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리 이글턴: 비극

비극 - 10점
테리 이글턴 지음, 정영목 옮김/을유문화사

옮긴이의 말
서문

1. 비극은 죽었는가
2. 근친상간과 산술
3. 비극적 이행
4. 유익한 허위
5. 위로할 수 없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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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이것으로 나는 비극 연구서를 두번째로 쓰는데, 아마도 위대한 예술과 근본적인 도덕적·정치적 쟁점들이 그렇게 긴밀하게 맞물린 곳이 달리 거의 없기 때문일 것이다. 비극이 중요한 한 가지 이유는 그것이 우리가 궁극적으로 가치를 두는 것의 척도이기 때문이다. 

10 나는, 지금은 저명한 라파엘전파 연구자가 된 잰 마시Jan Marsh가 '케임브리지대학교 영어 우등졸업시험'에서 함께 '비극' 시험을 보고 난 뒤 "시험관들은 비극이 좋은 거라고 생각하나봐"라고 말한 이후 반세기가 훨씬 넘도록 비극을 생각해온 셈이다. 

13 그것은 가공한 종류에 속하는 것이 아니었다. 드물고 특별한 운명이 아니었다. 압도하면서 불멸로 만드는 운의 손길이 아니었다. 그저 일반적인 불운의 낙인에 불과했다.(헨리 제임스Henry James, 「정글의 짐승」The Beast in the Jungle) 

13 예술적 의미의 비극은 매우 구체적인 사건이다.

13 비극이라는 형식은 시간을 초월한 인간 조건의 반영으로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특정 문명이 아주 짧은 역사적 순간 동안 자신을 괴롭히는 갈등과 씨름하는 형식으로서 나타난다.

13 모든 예술에는 정치적 차원이 있지만, 비극은 실제로 정치적 제도로서 삶을 시작했다.

14 라이너 프리드리히는 "비극의 텍스트는 폴리스의 시민 담론이라는 더 큰 텍스트의 일부가 된다."

15 훗날의 비극은 대부분 공식적인 정치적 제도가 아니다. 

15 비극적 드라마는 계속 국사, 권위에 대한 반역, 공격적인 야망, 궁정의 음모, 정의의 침해, 통치권을 위한 투쟁을 다루는데, 삶과 죽음이 사회 전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명문가 출신 인물들의 경력이 그 모든 것의 중심에 자리를 잡는 경향이 있다.  

15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은 비극을 무해한 환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관객에게 잘못하면 사회를 파괴할 수도 있는 어떤 감정(연민과 공포)을 엄격하게 통제된 양만 먹이는 것으로 간주한다. 비극은 간단히 말해 정치적 동종요법의 한 형태이다.  

16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점에서 그리스 비극은 폴리스의 건강을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는 감정적 무기력을 정화하는 공적 치료의 한 형태를 제공할 수 있다. 

17 비극은 예술 형식 가운데 귀족으로서 무엇보다도, 참담하게 산문적인 시대의 중심에서 영적으로 더 고양된 사회질서의 기억 흔적 역할을 한다. 

27 사물의 어두운 핵심을 들여다본 사람들의 성숙한 환멸과 비교할 때 사회적 희망에는 뭔가 견딜 수 없이 미숙한 것이 있다. 스타이너는 "리어의 운명은 유료 노인복지주택을 충분히 세우는 것으로 해결될 수 없다"고 말한다. 

27 정치는 어떤 갈등은 없앨 수 있을지 모르지만 모든 고통과 절망이 발생하지 않게 할 수는 없다.

31 마르크스주의와 기독교는 사실 비극적 신조이지만 그것은 역사의 참담한 종말을 상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불의한 세계가 자신의 구속에 바쳐야 할 어마어마한 대가를 의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43 고난에 대한 이런 민주화된 비전에서는 은행 직원이나 상점 여직원의 영혼도 중대하고 헤아릴 수 없는 힘들이 자신을 완전히 소진하는 전장이 된다. 

45 일군의 미심쩍인 가정 전체를 잘라 내야 한다. 비극이 불굴의 인간 정신의 승리를 제시한다는 가정, 역경과 마주하는 것은 항상 담금질되고 잘못을 깨닫는 과정이라는 가정, 그런 극단에서만 인간성의 바닥이 드러난다는 가정, 겉으로는 순수한 불행으로 보일 수도 있는 것을 통하여 섭리적 질서의 윤곽이 드러날 수 있다는 가정. 

59 어떤 것이 그 자체인 동시에 다른 어떤 것이 되는 근친상간은 특별히 매혹적인 아이러니의 사례이며, 이런저런 종류의 아이러니는 소포클레스 걸작의 모든 조직에 스며들어 있다. 

60 괴물은 "저것이 무엇이냐?" 하는 질문에 결정적인 답을 할 수 없는 존재인데, 이것은 인간 자신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이런 의미에서 오이디푸스와 스핑크스는 서로 적대자일 뿐 아니라 거울 이미지이기도 하다. 

62 괴물적인 것과 근친상간적인 것은 모두 범주의 혼란과 관련된다.

63 근친상간의 자식이 어머니와 다시 결혼을 하는 토마스 만Thomas Mann의 소설 『선택받은 사람Der Erwählte』에서처럼 이중 근친상간의 가능성도 생길 수 있다. 

65 하나 안에서 신, 인간, 괴물이 되는 것이 가능하며, 오이디푸스 자신이 결국 이 거룩하지 않은 삼위일체의 한 예가 된다.

68 어떤 대상에 대한 진짜 앎을 가지려면 대상과 어떤 거리를 확립해야 하는가?

68 자신을 아는 것은 자기 동일적이 되는 것이지만, 동시에 자신을 둘로 쪼개 대상으로 바꾸고 그렇게 바로 그 행동 자체로 암묵적으로 자신의 주체성을 부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71 아름답게도 정밀한 이 예술 작품의 핵심에는 비정상 또는 비결정성이 담겨 있으며, 그러한 것으로서 인간성 자체의 본성에 들어맞는다. 

73 한 시대가 실제로 행진 중간에, 즉 상황의 한가운데서 자신을 느낄 수도 있을 때, 뒤에 놓인 것에 의해 규정을 받으면서도 아직 다가오지 않은 것에 의해 추동되고, 양 시대의 조수와 같은 영향력에 의해 양쪽으로 끌려가면서 불안하게 또는 흥분하여 자신의 경험을 결말이 열린 것으로 인식하는 때, 18세기 말이나 20세기 초 같은 시기, 다양한 지진의 흔들림이 어떤 묵시록적 거친 짐승의 도래를 알리면서 발 아래 땅이 움직이는 게 느껴지는 시기가 있다. 이런 역閾의 상태가 주요 비극이 나오는 시기라는 귀에 익은 주장이 있다. 

74 "비극이라는 제도는", 사이먼 골드힐은 말한다. "서사적 신화를 폴리스의 신화로 바꾸는 기계다." 그것은 "실천이성이 무대에 전시된 것"이다. 

86 "엘리자베스 시대의 위대함은", E. M. W. 틸야드는 말한다, "구체제의 고귀한 형식을 부수지 않고 새로운 것을 그렇게 많이 담아냈다는 것이다." 

93 이행은 교착상태가 된다. 미래가 소유욕이 강한 개인주의자들이라는 새로운 품종의 호주머니에 있는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단지 역사적 진보라는 개념 자체가 의미의 전반적 부식 과정에서 무너져 버리면서 욕구의 영원한 반복, 음모와 반음모의 충돌, 복수의 황폐한 상호성으로 대체되었기 때문일 뿐이다. 

94 사이먼 크리칠리의 말로 하자면 "주체성의 진실은 세계와 별도로 살아 내야 한다." 주인공은, 사라진, 내재적 의미의 세계와 권력이나 욕망의 탐욕스러운 체제 사이에서 갈등하며 파괴된다. 

95 골드만은 라신의 비극적 비전의 역사적 맥락을 정치적 이행 과정, 즉 17세기 프랑스에서 중앙집권적 관료국가에서 밀려나 이른바 법복귀족이 눈앞의 타락한 세계로부터 경멸을 품고 퇴각하는 과정에서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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