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담화冊談話 | 사통史通(24) ─ 史通, 內篇 - 敍事

 

2025.04.26 δ. 사통史通(24) ─ 史通, 內篇 - 敍事

유지기, ⟪사통⟫(劉知幾, 史通)

텍스트: buymeacoffee.com/booklistalk/shitong-7

 

서사敍事 - 서사의 방법과 유의점
"예전에 공자는 "문채가 바탕보다 뛰어나면 지나치게 화려해진다"라고 말했으니, 역사에서 가장 힘써야 할 데가 분명 문장과 관련된 훈련임을 잘 알 수 있다. 오경부터 삼사에 이르기까지 그 서술은 문장만 가지고도 전달하고자 하는 사실을 모두 전달하고 그 정도를 벗어나지 않았지만, 근래의 저작은 이와 다르다. 그 서술에는 헛되이 수식을 더하고, 가볍게 채색을 일삼는다." (문승질즉사文勝質則史 ... 자오경이강自五經已降 삼사이왕三史而往 이문서사以文敘事 가득언언可得言焉 ... 혹허가연식或虛加練飾 경사조채輕事雕彩) 

자왈子曰 질승문즉야質勝文則野 문승질즉사文勝質則史 문질빈빈연후文質彬彬然後 군자君子
실질이 있어도 문식文飾을 결하면 그것은 야인野人이다. 문식만 알고 실질이 없으면 대필업자에 불과하다. 문식과 실질을 다 갖추면 빈빈彬彬히 볼 만해야 비로소 교양있는 군자라고 할 수 있다. 

彬彬, 겸비하며 빛나다. 
내용이 문장력을 눌러버리면 조잡하고, 문장력만 뛰어나고 내용이 부실하면 말장난.

 


오늘은 《사통史通》 서사敍事 마지막 부분을 보겠다.  23장 품조品藻부터가 식識, 분별하는 것에 해당한다. 서사敍事의 마지막 부분은 공자의 문장론에 관해서인데, 널리 통용이 된다. 옹야편雍也篇에 나오는 문질빈빈文質彬彬에 대해서는 어떻게 번역해야 하나 참 고민이다. 그런데 유지기의 서사敍事를 쭉 읽어 나오다가 마지막을 보니까 중국의 문장론에서 또는 서사론에서 내러티브를 쓸 때 어떻게 써야 되는가에 대해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논어만 읽을 때는 옹야편雍也篇에 들어 있는 내용이 사실 조금 뜬금없었다.  
 

지난번에 읽은 것에 이어서 보면, "옛날에 문자를 쓰고 장구가 작성되면서 사물에 비유해 감흥을 일으키는 수사법이 생겨났다." 그러니까 사물에 비유해 감흥을 일으키는데 "새나 짐승으로 현명하고 어리석음을 비유하거나 풀이나 나무를 가지고 남녀를 묘사했다." 비유법이라고 하는 게 그때부터 생겼다는 것이다. 저는 새나 짐승을 잘 모르니까 그리고 또 풀이나 나무를 잘 모르니까 묘사하기가 어렵다. 그것을 잘 모르는 사람은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중세 이후에 이르러 서술의 체재가 조금 달라졌는데, 인물을 서술할 때는 그 동류에 비유하고 사건을 서술할 때는 대부분 옛일에 비유했다." 옛날에는 시경이라든가 초사를 할 무렵에는 새나 짐승으로 현명하고 어리석음을 비유하고, 풀이나 나무를 가지고 남녀를 묘사했겠지만 나중에는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인물을 서술할 때는 그 동류에 비유하고 사건을 서술할 때는 대부분 옛일에 비유하는 게 적절치 않나 라고 생각을 해본다.  그런데 중국의 "한 나라가 천하를 차지하게 되면서 군주를 황제라고 불렀는데", 여기서 호칭의 인플레이션이 일어났다는 얘기이다.  왕을 갑자기 황제라고 부르기 시작하고, 황실 자손을 왕으로 봉해버렸다. 그러니까 급수가 하나 올라간 셈이다. 그런데 역사서를 쓰는 사람들은 조금 당황스럽겠지만 옛날에 쓰던 대로 쓰다 보니까 왕실이라고 불렀다. 이후 "남북조 시대에는 원래 성씨가 두 글자 이상이지만 한 글자만 남겨두고 나머지를 생략해 버린 경우도 있디. 북주의 만유우씨는 만유를 없애고 우 자만 남겨두었고, 사적 씨는 사를 빼고 적 자만 남겨놓았다."  

이런 일들이 있었는데, 이 모든 얘기를 한 다음에 마지막에 "예전에 공자는 문채가 바탕보다 뛰어나면 지나치게 화려해진다 라고 말했으니, 역사에서 가장 힘써야 할 데가 분명 문장과 관련된 훈련임을 잘 알 수 있다." 문채가 바탕보다 뛰어나면 지나치게 화려진다. 그런데 여기서 곧바로 문장과 관련된 훈련으로 가지는 않고, 내용과 서술을 잘 조화를 시켜야 된다는 것으로 옹야편雍也篇을 이해했는데, 그게 문장과 관련된 훈련이라고 한다면 할 말은 없다. "오경부터 삼사에 이르기까지 그 서술은 문장만 가지고도 전달하고자 하는 사실을 모두 전달하고 그 정도를 벗어나지 않았지만, 근래의 저작은 이와 다르다. 그 서술에는 헛되이 수식을 더하고, 가볍게 채색을 일삼는다. 그래서 더러 부나 송 같은 체재가 있는가 하면, 놀이하는 배우 같은 표현도 있다. 문장이 문장이 아니고 역사가 역사가 아니니, 비유하자면 저 서역의 오손에서 집을 짓는데 한나라 양식이 섞여 있고", 여기서 오손은 구자이다. 구자 공주가 궁궐을 짓고 주변에 길을 냈는데 한나라의 방식대로 했다, "백조를 조각하려다 실패하여 도리어 집오리와 비슷해졌다고나 할 것이다." 

오늘 간단하게 마무리를 하면서 문질빈빈文質彬彬을 한번 얘기해보겠다. 문승질즉사文勝質則史, 문文이 질質을, 오항녕 교수는 질質은 바탕이라고 번역했다, 그러면 사史가 된다, 사史라는 것을 지나치게 화려해진다고 번역했다. 원래 옹야雍也에서는 미야자키 이치사다 교수가 번역한 것을 보면 "대필업자나 다름없다"라고 하고 있다. 여기서 사史라고 하는 게 굉장히 경멸적인 의미로 쓰인다.  단어에 여러 함축들이 있다는 것이겠다.  

자오경이항自五經已降 삼사이왕三史而往, 오경부터 삼사에 이르기까지, 이문서사以文敘事 가득언언可得言焉, 그 서술은 문장만 가지고도 전달하고자 하는 사실을 모두 전달하고 벗어나지 않았지만, 혹허가연식或虛加練飾 경사조채輕事雕彩, 헛되이 수식을 더하고, 가볍게 채색을 일삼는다. 

자왈子曰 질승문즉야質勝文則野 문승질즉사文勝質則史 문질빈빈연후文質彬彬然後 군자君子, 미야자키 이치사다 교수가 번역한 옹야편雍也篇을 보면, "실질이 있어도 문식文飾을 결하면 그것은 야인野人이다. 문식만 알고 실질이 없으면 대필업자에 불과하다. 문식과 실질을 다 갖추면 빈빈彬彬히 볼 만해야 비로소 교양있는 군자라고 할 수 있다." 질승문즉야質勝文則野, 여기서 질質이라고 하는 것이 내용일 테고, 내용이 문文을, 문장력을 눌러버리면, 야野를 여기서는 조잡하다 라고 봐도 될 것 같다. 그다음에 문승질즉사文勝質則史, 문장력만 뛰어나고 내용이 부실하면 말장난이다. 그러니 문질빈빈文質彬彬한 후에야 군자라고 했는데, 문질빈빈이라고 하는 것은 빛날 빈彬자이다. 彬彬을 빛나고 빛나다라고만 하면 안 되고, 겸비하다는 뜻도 있으니, 문장력과 내용이 겸비되어 빛이나면 그 이후에야 군자다. 그런데 이때 군자라고 하는 것은, 알다시피 원래 군자는 귀족들을 가리키는 말인데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한 사람을 군자라고 본 것이다, 공자 때 군자의 의미가 재정의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논어에서 군자라는 말이 나오면 훌륭한 사람이라는 뜻으로 쓰인다고 보면 될 것 같다.  

일단 학學의 영역에 해당하는 서사敍事까지 오늘 마무리를 했고, 다음 주에는 품조品藻를 한번 보겠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