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아 임펠루소: 베네치아 아카데미아 미술관

 

베네치아 아카데미아 미술관 - 10점
루치아 임펠루소 지음, 최병진 옮김/마로니에북스

 

서문
베네치아 아카데미아 미술관
작품들
미술관 안내
화가 및 작품 색인

 


베네치아 아카데미아 미술관에 있는 작품의 이해를 돕고 때로는 작품에 숨겨진 이야기들을 접할 수 있는 신뢰할 반한 가이드북이 있다는 것은 정말 유용한 일이다. 

모든 작품들에는 비밀스러운 이야기가 숨어 있다.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인 조르조네의 〈폭풍〉의 예를 들어 소개하고자 한다. 사람들이 이 작품에 아무런 의미가 없는데 명화라고 부르지는 않음 것이다. 그 작품이 명화임을 아는 것보다 그 안에 숨겨진 이야기를 통해 왜 명화로 불린만한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 진정한 명화라면 늘 생각한 만한 질문들을 제시해줄 것이다. 이 작품 역시 늘 새로운 수수께끼를 던지며 우리는 작품 해석을 위해서 흥미로운 퍼즐 조각을 맞추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그림의 내용과 형식을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지만 이 부분은 작품 설명에서 자세히 다룰 예정이어서 이와 관련된 해석의 열쇠를 여기서 미리 설명하진 않을 것이다. 그 대신 이 놀라운 작품이 베네치아의 아카데미아 미술관에 도착할 때까지의 모험과 여정을 소개하고자 한다. 작품 소유권의 변화를 추적하는 일은 미술사학자들에게 흥미롭지만 쉽지 않은 연구 주제 중 하나이다. 작품소유권을 위해서는 작품의 판매 이력과 해외로의 반출시도, 그리고 구입하려는 시도를 다시 볼 필요가 있다. 〈폭풍〉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1530년 가브리엘레 벤드라민과 마르칸토니오 미키엘이 남긴 글이다. 그는 자신의 집에 걸린 이 작품에 관해서 "폭풍우가 불어올 때 군인과 여인을 묘사한 이 그립은 카스텔프랑코 출신의 화가 조르조네의 것이다"라고 기록했다. 최초로 이 작품을 소유했던 가브리엘은 여러 미술품을 수집했던 컬렉터로 사립 컬렉션이 종종 그렇듯이 그의 컬렉션은 유산의 상속 과정에서 여러 가족에게 소유권이 분할되었다. 하지반 곧바로 컬렉션이 해체되었던 것은 아니었으며 1648년이 되어서야 그의 재산을 상속했던 후계지들은 가문의 경제적인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 컬렉션에 속한 미술작품을 분할 판매하는데 동의했다. 

이때 〈폭풍〉을 구입한 새로운 소유주는 크리스도포르 오르세티였다. 그는 태양이 작렬하는 이탈리아의 달콤한 포도주인 말바시아를 판매해서 성공을 거둔 상인이었다. 1680년 그는 아들 살바토레에게 '조르조네의 풍경과 인물이 있는 작품'을 상속했다. 17세기 말에는 담배 무역을 통해 큰돈을 벌었던 지롤라모 만프린이 오르세티 가문에서 이 작품을 구입했다. 그는 당시 베니에르 팔라초의 내부를 장식하기 위해서 여러 점의 미술 작품이 필요했고, 그 과정에서 〈폭풍〉을 구입했다. 수많은 문학가, 예술 애호가들이 〈폭풍〉을 감상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만프린의 집을 방문했다. 예를 들어 바이론 경은 한 편지에 당시 조르조네의 '성가족'이라는 제목으로 알려진 〈폭풍〉에 묘사된 여성의 이름다움에 놀라운 마음을 표현하기도 했다. 

1850년 지롤라모 만프린의 조카였던 바르톨리나 폴라티스는 〈폭풍〉을 4만 8천리라에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 판매하려다가 1년 후 생각을 바꿔 이탈리아 정부에 〈폭풍〉을 포함해서 그가 소유했던 미술품 컬렉션 전체의 구입을 제안했다. 하지만 너무 높은 가격을 제시했기 때문에 이 시도는 무산되었다. 

1875년 이탈리아 왕가의 조바넬리는 2만 7천리라에 〈폭풍〉을 구입하는 데 성공했고, 이 작품은 밀라노의 유명한 복원 전문가 루이지 카네바기에게 보냈다. 곧 〈폭풍〉은 '조르조네의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알려지기 시작했고. 이탈리아 정부는 카네바기의 화실에서 이 작품을 감정했다. 이때 이 작품의 경제적 가치는 무려 3만 5천리라에 이르렀다. 이후 이탈리아 정부는 조바넬리에게 이 작품을 판매할 것을 요청했고 2년에 걸쳐 작품 가격을 나누어 지급하겠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조바넬리는 이 제안을 거절했다. 같은 시기 미국의 컬렉터인 이사벨라 스튜어트 가드가 미술사가로 유명한 베렌슨을 통해 이 작품을 구입할 의사를 보인 후 여러 번 구입을 시도했으나 이탈리아 내의 문화재 보호법이 이 작품의 국외 판매를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폭풍〉은 이탈리아에 남게 되었다. 한편 1925년에도 런던의 고미술 상인인 조솁 드반 역시 500만 달러에 이 작품을 구입하겠다는 의사를 피력했지만 이탈리아 왕가는 판매를 거절했다. 1930년에 〈폭풍〉을 런던 이탈리아 미술 박람회에 전시했을 때, 이 작품을 위해 약 5천만 리라의 보험에 가입했다. 이 시기에 이 작품의 해외 판매에 대한소문이 있었다. 그래서 이탈리아정부는 1931년 해외에 이 작품이 판매되는것을 막기 위해 다양한 보호 정책을 입안했고 결국 조바넬리 가문은 이 작품의 해외 판매를 단념했다. 뒤이어 이탈리아 왕가에 찾아온 경제적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이탈리아 정부에 이 작품 매입을 제안했다. 소유주는 약 1천만 리라의 가격을 제안했지만 500만 리라의 비용을 지불한 후 아카데미아 미술관의 컬렉션으로 남게 되었다. 

 

마르코 카르미나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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