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티오 출판사에서 제공하는 팟캐스트 '라티오의 책들'을 듣고 정리한다. 라티오 출판사에서 출간된 책들에 관한 강유원 선생님의 해설녹음이다.
팟캐스트 주소: https://ratiopress.podbean.com/
2023.11.04 문학 고전 강의 — 62 제27강(1) 셰익스피어 《맥베스》
⟪문학 고전 강의 - 내재하는 체험, 매개하는 서사⟫ 제27강(1)
- 드라마 창작자의 의도(또는 목적)와 드라마 독자의 의도
《문학 고전 강의》 맥베스 두 번째이다. 지난번에 셰익스피어의 《맥베스》에 대해서 개괄적으로 설명을 하고 《맥베스》 전체의 주제를 알 수 있는 5막 5장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지난번에 《맥베스》 얘기를 하고 난 다음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맥베스》를 여러 번 읽었고 또 《맥베스》를 강의도 하고 《맥베스》를 강의한 것을 책으로 써서 《문학 고전 강의》를 출간하고 또 이렇게 《문학 고전 강의》를 또 설명하고 있고 하는데, 우리는 왜 《맥베스》를 읽는 것일까, 《맥베스》를 읽어야만 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것을 익숙하게 알고 있던 것들을 한번 다시 돌이켜서 생각을 해봤다. 제27강은 "자연적 힘과 초자연적 위력을 모두 동원하여 왕이 되려는 맥베스"이고 분량이 꽤 된다. 그런데 첫째 문장이 "이제 《맥베스》의 1막 1장부터 읽어보기로 합시다."로 되어있다. 《맥베스》의 1막 1장부터 읽어보려는 이유가 뭘까. 왜 《맥베스》를 이렇게 되풀이해서 읽는 걸까. 왜 이렇게 《맥베스》를 열심히읽는 걸까. 과연 이걸 읽어서 나에게 무엇이 좋을까. 이렇게 열심히 읽으려는 그 까닭을 한번 원점에서 한번 생각을 해봤다. 그것을 생각을 해보면서 도대체 셰익스피어는 왜 《맥베스》를 썼을까를 한번 생각을 해봤다. 분명히, 아니 분명히라고 말하기는 어렵고, 셰익스피어의 머릿속에는 또는 셰익스피어의 생각 속에는 자신이 《맥베스》라고 하는 드라마를 썼을 때 이 드라마가 자신의 시대로부터 한참 지나서, 그러니까 1600년대의 런던이라고 하는 시대에서 400년이 지난 후 이천년대가 되어서, 셰익스피어는 한국을 알지 못했겠고, 미래에 일어날 일도 전혀 예측하지 못했을 터인데, 400년 후에 동아시아에 있는 한 나라에서 이걸 읽을 것이다 그러니 지금 이걸 잘 써서 아주 위대한 작품을 만들어야지라는 생각은 전혀 없었을 것이라고 거의 확신할 수 있다. 불멸의 작품을 만들어서 남겨야겠다 그리고 그것이 위대한 드라마 작가로 명성을 드높일 것이다 하는생각을 가지고 이것을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엊그제 수원 글로벌 평생학습관에서 헤겔의 역사적 예술론을 강의했는데, 강의를 하기 위해서 《에로스를 찾아서》 주해 부분에서 헤겔의 예술 철학에서 인용한 것들과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제가 쓴 글들을 읽었다. 우리가 역사적 진리라고 하면 역사라고 하는 것이 영원할 거라고 믿고 있기 때문에 역사 속에서 세워진 어떤 진리가 불변의 것으로 남을 것이다 라고 생각하고 역사적 진리라는 말을 하는데, 사실은 역사적 진리라고 하는 건 순간의 진리일 뿐이다. 사실은 그때그때 옳다고 여겨지는 것을 사람들이 진리라고 지칭하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셰익스피어도 지금 자기가 드라마를 쓰면서, 또 그 사람은 극장주이기도 했으니까 배우들의 연기를 지도하고 본인도 배우이기도 했고, 또 그러면서 무대에 올리고, 그렇게 무대에 올린 것이 극장주니까 글로브 극장이 수익이 나야 했다. 그 사람 머릿속에는 어떻게 하면 지금 연극을 보러 오는 사람들을 만족시킬 것인가 하는 당장의 문제가 있었을 것이다. 아주 먼 미래까지도 아니고 이번 주 공연, 그러니까 쪽대본도 썼을테고, 정해진 퓨어 텍스트라는 건 없다 라는 말이 있을 것이다. 숙련 노동자의 일주일 임금이 30페니 정도인데 서서 보는 입장료가 1페니 정도이다. 그 사람들에게 '본전을 찾았다. 이건 내가 1페니를 낼 만한 가치가 있네'하는 만족을 주기 위해서 당장 이번 주 공연 성공해야 된다 라는 그런 것, 그렇게 하기 위해서 당장 눈앞에 닥치는 대로 이걸 썼을 것이다. 그렇게 하다 보니 연극이 성황리에 막을 내렸고, 또 다음 주에 공연할 것을 준비하기 위해서 궁리하지 않았겠는가. 그렇게 눈앞에 보이는 것들, 닥치는 대로 하는 것들에 대해서 자신이 의도한 바 또는 자신이 목적하고 있는 것은, 셰익스피어가 목적하고 있는 것은 불멸의 이름을 남기는 것이 아니고, 아주 분명하게 극장 운영을 위해서 수익을 남겨야 하는 것이 아니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술이라고 하는 것은 그때그때의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이 진리이다. 특히나 요즘의 대중 드라마를 쓰는 사람에게는 시청률의 노예라는 말도 하지 않는가. 시청률을 올리려고 온갖 궁리를 다 짜낸다. 그렇다면 그는 이 드라마를 쓰면서 자신이 영원한 고전을 쓰고 있다 또는 불멸의 어떤 작품을 남기고자 한다 라는 그런 의도는, 전혀 없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거의 없었다고 보는 게 타당하지 않겠는가 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그런데 우리는 이것이 마치 불멸의 고전인냥 읽고 있다. 그러니 우리의 어떤 독서 의도와 셰익스피어 드라마 작법의 의도는 서로 만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가 왜 셰익스피어 드라마를 읽는가라고 묻는다면 불멸의 고전 드라마니까 라고 시작을 한다. 그런데 그렇게 시작하면 벌써 셰익스피어의 의도에서 어긋나버린 것이다. 소포클레스와 에우리피데스가 드라마를 쓸 때도 비극 경연대회가 있으니까 Tragodia를 잘 써서 아테나의 시민들에게 박수를 받아야겠다 그리고 드라마를 주관하는 사람인 choregos가 돈을 들여서 배우들을 연습 시키고 코로스도 연습시키고 할 텐데, 이 사람들이 '내가 헛돈 썼네라는 소리 안 나오게 해야지'라는 마음으로 하지 않았겠는가. 그런데 우리는 그것들이 불멸의 고전 드라마라고 해서 읽는다. 그러니 그들이 본래 창작을 하기 위해서 나섰던 의도와 독자로서 우리가 읽는 의도는 서로 맞아떨어지지 않고 있는 셈이다. 그들은 순간의 만족과 돈벌이를 위해서 최선을 다했을 뿐인데 우리는 그렇게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에로스를 찾아서》를 강의를 하기 위해서 주해 부분을 다시 읽어보고, 무엇을 끄집어내서 설명을 해야 좋을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다시 읽어봤다. 굉장히 좀 부끄러운 얘기이지만 《에로스를 찾아서》 쓸 때는 본문과 주해 모두 굉장히 공을 들여서 썼다. 죽은 다음에까지 읽히리라 까지는 의도하지는 않았어도 적어도 읽는 사람들이 '문장이 정말 굉장히 멋들어지는구나, 구성이 굉장히 조밀하구나 그리고 뭔가 아키텍처가 있구나'하는 것을 알아차렸으면 하는, '21세기 한국에서 이 정도로 글을 쓰는 필자는 굉장히 드물구나'하는 정도로까지 어떤 상찬를 받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썼다. 그런데 읽는 독자들은 과연 그럴 것인가. 그건 또 아니다. 그러다 보면 필자로서의 저의 의도와 독자의 의도가 서로 만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드라마 작가로서의 셰익스피어와 독자로서의 강유원이라고 하는 사람의 의도는 주관적인 것들은 서로 만나지 못하고 있고, 필자와 독자는 영원히 만나지 못하고 있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술을 창작하는 사람들의 의도라고 하는 게 그들은 순간의 진리, 100년 200년의 시기를 놓고 본다면 순간의 진리에 집착하는 것이다. 그게 그들이 창작하는 의도가 되겠다.
그래서 오늘은 제27강을 읽어나가기 전에 한번 이걸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다. 창작자는 드라마를, 특히 대중적 드라마를 어떤 의도로 창작하는가. 소포클레스가 되었건 아이스퀼로스가 되었건 또는 에우리피데스가 되었건 또는 셰익스피어가 되었건, 또는 도스토옙스키만 해도 자기가 구술을 하는 것을 비서가 타이핑을 쳐서 썼는데, 돈을 벌어야 했기 때문에 그렇게 썼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들이 창작을 하는 의도라는 건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바로 돈이라고 하는 것에 있지 않나를 생각해 보게 된다. 저도 책을 쓸 때 저도 모르게 불멸이라고 하는 것에 지나치게 매달리고 있지 않았나, 그것을 너무 의식하고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좀 해보기도 했다. 책을 팔아서 돈을 많이 벌어올 수 있도록 써야지라는 생각은 천박하다 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건 아닌가 그리고 과연 지금 내가 순간순간에 충실하는 것, 이게 바로 역사적 진리의 한 조각인데, 이것에 대해서 좀 무심하지 않았나 그런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셰익스피어의 드라마를 읽는 이유를 조금 고상하게 얘기해보면, 셰익스피어 드라마 《맥베스》와 《오셀로》를 여러 번 읽는 것은 고전이 되어버린 이 드라마가 어떤 형식원리와 내용원리를 가지고 창작되었는가를 익힘으로써 자기 자신도 여기서 익힌 형식원리와 내용원리를 잘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기 위해서이다. 이렇게 읽는 이유는 본래 창작자들의 의도와는 무관한 것일 수도 있다. 그들은 또 그들 나름대로의 역사적인 상황이 있었고, 우리는 우리들 나름대로의 공부의 상황이 있는 것이다. 형식원리와 내용원리를 익히기 위해서 읽는다 라고 말하는 게 정답일 텐데 과연 그것만인지, 셰익스피어가 본래 '이거 읽고 불멸이 되는 고전 드라마는 이런 형식과 이런 내용에 따라서 만들어야 해'라고 알려주기 위해서 그랬던 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오늘은 드라마 내용과는 무관하게 근원적인 것들에 대해서 얘기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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