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 세네카 비극 전집 2

 

세네카 비극 전집 2 - 10점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 지음, 강대진 옮김/나남출판

일러두기 5

메데이아 11
파이드라 77
오이디푸스 151
아가멤논 213

지은이 옮긴이 소개 277

 


메데이아

229 세네카 비극 중 중기에 속하는 이 작품은 대체로 네로가 황제가 되기 전에 완성된 것으로 여겨진다. 작품의 주요 내용은 메데이아가 자신을 배반한 남편 이아손에게 잔인하게 복수한다는 것이다. 이 복수극은 이전에 메데이아가 행했던 여러 범죄와 연관되어 있는데, 이아손은 이러한 범죄에서 이득을 보았었다. 

235 메데이아가 독약을 만드는 제4막 내용은 희랍극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면모이다. 여기서 그녀는 자신의 '야만적' 기술에 확신과 긍지를 지닌 것으로 그려졌다. 마지막에 그녀가 아이들을 죽이는 것도 그 냥 복수를 위해서가 아니라, 이전에 동생을 죽인 것에 대한 갚음이기도 하다는 것 역시 희랍 모델에는 없던 요소다. 우리는 보통 메데이아를 격정에 압도된 인물로 여기지만, 이런 점을보면 적어도 이 작품에서 그녀는 격정 이외의 다른 면모(어쩌면 '숙고') 를 지닌 것으로 그려졌다. 

236 이 작품을 해석하는데서 가장 문제되는 것은, 작품 속 메데이아가 거의 스토아철학자처럼 그려졌는데, 그녀의 최종적 결정은 스토아철학이 권고하는 것과는 정반대로 분노의 무절제한 폭발이라는 점이다. 메데이아는 세네카가 그의 철학적 산문들에서 권고한 대로 행동한다. 로마식 스토아학파는 각 사람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현자가 될 가능성을 갖고 태어난다고 믿고 그 가능성을 완성하는 것을 삶의 목표로 제시하였다. 그 목표를 이루는 방법으로 권장되는 것이, 이상적 감독자를 상상하여 그가 늘 자기를 주시한다고 믿는 것이다

237 그런데 이런 모든 스토아적 태도와 숙고 끝에 그녀가 도달한 곳은 보통 사람의 수준을 넘는 범죄였다. 스스로 자신을 통제하고 자기를 이루어 가겠다는 그녀의 목표가 최악의 결과를 낳고 말았다. 세네카는 철학적 산문에서 자기통제가 악한 결과를 낳을 가능성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비극작품에서, 자기통제가 도덕적 진보로 연결되지 않는 세계를 우리에게 슬쩍 소개하고 있다. 


파이드라

239 〈파이드라〉는 세네카의 비극 중 가장 인기 있는 작품이다. 학자들 사이에서도 많이 연구되는 작품이고, 또 여러 작가가 여기서 새로운 작품을 위한 영감을 끌어냈다. 전체적 구성도 좋아서 다른 작품에 비해 훨씬 일관성있게 짜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합창단의 노래도 이야기 진행과 잘 맞는다. 새로운 인물이 도착하면 합창단이 그것을 알려주고, 합창단장이 다른 등장인물과 이 야기를 나누는 장면도 많이 나온다. 

249 전체적으로 이 작품은 인간의 욕망과 절제를 중심으로, 어쩌면 우리 이성으로 도저히 통제할 수 없는, 타고난 어떤 충동(자연, 본성)과 그에 대한 편향된 이해 (또는 몰이해) 가 낳은 비극적 사건을 보여준다. 하지만 인물들이 당한 불행은 그들이 책임져야 하는 정도에 비해 과도하고, 신들은 끝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어쩌면 이는 욕망과 야심이 들끓던 당시 로마의 상황에서 철학자 세네카가 이성의 능력과 신적 정의에 회의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일 수 있다. 

 

오이디푸스 

250 앞에 말했듯 이 작품은 세네카 비극 전체에서 초기에 쓰인 것으로 추정되어 왔다. 하지만 근래에 이런 추정에 의문을 제기하는 학자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그 출발점은 조금 오래된 문제다. 우선, 옛날부터 이따금 비극작가 세네카와 철학자 세네카가 같은 사람인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고 아직도 그 둘이 서로 다른 사람일지 모른다는 의혹이 남아 있다. 그런데 이 〈오이디푸스〉와 연관하여 그 둘이 동일인임을 입증하려는 시도가 있다. 이런 시도가 이 작품의 연대를 훨씬 뒤로 밀려나게 만든 것이다.  

256 이 작품과 관련해서 학자들 사이에 많이 논의되는 주제 중 하나는, 이것이 과연 상연할 목적으로 쓰였냐는 문제다. 한동안 그냥 낭독을 위한 작품이라는 설이 득세했었으나, 근래에는 다시 상연을 위한 작품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오이디푸스〉에서는 특히 코린토스 사자가, 자기가 얻어다 코린토스 왕가에 넘겨준 아기가 살아 있기를 기원하는 장면 (855행)이 오이디푸스를 가리키는 배우의 몸동작과 함께 이루어져야 이해 가능하다는 주장도 있다. 

258 세네카의 작품이 소포클레스 것과 크게 달라지는 대목은 마지막 부분이다. 이오카스테가 오이디푸스가 눈머는 것보다 먼저 자결하지 않고, 그후에야 자결하며, 그 방법도 여자들이 보통 택하듯 목을 매는 게 아니라, 남자들이 하듯 칼로 제 몸을 찌른 것이다. 결론적으로 두 작품의 공통점을, 그리고 소포클레스의 영향이 강력함을 주장하는 학자는 이렇게 한 이유를, 세네카가 자신의 오이디푸스를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그리고 그 차이를 좀 더 잘 드러나게 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즉, 비슷한 데가 많아야 작은 차이도 뚜렷이 드러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261 세네카의 스토아적 관심사 중 하나는 운수의 변덕과 운명의 불변성이다. "운명은 우리를 몰아간다, 운명에 복종하라"(980행)는 합창단의 노래가 그것을 잘 보여준다. 오이디푸스는 신탁이 실현되는 것을 막으려 애썼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그는 이 작품에서, 말하자면 운명적으로 결정된 것은 피할 수 없다는 스토아적 세계관을 입증하기위해 기용된 장치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는 극의 시작부터 운수의 변화를 두려워하고(6행 이하), 운명이 뭔가 안 좋은 일을 가져올까 봐 걱정한다(28 행 이하). 스토아적 초연함으로 운명을 받아들이라고 권고하는 사람은 다시 이오카스테다. 오이디푸스가 진실을 밝히려 서두르자, 그녀는 "운명은 저절로 자신을 풀어내니, 자극할 필요 없다"(832행)고 만류한다. 물론 그녀가 "모든 것은 운명의 탓"(1019행)이라고 주장하는 대목에서는, 그러면 인간에게 자유의지와 그에 따른 책임은 없다는 것인지 의문이 생기긴 하지만, 그녀가 마지막에 스스로 자결함으로써 인간의 자율성과 책임을 인정한 것이라 보아야 할 것이다. 

 

아가멤논 

266 이 작품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를 두고 학자들 사이에 논란이 있는데, 일단 아가멤논이 주인공은 아니라는 것이 중론이다. 우선 그의 분량이 너무 짧기 때문이다. 이는 아이스퀼로스의 〈아가멤논〉에서도 마찬가지다. 아이스퀼로스의 작품에서 제1배우 역할을 하는 이는 클뤼타임네스트라인데, 세네카의 〈아가멤논〉 에서도 그녀의 비중을 강조하는 학자가 많다. 특히 방금 본 제2막에서 유모와의 대화, 아이기스토스와의 대화가 특히 주목받고 있다. 죄책감과 복수심, 이성 사이에서 흔들리는 심리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한편 아이기스토스를 강조하는 학자도 있다. 

267 그런데 뒤로 갈수록 클뤼타임네스트라의 비중이 줄어들고, 새로운 등장인물 캇산드라가 부각된다. 그녀가 등장한 이후로 이야기의 진행 방향이 캇산드라에 의해 결정되는 인상이다. 그녀는 사건을 전진시킬 뿐 아니라,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관객에게 알리는 역할도 떠맡고 있다. 

271 이렇게 서로 맞서는 두 진영, 즉 한쪽에는 아이기스토스와 클뤼타임네스트라가 있고, 다른쪽에는 아가멤논이 있지만, 양쪽 다 폭군적이고 오만과 폭력에 물들어 있다. 반면, 이들과 더불어 삼각형의 한 꼭짓점을 이루는 대조적 인물이 캇산드라다. 그녀는 과거를 돌아보고 또 미래를 내다보면서 거기서 운명을 정면으로 마주할 용기를 얻는다. 아가멤논 가문과 트로이아 가문의 각기 두 조상이 하나는 좌절에 빠지고, 다른 하나는 기뻐하는 모습(769-774행)은 그 과거와 미래가 결합된 함축적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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