할 수 있지 않나 생각한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