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담화冊談話 | 사통史通(20) ─ 史通, 內篇 - 浮詞

 

2025.03.23 δ. 사통史通(20)

유지기, ⟪사통⟫(劉知幾, 史通)

텍스트: buymeacoffee.com/booklistalk/shitong-7

 

부사浮詞 ─ 어쭙잖은 말과 과장

- 서술방식
"옛날의 기사는 먼저 경문을 통해 배경이나 단서를 암시하고서 뒤에 전문에서 마무리하는 경우가 있는데, 기사의 배치는 성긴 듯하지만 실제 연관관계는 치밀했다." (고지기사야古之記事也 혹선경장본或先經張本 혹후전종언或後傳終言 분포수소分布雖疎 착종유밀錯綜逾密) 

"말에 일정한 기준이 없을 뿐만 아니라, 사실 또한 이것인지 저것인지 결정이 되지 않은 것이다." (비유언무준적非唯言無準的 고역사성수서자의固亦事成首鼠者矣) 

"올바른 도리를 추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글을 쓰면 쓸수록 보는 사람이 혼란스러워진다." (불구당리不求讜理 이언지반복而言之反覆 관자혹언觀者惑焉) 
리理 → 준準 → 언言·행行(사事)

"문장이 의도를 손상하는 일은 예부터 그러했거니와 비교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교하는 유래도 오래되었다. ... 이들은 모두 멀리 보는 안목이나 판단력이 없으며, 지식이 넓거나 치밀하지 못하면서 가볍게 붓끝을 놀려 멋대로 자신의 감정을 표출했다." (부문이해의夫文以害意 자고이연自古而然 의비기윤儗假非其倫 유래상의由來尚矣 ... 사개감재비원斯皆鑒裁非遠 지식부주智識不周 이경농필단而輕 弄筆端 사정고하肆情高下) 

"원래 말을 적게 하는 사람은 한마디 말로도 뜻을 다 펼 수 있지만, 재주가 거친 사람은 여러 구절을 써야 비로소 뜻이 통한다. ... 좋은 역사서는 이렇게 한 가지 일을 들어 관련된 나머지 사안을 알 수 있게 한다." (부사과자夫詞寡者 출일언이이주出一言而已周 재무자자수구이방래才蕪者資數句而方淶  ... 구거사일사苟舉斯一事 즉촉류가지則觸類可知) 

"옛 전설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탐구하고 헤아리면서 새로운 말로 널리 보충" (부탐췌고의夫探揣古意 이광족신언而廣 足新言) 

"대개 오리 다리가 짧다고 다른 것을 이어 붙이면 괴로워지는 법이고, 역 사서의 문장이 간략하다고 다른 말을 덧붙이면 오히려 누가 된다." (사문수약史文雖約 증지반루增之反累) 

장자, 병무, "오리 정강이가 짧아도 이어 붙이면 불편하고, 학의 다리가 길다고 자르면 슬퍼한다." 


유지기의 《사통史通》, 어제 읽은 부사浮詞, 어쭙잖은 말과 과장을 마저 읽어보겠다. 여기는 계속 글쓰기의 방법으로, 어떻게 서술하는가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어제 얘기한 것은 문장론도 그렇지만 포폄을 담는 서술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요즘에는 읽고 쓰는 능력 그리고 자기 자신이 글 하나로써 또는 하나의 단어로써 사태를 명확하게 표현하고 거기에 포폄을 담는다는 것 자체가 글쓰기에 포함된다는 것을 거의 의식하지 않는다.  

"옛날의 기사는 먼저 경문을 통해 배경이나 단서를 암시하고서 뒤에 전문에서 마무리하는 경우가 있는데, 기사의 배치는 성긴 듯하지만 실제 연관관계는 치밀했다. 하지만 지금의 기사는 그렇지 않다." 앞에서 엄연년嚴延年은 일처리에 정밀하고 민첩했다고 하는 부분까지 포폄을 담는 서술의 사례였는데, 이제는 서술하는 방식을 또 어떻게 하는가. 고지기사야古之記事也 혹선경장본或先經張本, 먼저 경문을 쭉 깔고서 그다음에 뒤에 전문에서 마무리하는 경우가 있는데, 여기서 유념해야 되는 것은 분포수소分布雖疎, 성기다는 것이고, 착종유밀錯綜逾密, 섞어 모으는 게 더욱더 치밀했다. 착종錯綜이라는 단어를 보면, 착錯이라는 글자가 들어가면 나쁜 의미로 쓰이기가 쉬웠다. 착종이라는 말이 긍정적인 뜻으로 쓰이는 경우가 거의 없었는데, 유지기의 글을 실제 연관관계라고 번역을 해놓았다. 가치중립적으로 연관관계 라고 보면 될 것 같다.  

"기사의 배치는 성긴 듯하지만 실제 연관관계는 치밀했다. 하지만 지금의 기사는 그렇지 않다." 그래서 예를 몇 개 들었는데, 제나라 역사를 다룬 "제서에서 위수에 대한 평가를 보면, 그가 곧았다든가 나쁜 짓을 했다든가를 두고 세 가지 설이 각기 다르다"고 했고, 그다음에 주나라 역사인 "주서에서 태조를 평가한 것을 보면, 그의 품성에 대해서 관대하다든가 사람 죽이기를 좋아했다든가 하는 견해가 서로 다르다." 그런데 왜 그러는가. 기준이 없으니까 그렇다는 얘기다. 결국 기준 문제가 되겠는데, "말에 일정한 기준이 없을 뿐만 아니라, 사실 또한 이것인지 저것인지 결정이 되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왜 말의 기준이 없는가. ""올바른 도리를 추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글을 쓰면 쓸수록 보는 사람이 혼란스러워진다." 그러니까 핵심은 올바른 도리이다. 올바른 도리가 먼저 있고 그다음에 올바른 도리가 있은 다음에 그러면 그것에 근거해서, 기준이 생기는 것이고, 그다음에 서술이 나가는 것이다. 도리가 있어야 되는데, 도리는 형이상학적인 것이다. 그러면 순서가 도리理가 있어야 되고 그다음에 준準이 있어야 한다.  그다음에 이제 말言이 있어야 한다. 그러니까 리理, 준準, 언言 이 세 가지의 순서가 쭉 있어야 한다. 리理가 없으니까 준準이 없고 그러다 보니까 말言도 이런 말 했다 저런 말 했다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비유언무준적非唯言無準的 고역사성수서자의固亦事成首鼠者矣, 말이 일정한 기준이 없을 뿐만 아니라, 이것저것 정확한 사실도 찾아내지 못했다. 그러면 여기서는 정말 혼란의 도가니가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불구당리不求讜理 이언지반복而言之反覆 관자혹언觀者惑焉, 올바른 도지를 추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글을 쓰면 쓸수록 보는 사람이 혼란해진다. 여기서 핵심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리理가 있고 준準이 있고, 언言이 있다는 것으로 순서 잘 봐야 되겠다. 플라톤을 가지고 비유해서 말하자면 이데아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하늘을 쳐다보면서 이데아를 본받으려고 하는, eidos가 있으면 그것을 본받는 본paradeigma가 있고, 그 본에 근거해서 언言과 행行은 거기서 나오는 것이겠다.  언言과 행行은 묶어서 사事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다 보니 이언지반복而言之反覆 관자혹언觀者惑焉, 말을 글을 쓰면 쓸수록 보는 사람이 혼란해진다. 이것은 서술 방식에서 좀 더 형이상학적인 근본을 따져가는 것이다. "문장이 의도를 손상하는 일은 예부터 그러했거니와 비교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교하는 유래도 오래되었다." 부문이해의夫文以害意 자고이연自古而然, 문장이 뜻을 손상하는 일은 예부터 그러했고, 의비기윤儗假非其倫 유래상의由來尚矣, 비교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교하는 것의 유래도 오래되었다. 의儗자는 망설이다는 뜻도 있고 분수에 지나치다 라는 뜻도 있는데, 비교하다는 뜻도 있다. 윤倫자는 윤리할 때 윤자인데, 무리를 가리키는 말도 된다. 사람을 비교할 때는 반드시 그 비슷한 무리하고 동류에서 비교를 해야 된다는 말이며, 의비기윤儗假非其倫은 그 무리가 아닌 것으로 비교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니까 비교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교한다니까 범주의 오류categorical fallacy를 범했다는 말이겠다. 그다음을 보면 "이들은 모두 멀리 보는 안목이나 판단력이 없으며, 지식이 넓거나 치밀하지 못하면서 가볍게 붓끝을 놀려 멋대로 자신의 감정을 표출했다." 사개감재비원斯皆鑒裁非遠, 이들은 모두 멀리 보는 안목이나 판단력이 없으며 안목이 있으려면 판단이 있어야 되는데, 판단력을 가지려면 지식이 넓거나 치밀해야 된다. 그러니까 이 순서가 사실 안목이나 판단력이 있으려면 지식이 넓거나 치밀해야 된다. 그 앞에 이치가 있어야 기준이 있고 그에 따라서 언행을 바로 한다고 되어 있다. 그런데 이치가 있으려면 시행착오 속에서 언행을 해봐야 된다. 그러니까 이치를 얻으려고 하면 사실 거꾸로 가야 된다는 말이다. 이렇게 해보고 나서 일반화를 거쳐 보고, 준準으로 가보고 준準들을 모아서 리理로 가본 다음에야 리理가 성립하는 것이고, 그렇게 해서 성립한 리理가 이제 준準을 만들어내고 그 준準에 의거하여 언言과 행行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그러니까 공부를 하면 할수록 정말 요긴하다고 생각하는 게 해석학적 순환hermeneutics circle이라는 것이다. 해석학적 순환이라고 하는 게 정말 중요한 부분이다.  인간의 앎이라고 하는 것은 전체의 어떤 대강이라도 알아야 부분을 정밀하게 해석할 수 있고, 그런데 그 전체의 대강이라도 알려면 부분에 대한 지식이 좀 있어야 된다. 그러니까 pathos-taker, 말그대로 수험생受驗生, test-taker이다. 험驗이라는 글자가 경험이라는 뜻도 되니까 pathos이다. 자기가 얼마나 pathos를 해보느냐에 달려 있는데, 이 pathos가 결국에는 준準을 만들고 리理까지 이르게 하는 그런 바탕이다.  그러니 지식이 넓거나 치밀해야 안목이나 판단력이 있게 되고, 안목이나 판단력은 준準 정도에 해당할 테니까 그게 있어야 리理까지 갈 수 있다. 결국 앞에 나온 얘기가 되풀이되는 것이다. "말이 일정한 기준이 없을 뿐만 아니라, 사실 또한 이것인지 저것인지 결정되지 않았다." 기준이 없다고 하는 것은 그런 것일테고, 그러니까 올바른 도리를 추구하지 않았고, 기준, 도리, 사실 이런 것들에서 계속 맴도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지식부주智識不周, 지식이 넓지 못하고, 이경농필단而輕 弄筆端, 가볍게 붓끝을 올려서, 사정고하肆情高下, 사肆자는 거리낌 없이 말할 사肆, 방자할 사肆자, 그러니까 자신의 감정을 거리낌 없이 위아래로 내비쳤다는 말이 되겠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으로 볼 만한 것은 "원래 말을 적게 하는 사람은 한마디 말로도 뜻을 다 펼 수 있지만, 재주가 거친 사람은 여러 구절을 써야 비로소 뜻이 통한다." 원래 말을 적게 하는 사람은 그렇게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사실 원래 말을 좀 많이 해봐야 한다. 혼자서 이렇게 많이 써보고, 10페이지를 쓴 다음에 다시 5페이지로 줄여보고 그것을 또 1페이지로 줄여보고 그렇게 하는 것, 그러니까 원래 많이 써보고 줄여본 사람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뭔가를 많이 써보고 줄여본 사람은 한마디 말로 뭔가를 응축시킬 줄 알게 되는 것이다. 좀 더 정확하게 이 일이 펼쳐지는 사태를 말해보자면 원래 말을 적게 하는 사람이 아니라 많이 써본 사람은 더 정확한 표현이다. 많이 써본 사람은 이제 그게 훈련이 되어서 한마디 말로 뜻을 다 펼 수 있지만, "재주가 거친 사람은 여러 구절을 써야 비로소 뜻이 통한다." 이것도 한 번 더 생각을 해보면 재주가 거칠 때는 말을 하면 안 되고 자기 혼자 연습을 많이 해봐야 한다. 재주가 거친 사람은 여러 구절을 써보고 하나로 줄여보고 계속 그렇게 해봐야 한다. 그다음에 "좋은 역사서는 이렇게 한 가지 일을 들어 관련된 나머지 사안을 알 수 있게 한다." 일단 문장론은 그렇게 하고 다시 보면, 부사과자夫詞寡者 출일언이이주出 一言而已周, 원래 말을 적게 하는 사람은 한마디 말로도 뜻을 다 펼 수 있지만, 재무자자수구이방래才蕪者資數句而方淶, 무蕪자는 거칠 무자, 래淶자는 강 래淶자, 강을 이룬다는 얘기이겠다. 

그다음에 보면 사례가 몇 개 있다. "좌전에 강현 노인의 나이에 대해서 서술하면서 우회적으로 조맹에 대해 말했고, 반고의 한서에 공승이 죽었을 때 초 나라 노인이 와서 애도한 일에 대해 서술하면서 그 노인의 이름을 기록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서 "좋은 역사서 이렇게 한 가지 예를 들어 나머지 관련된 나머지 사안을 알 수 있게 한다"고 했는데 사실 읽는 사람도 뭔가 알아야 한다. 좌전에 있는 얘기가 뭐냐하면 밑에 각주가 달려 있으니까 설명을 해보면 "강현의 한 노인이 자식이 없어서 축성하는 곳에 부역을 하러 왔다가 밥을 먹고 있었는데", 부역 명령이 내려지면 자식을 보낼 텐데 자식이 없으니 이제 늙은이가 왔을 것이다. "이제 밥을 먹고 있는데 옆에 있는 사람이 나이가 물으니 태어난 지 445회 갑자가 지났다고 대답했다. 그러니까 445살이라는 게 말이 안 되니까, 옆에 사광이나 사조의 자문으로도 계산을 해보니 70세가 넘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조맹이라는 사람이 나이 많은 사람에게 욕되게 부역을 시켰다면서 그 노인을 불러서 사과를 했다는 얘기이다. 그러면서 그 얘기를 하면서 진나라 조정의 인물이 많았다 라는 예로 나온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노인이 부역을 하러 왔는데 그 노인에게 사과했다는 얘기를 하면서 그 나라는 그래도 노인을 알아보고 욕되게 시키지 않는구나 라는 것을 말한다는 것이다. 

그다음에 반고의 한서에 보면 공승이 죽었을 때 초나라 노인이 와서 애도한 일에 대해서 서술하면서 그 노인의 이름을 기록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이것이 한 가지 예를 들어 나머지 사안을 알 수 있게 하는 사례인지는 모르겠다. 각주를 가지고 보면 공승은 굉장히 덕이 있는 사람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공승이라는 사람과 공사라는 사람이 있어서 둘 다 공씨니까 초나라 양공이라 했다고 한다. 그런데 신 나라를 세운 왕망이 공승을 불렀는데 문을 닫고 굶어 죽었다. 그가 이전 왕조에 충성했다는 뜻이다. 그때 문을 닫고 굶어 죽었으니까 어떤 노인이 와서 조문을 했다고 하는데, 그 노인이 누군지는 안 썼다는 말이다. 누가 봐도 그 조문을 한 사람은 양공이라고 일컬어지던 공사가 아니겠는가. 어떤 노인이 와서 슬퍼하며 조문을 했다고 한다 라고 서술을 끝냈다. 그러면 이제 읽는 사람은 그 노인이 공사였겠구나를 짐작하게 했다는 것이다. 말을 적게 함으로써 뜻이 통하게 했다. 그런데 굳이 그렇게 보지는 않는다. 그 사람 이름을 굳이 쓰면 서슬퍼런 권력한테 혼쭐 날 위험도 있으니까 그러지 않았을까 하는 저의 추론을 좀 해보기도 하는데, 과연 과연 이게 그런 사례에 해당할까는 의문이긴 하다.  

그다음에 "옛 전설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탐구하고 헤아리면서 새로운 말로 널리 보충한다." 그런데 고의古意가 옛 전설이라기 보다는 앞에 문장을 보면 "두 노인은 덕을 숨기고 살면서 명리를 구하지 않았으며, 난세와 박해를 멀리 피했고 천한 일을 하면서도 편안하게 여겼다." 여기서 옛 전설은 레전드가 아니라 전해 내려오는 얘기이다. 부탐췌고의夫探揣古意, 췌揣는 생각할 췌, 헤아일 췌, 고의古意는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인데, 고전 텍스트를 해석할 때 어떻게 할 것인가를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고의古意라고 하는 게 고전 텍스트의 해석에 전용해서 쓸 수 있지 않겠나 싶다. 그러니까 예전에 텍스트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탐색하고 헤아려 보고, 이광족신언而廣 足新言, 새로운 말로 그것을 보충한다, 광廣이라는 게 넓힌다는 것이다. 그런데 보충을 한다고 하더라도 항상 조심해야 되는데 어제도 그 얘기지만 과잉 해석을 하지 않으려고 해야 되는데 그게 좀 어렵겠다. 

마지막에는 장자의 병무편에 나오는, 병무라는 것은 발가락의 군더더기 살을 가리키는데, 그 얘기를 들어서 이 편을 마무리한다. "대개 오리 다리가 짧다고 다른 것을 이어 붙이면 괴로워지는 법이고, 역 사서의 문장이 간략하다고 다른 말을 덧붙이면 오히려 누가 된다." 사문수약史文雖約, 역사서의 문장이 간략하다고, 증지반루增之反累, 덧붙이면 오히려 누가 된다. 장자의 병무편에 보면 그런 말이 있다. "오리 정강이가 짧아도 이어 붙이면 불편하고, 학의 다리가 길다고 자르면 슬퍼한다." 오리 정강이는 그 짧은 대로의 쓸모가 있는 것이다. 여기서 장자의 얘기를 느닷없이 갖다 붙인 것은 오히려 잘못된 인용이 아닌가 싶다. 장자를 인용하는 것은 굉장히 조심해야 된다. 장자는 세상사의 어떤 이치를 말해주는 데는 직설법으로 말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그렇다. 그래서 장자나 노자를 인용할 때는 전후 좌우를 많이 살펴보고 해야 된다 라고 하는 게 저의 지론이다. 길다는 것은 남는다는 것이 아니고, 짧다는 것은 모자라다는 것이 아니다. 긴 것은 긴 것대로 쓸모가 있고, 짧은 것은 짧은 것대로 쓸모가 있다. 그러니 오리 정강이가 비록 짧다고는 해도 뭔가를 이어 붙이면 그것이 우한이 되는 것이고, 학의 다리가 비록 길다 해도 그놈을 잘라놓으면 학이 슬퍼하지 않겠는가 라는 얘기이다. 장자를 읽을 때는, 노자와 장자는 다른 영역으로, 노자는 노자이고 장자는 장자인데, 장자를 인용할 때는 굉장히 조심스럽게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지나가는 게 제일 좋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세상에서 장자를 가져다가 뭘 좀 해 볼 수 있는 그런 여지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될 것 같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