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루 쇼: 단테 『신곡』 읽기
- 책 밑줄긋기/책 2023-24
- 2024. 5. 20.
단테 『신곡』 읽기 - 프루 쇼 지음, 오숙은 옮김/교유서가 |
들어가는 말
등장인물
1. 우정
2. 권력
3. 인생
4. 사랑
5. 시간
6. 수
7. 말
보격에 관한 보충 설명 | 용어 해설 | 단테의 생애에 일어난 주요 사건들
읽을거리 | 감사의 말 | 도판 출처 | 옮긴이의 말 | 찾아보기
10 이 책의 목표는 독자들을 단테의 시로 안내하는 것이다. 그 대상은 문학과 시를 사랑하는 일반 독자━이탈리아어를 알든 모르든, 어디에 있든 언어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나는 이 책에서 주로 단테의 시가 가진 힘, 즉 놀라운 상상력, 강렬한 감정, 언어적 탁월한 그리고 테마 편성 기술을 알리는 데 중점을 두었다. 단테는 시각적인 것과 본능적인 것을 환기시키는 능력, 한 세계를 상상하고, 놀랄 만큼 경제적이고 정확한 언어로 그 세계에 형식과 내용을 부여하는 능력이 뛰어났다.
11 이 책의 각 장을 테마를 중심으로 구성했으며, 중요한 에피소드 위주로 설명했다. 체계적인 방식을 따라 한 에피소드에서 다음 에피소드로 넘어가기보다는, 전체 이야기에 흩어진 만남들과 장면들을 연결하여 그 연관성을 보여주려 했다.
33 베르길리우스와 호메로스를 비롯한 고전시대 작가들이 종종 여기 모여 시에 관한 담론을 나눈다. 이들이 받는 벌이라고는 천국에서 배제되었음을 아는 것이 전부다: "희망 없이 열망 속에서 살고 있다." 신성에 대한 짝사랑 같은 열망이 언젠가 충족되리라는 희망은 전혀 없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벌이다.
34 구이도 다 피사는 단테가 시인으로서 말하는 것이지 신학자로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고 설명한다. 『신곡』이 지닌 불후의 매력은 단테가 신학자로서가 아니라 시인으로서 썼다는 사실, 정확히 거기에 있다.
35 자신의 과거를 인식하고 자기 삶의 의미를 이해한다는 것은 이 이야기의 구성 원리 중 하나다. 뒤늦게야 여러 사건의 참된 의의를 알아차리면서 패턴을 이해하는 회고적 시선은 개인적, 사회적 영역 모두에서 작용한다.
37 에덴동산, 즉 죄악을 저지르기 전의 아담과 이브가 살던 원래 고향인 지상낙원을 연옥 산의 꼭대기에 놓은 것도 마찬가지로 단테의 생각이다.
38 이 이상한 영역을 지나는 단테의 물리적 여행은 정신적, 심리적인 여행, 지식과 이해의 여행과 맞물린다. 주인공은 여행하면서 배운다. 여행이 끝날 때쯤 그는 영적 위기만 해결한 것이 아니다. 그 경험을 시로써 기록할 능력을 갖춘 사람이 된다.
207 부활절, 그리스도교에게는 예수의 십자가형과 부활을 통한 인류의 구원을 의미하는 날에 여행이 시작된다. 단테의 여행에서 몇몇 세부는 부활절 서사의 일정표를 의도적으로 반영하는 듯 보인다. 그는 수난일(성 금요일) 해질녘에 지옥으로 내려가고 부활절 일요일 새벽에 연옥의 해변에 올라오면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사이의 시간을 상기시킨다. 그렇게 해서 그 연대표는 보편적 울림을 가진 시간대와 결합된 역사적 시간 속에 정확히 위치한다. 이 가닥―하나는 확고하게 역사 속에 자리잡았고 다른 하나는 역사를 초월한―은 이 시 전체를 관통하는 대위법을 이룬다. 그 상호작용은 이 시의 의미에서 본질적인 부분이다.
225 알려진 세계에 관한 이런 중세적 모델 위에 저승세계의 지도를 그려낸 단테의 방식은 놀랍도록 독창적이다. 연옥은 예루살렘(사람이 사는 세계의 중심)의 대척점, 남반구의 대양 위로 솟은 거대한 산이다. 이 산 꼭대기에 아담과 이브가 원래 살던 지상낙원이 있다.
228 연옥이 지옥과 다른 것은 바로 시간 때문이다. 연옥은 과도기의 영역, 변화의 영역, 진보의 영역,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나아가는 영역이다.
231 시간은 순서, 운동, 전진, 연속, 변화다. 인간의 삶에서 우리는 시간, 날, 계정, 해 등으로 측정되는 일련의 연소처럼 생성에서 부패로, 단생에서 죽음으로 나아간다.
260 『신곡』은 시간 속에 굳건히 자리잡고 있지만, 그럼에도 시간을 초월한다. 종교를 가진 이들에게는 이 시가 이승에서 죽을 존재의 한계 조건, 즉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것과 연결시켜주기 때문이다.
282 이 보격 체계의 실질적 이점은 그 때문에 단테의 시를 고치기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중세 필경사들은 종종 텍스트를 베끼면서 멋대로 고치기도 했다.
282 그러나 테르차 리마에서는 그런 일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일부라도 잘라낸다면 분명 엉망이된 텍스트가 나올 것이다. 소재를 추가하려는 시도도 마찬가지로 실패할 수밖에 없다. 까다로운 형식은 아주 훌륭한 시인만이 자신 있게 다룰 수 있다.
299 『신곡』에서 독특한 점은 그 시가 구현하는 믿음 체계―신학적인 믿음은 물론 철학적, 과학적 믿음까지—와 그것을 표현하기 위한 구조적, 운율적 형식이 완벽하게 들어맞는다는 것이다.
302 먼저, 사실부터 시작하자. 『신곡』의 80 퍼센트는 오늘날 이탈리아어를 모국어로 쓰는 이들이 당장에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되어 있다. 거꾸로 말해서 현대 이탈리아 어휘의 핵심 단어 2000개가 모두 단테의 시 안에 있다.
303 오직 인간一물성과 영성, 육체와 영혼의 독특한 혼성물一만이 언어를 필요로 한다.
304 단테가 『속어론』에서 지지하다가 『신곡』에서 수정하는 언어관은 그 퍼즐의 결정적인 한 조각이다. 『속어론』에서 언어는 신이 주신 것, 최초의 사용자인 아담과 함께 신이 창조하신(concreatam)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언어는 인간의 창조물이 아니라 주어진 것이다.
308 아담은 순례자 시인의 관심사를 직감으로 알고, 그의 질문을 말하면서, 신이 자신에게 주신 것은 언어가 아니라 언어 능력이라고 한다. 그는 타고난 이 능력을 발휘해 직접 언어를 만들어 사용했다는 것이다.
308 그러나 지금 천국의 아담은 단테에게 그것이 틀렸다고 설명한다. 인간의 창조물인 언어는 처음부터 바뀔 수 있는 것이었다. 결코 정적이고 고정된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313 초기에 단테는 그 불변성이 애초에 신이 주신 언어의 고정성을 모방한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라틴어는 죄악(하늘에 닿는 바벨탑을 지으려는 오만한 시도)의 직접적 결과인 변동성을 지닌 토착어보다 이상에 더욱 가깝다.
131 아담의 말처럼 언어가 처음부터 변할 수 있는 것이었다면, 변동성은 더는 죄악의 표지가 아니며, 라틴어의 불변성도 더는 신에게 가까이 가게 해주는 것이 아니다. 이제 라틴어의 불변성은 더 높은 가치를 뜻하는 게 아니라 인간이 부여한 인위적인 것에 불과하다.
315 베르길리우스는 분명 라틴어로 글을 썼지만, 단테에게 라틴어는 '2차 언어', 문화의 2차 언어다.
316 무엇보다 난감한 질문은 베르길리우스가 쓰던 입말과 글말의 관계를 단테가 어떻게 생각했을까 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베르길리우스가 자신이 쓰는 입말을 굉장히 공들여 다듬은 세련된 글말을 썼으며 그 둘 다 라틴어라는 걸 알고 있다.
318 단테는 『신곡』의 언어관을 체계적으로 설명하는 이론적 진술을 남기지 않았다. 예전에 쓴 시를 『속어론』에서 설명했던 것과는 달리 『신곡』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
319 페트라르카는 엄격한 선택과 배제의 접근법을 사용했다. 그의 시에는 절묘한 조화를 이루지 않는 것, 음악적이지 않은 것, 다듬지 않은 것, 세련되지 않은 것(그리고 말할 필요도 없이 점잖지 않은 것)은 일체 허락되지 않는다. 이는 『속어론』이 규정하는 것에 가깝다. 반대로 『신곡』에서 단테의 방식은 포용적이다. 인간 삶에서 꼼꼼히 살피고 재현할 가치가 없는 측면이 없듯이, 표현적 잠재력을 지닌 인간 언어에서 채택할 수 없는 측면은 없다는 것이다.
324 『신곡』에서 눈에 띄는 한 측면은 직접 화법의 높은 비율이다. 이 시의 절반 이상의 시행이 대화다. 대화는 본질적으로 극적이며, 단테가 열정적으로 개척하는 저급한 스타일의 통속적 표현법을 가능하게 한다.
343 단테의 시대에는 표준 이탈리아어 같은 건 전혀 없었다. 단테는 자신의 고향 말로 쓰기로 했지만, 그의 언어 선택에 영향을 주거나 지침이 될 수 있는, 널리 받아들여지거나 인정된 토착어가 따로 없었다. 그는 토스카나어로 글을 썼고, 너무 훌륭하게, 뛰어난 표현력을 발휘했고, 그 언어를 매우 능숙하게 구사했기 때문에, 토스카나어가 표준적 형태가 되었다. 단테가 이탈리아어를 "발명"했다고 하는 의미가 바로 이것이다.
376 단테는 테르차 리마라는 새로운 형식을 창조했고, 그에 어울리는 언어를 창조했다. 그가 만들어낸 언어는 그가 발명한 운율 체계 안으로 겉보기에 쉽고 편안하고 우아하게 흘러들어가 그 체계를 채워준다. 그 두 가지가 완벽하게 맞아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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