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담화冊談話 | 옥스퍼드 세계사 13-1 ─ 제3부 제7장. 사회 조직과 정치 조직(1)

 

2025.05.07 🎤 옥스퍼드 세계사 13-1

13강: 제3부 제7장. 사회 조직과 정치 조직(1)
일시: 2025. 5. 07. 오후 7시 30분 - 9시 30분
장소: 수원시평생학습관
강의 안내: https://learning.suwon.go.kr/lmth/01_lecture01_view.asp?idx=4158

참고자료: 이종철, ⟪중국 불경의 탄생⟫ / ⟪구마라집 평전


지난번에 지적 전통들에서 280페이지 개종 전력 부분 전까지 읽었다. 지난번에 불교는 동양 사상이 아니다 라고 했는데 일단 여기서 조심해야 되는 게 하나 있다. 동양이다 서양이다 라고 하는 개념은 19세기에 만들어진 것이다. 동양 철학, 서양 철학 말 자체가 일본에서 만들어진 것인데, 일본에서는 자기네 철학을 동양 철학이라고 중국 철학을 낮춰보는 말로 지나 철학이라고 한다. 동양이라는 개념을 집중적으로 발굴해서 사용하는 사람들이 일본이다. 그리고 동양, 서양을 구별하는 것은 건 19세기 이후로 만들어진 것이다. 불교는 동양 사상이라고 하는 분류 자체가 19세기에 시작된 분류이다. 그러니 불교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 원래 그것을 만든 사람이 어떤 생각으로 했는가가 일단 중요할 것이다. 두 번째로 기독교가 유대교 일파로 파생되어 나온 것처럼 불교는 석가모니의 독창적 창안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브라만교의 일파로 파생되어 나온 것이다. 브라만교는 인도 아리안족의 종교로 인도 아리안족은 힌두쿠시 산맥 저쪽 너머 서쪽에서 왔다. 그들이 사용한 언어가 산스크리트어인데, 산스크리트어와 고대 원그리스와 어원이 같다. 브라만교이기 때문에 석가모니가 어떤 족속이다 이런 것을 떠나서 사상의 원리로 따지면 아리안족의 사상이다.  

여기서 오늘 가지고 온 책이 《중국 불경의 탄생 ─ 인도 불경의 번역과 두 문화의 만남》으로 때 책은 되게 얇은데 어려운 책이다. 이 책을 보면 마지막에 "중국어와 산스크리트어를 대조해볼 때, 중국어가 이미지 언어(image-oriented language)의 성격이 강하다면, 산스크리트어는 개념 언어(concept-oriented language)의 성격이 강하다."[맺음말 280페이지] 라고 되어 있다. 산스크리트는 개념 언어이고, 중국어는 이미지 언어이다. 그렇기 때문에 개념 언어를 이미지 언어로 번역하는 데 굉장히 어렵다. 처음에는 불교의 공空을 무無라고 번역했다. 꽤 오랜 시간에 걸쳐서 번역어가 다듬어져서 공空으로 번역이 되었는데, 처음에 번역한 불경을 번역한 사람을 다룬 《구마라집 평전》을 읽어보는 것이 좋다. 일차적으로 서역 사람, 인도 북쪽에 살던 사람이 중국으로 번역하고, 이것을 본받은 사람이 현장 법사, 현장 법사는 말하자면 번역에 관한 2세대이다. 이 과정에서 수없이 많은 경전들이 또는 용어들이 바뀐다. 가령 독일어로 Begriff를 우리 말로 번역하면 개념이다. 이 개념이라는 말을 한자로 쓰면 槪念인데, 개槪자가 대강, 개요槪要, 두루두루라고 할 때의 개槪이다. 그러니까 한자의 개념이라고 하는 것으로 번역을 하면, Begriff라고 하는 단어를 개념으로 번역하는 것이 마땅치 않다. 독일 사람들은 Begriff라는 단어를 그렇게 이해하지 않는다. begriffen이라는 단어가 있는데 꽉 쥔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begriffen 한다는 것은 두루두루가 아니라 본질만 꽉 잡는 것이다.  사실은 한자어 개념과 도이치어 Begriff는 서로 상응하지 않는다. 이처럼 중간에서 우리는 생각을 많이 해야 된다. 이런 과정들을 거치는 것이다. 앞으로는 어떤 사상이라고 할 때 동양 철학이냐 서양 철학이냐 하는 것을 생각하지 말고 그 사상이 생겨나게 된 생태 환경 그리고 그 속에서 사람들이 뭔가를 어떻게 만들어냈는가 그리고 그것이 어떤 경로를 거쳐서 여기까지 왔는가 그것을 추적해 나가는 것이 사상사를 공부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하다. 《옥스퍼드 세계사》 안에는 사상사도 들어 있기 때문에 개종 전략 같은 경우는 사상사에서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이다.  

280페이지를 보자. "첫째 전략은 같은 시기에 육로와 해로를 통해 확보된 상인 네트워크를 활용하는 것이었다." "둘째 전략은 강력한 정치 당국과 동맹을 맺고 경우에 따라 군사 정복에 관여하는 것이었다." "셋째 전략은 대개 규율 잡힌 교단에 속한 비범한 개인들의 경건함의 모범을 보이거나 직접 포교하는 방법으로 개종을 유도하는 것이었다." 그러면 세 가지 방법이다. 그다음에 281페이지를 보면 "기독교, 이슬람교, 불교 모두 자신들의 핵심 가치관과 지역별 문화를 조화시키려는 장기 전략의 일환으로 예비 개종자의 문화에 맞추어 종교적 개념과 관행을 조정했다." 굉장히 중요한 문장이다. 기독교, 이슬람교 불교 모두 자신들의 핵심 가치관이 있다. 종교나 사상은 그게 어디서 생겨난 사상이라고 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 핵심 가치관이라는 것은 전 세계 인류적으로 다 보편적이다. 그 가치관이 있는데 그것이 전파된 지역의 문화와 조화시키는 것이다.  가지 노부유끼가 쓴 《유교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있다. 그 책을 보면 중국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현세의 삶에서 즐거움을 누리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엄숙한 책이라고 여겨지는 《논어》의 첫 문장이 "배우고 때로 익히면 기쁘지 아니한가, 벗이 있어서 멀리서 찾아오면 즐겁지 아니한가"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불교라고 하는 종교는 아주 엄격한 히말라야 산속에서 석가모니에 의해서 탄생했다. 그런데 서역을 거쳐서 중국으로 와서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만 외우면 복을 받을 수 있는 종교가 되었다. 그것이 대승불교이다. 그러면 이 종교는 원래 어떤 것이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지역별 문화와 핵심 가치관이 조화를 시키려는 어떤 것의 산물이다. 대승불교는 동양의 종교이고 석가모니의 종교는 서양의 종교인 것이 아니고 모두 불교인 것이며, 인도에서 전개된 불교가 있고 중국에서 전개된 불교가 있는 것이다. 한국에는 호국불교의 전통 있고, 일본에도 종말론적 불교, 즉 미륵사상이 있다. 한국 불교와 관련해서는 정도전이 쓴 《불씨잡변》이 있는데 꼭 읽어봐야 한다. 조선을 건국한 성리학 주의자들이 불교를 어떻게 때릴 것인가를 굉장히 깊이 궁리를 했는데, 불교가 고려의 건국 이념이었기 때문에 그렇다. 이데올로기 싸움이 그 와중에 나온 것이다. 그 당시에 정도전이라든가 정몽주라든가 이런 사람들이 성리학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에 대한, 그러니까 14세기 한반도의 성리학의 이해가 어느 수준이었는가를 주희와 비교해 볼 때 볼 수 있는 아주 좋은 문헌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것을 읽어보는 게 사실 한국 철학이다. 

"지역별 문화를 조화시키려는 장기 전략의 일환으로 예비 개종자의 문화에 맞추어 종교적 개념과 관행을 조정했다." 이렇게 한 순간 종교라는 것은 특정한 지역의 정체성, 발상지의 정체성이 모두 다 소멸된다. 그래서 이제 동양의 종교, 서양의 종교라는 것은 없다. 천주교라고 하는 말은 중국에 왔던 마테오 리치가 만든 말인데, 하늘의 주인이라는 천주天主라는 말을 쓴 것이다. 그렇다 해도 중국 사람들은 그 천주天主라고 하는 자가 인격적인 존재라고 하는 것을 끝내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동아시아 삼국 중에서 인격신으로서의 하느님 개념을 가장 잘 받아들이는 사람이 한국 사람들이다. 한국 사람들은 단군신화처럼 인격신으로서의 초월적인 신에 대한 개념이 있으나 일본과 중국은 없다. 중국은 하늘의 이치로서의 초월적인 것은 있지만 인격신은 없다. 주나라 이전까지는 있었는데 그게 제거가 되면서 중국은 이치와 법칙으로서의 하늘이라는 개념이 자리를 잡는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이 나에게 복을 준다는 개념이 없다. 그래서 중국 사람들은 도를 닦는다고 하는 것이 초월적인 도를 닦는 것이 아니라 양생술이 발전한다.  그게 전형적인 중국 종교인 도교이다. 그러니까 중국의 민간 종교는 도교이다. 이 모든 얘기는 종교라고 하는 것은 발상지를 가지고서는 서양이다 동양이다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전파되는 과정에서 변형되고 그다음에 최종 도착지에서도 그 도착지의 문화에 맞추어 개념과 관행이 조정된다. 

그다음에 "세 종교 모두 중앙 유라시아를 가로질러 극동까지 뻗은 육상 교역망인 실크로드를 따라 전파되었다." 첫째로 실크로드라고 하는 것은 종교를 전파하는 망으로 굉장히 중요하다. 실크로드 그러면 동서양의 무역 교역만 생각하는데 사실 그렇게 많은 교역이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돌아가신 정수일 교수님이 쓰신 《실크로드 문명기행》 이런 책을 읽어보면 교역 얘기는 별로 없다. "네스토리우스파가 기독교 교파 중 처음으로 이 루트를 따라 확산되었다. 불교도들은 특히 동아시아에서 더 큰 성공을 거두었고, 훗날 무슬림은 중앙아시아에서 교세를 넓혔다." 그다음에 넘겨보면 상인 네트워크를 활용했다는 것이다. 283페이지를 보면 "중국 서부에서 교역로를 따라 정착한 외국인 무슬림 상인들은 현지 여성과 결혼하고 부모가 원치 않는 아이를 입양해 무슬림으로 길러내면서 점차 공동체를 키워갔다." 이시다 미키노스케가 쓴 《장안의 봄》을 보면 장안에는 서역인 술집이 많았다는데 그 술집에서 서빙하는 여성들을 갖다 호희胡姬라고 불렀다고 한다. 호胡가 오랑캐 호자인데 당나라 때는 호胡를 쓰면 이란 여성을 말했다. 이란 여성이면 무슬림이다. 그다음에 보면 "몽골이 동부터 서까지 아시아를 정복하고 13세기 '팍스 몽골리카'를 확립하자", 팍스 몽골리카가 중요한 부분이다. 13세기 팍스 몽골리카가 바로 '세계사의 탄생'이다. 유라시아 지역에서 세계사가 13세기에 생긴다.  물론 그 밑에 지배하고 있는 사람의 수는 그렇게 많지 않지만 세계사의 탄생, 김호동 교수가 쓴 《몽골 제국과 세계사의 탄생》을 한번 읽어보면 좋다. 몽골 제국이 13세기에 끼친 영향, "몽골족의 정복을 계기로 중국에 로마 가톨릭의 선교사를 파견할 길도 열렸다." 이렇게 오래됐는데도 불구하고 중국이 가톨릭 신앙 가진 사람이 그렇게 많은 않았다는 것은 아무리 현지화를 하려고 노력을 해도 잘 안 되었다는 얘기이다. 안 맞는 게 있는 것이다. 

그다음에 285페이지를 보면 "통치자를 개종시키는 것", 이게 두 번째 전략이었다. 대표적인 것이 기독교이다. 기독교는 원래 지중해 지역의 종교이다. 지중해는 서양도 아니고 동양도 아니다. 기독교를 서양의 종교라고 말하는 건 어이가 없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로마 가톨릭을 생각하거나 루터파 교회를 생각하거나 그런 것이지 기독교는 서양의 종교가 아니다. 지금 기독교의 성장 속도가 가장 늘어나고 있는 것이 아프리카이다. 세계 최대의 선교 센터가 아프리카에 있다. 아프리카의 기독교라고 하는 것은 다른 종류의 기독교인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기독교와는 다른 구원과 해방의 종교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래서 "그리스인 형제 키릴로스와 메토디오스로, 860년대에 발칸반도에서 슬라브족에게 기독교를 성공적으로 선교한 데 이어", 키릴로스라는 사람이 러시아에서 사용하는 키릴 문자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다음에 "블라디미르는 동방 정교회를 선택했는데", 그다음에 중국에서 불교가 된 것도 그러하다. 그다음에 286페이지를 보면 "수도회는 세계 종교 전파의 또 다른 수단이었다." 그다음 문단을 보면 "불교의 사찰은 중국에서 상당히 영향력 있는(그리고 평화로운) 장소였다. 기도하고 명상하고 학습하는 장소로서 사찰은 중국과 인도 사이의 문화와 언어의 차이를 극복하는 데 이바지했다. 언어학에 능숙한 반인도인 승려 쿠마라지바", 이 사람이 바로 《구마라집 평전》에서 아까 소개한 사람이다.  이 평전을 읽어보면 인도 불교와 중국 불교가 어떻게 부딪히고 만났는가 뿐만 아니라, 인도 불교는 우리가 이른바 서양 형이상학이라고 하는 것에 원천적인 부분들을 갖고 있다. 초창기 인도 불교에서 나오는 얘기들은 서양 형이상학과 크게 다르지 않다.  《중국 불경의 탄생》을 보면 이른바 서양 형이상학과 초창기 인도 불교 그리고 그것이 중국 불경으로 어떻게 습합되었는가 하는 것들을 공부하기에 좋다. 

그다음에 "쿠마라지바는 후진의 수도 장안에서 수백 명의 승려를 감독해 가며 수백 권의 불교 경전을 한문으로 번역"했고, 이 사람의 생몰연대가 344년에서 413년인데, 200년 후에 현장이 되풀이했고, 627년에 인도를 향해 출발을 했다. 287페이지를 보면 "현장은 산스크리트를 한문으로 옮기면서 언어적 정확성만큼이나 문화적 수용에도 신경을 썼다. 예컨대 다르마와 보리뿐 아니라 요가까지 익숙한 한자 도道로 번역했다." 다르마dharma라고 하는 단어가 오늘날에 법法으로 번역되는데, 처음에는 요가도 보리도 다 도道로 번역이 되었다.  그리고 "도교에 대한 이런 호소와 유교에 대한 호소사이에서 균형을 잡았다. 예컨대 도덕을 뜻하는 산스크리트 단어의 번역어로 한자 효孝를 선택했다." 그러면 한자 효孝를 선택한 순간 이미 산스크리트가 가지고 있는 어떤 의미 맥락들은 빠져나가 버리는 것이다. 그다음에 "기독교의 수도회들도 포교 과정에서 결정적 역할을 했다. 게르만 사회에 대한 선교를 개척한 성 보니파키우스는 주교인 동시에 수도자였다." 그러니까 게르만 사회를 선교하면서 기독교가 서양 종교가 된 것이다. 그전에는 동양의 종교, 지중해의 종교였다고 말을 하는 것이 옳다. 원래 카롤루스 대제라든가 이런 곳을 선교할 때 왜 그 사람들이 기독교를 받아들였는가. 원래 가난한 사람들이 기독교를 받아들였다. 원래는 아리우스파 기독교가 원래는 게르만 사회로 들어갔다. 아리우스파 기독교는 예수를 하느님의 아들로 보지 않는다. 그래서 훨씬 더 합리적으로 받아들이기가 쉬운 것이다. 나중에 로마 가톨릭이 가면서 아타나시우스파인 칼케돈 신조를 가진 사람이 들어가고 그러면서 개종 과정이 있었다. 로마 가톨릭은 간단하게 말하면 정치 권력을 정당화해 주는 데 상당한 역할을 했다. 그러니까 당연히 중세 기독교는 권력과 유착이 된 것이고, 인류 역사상 정치 권력과 종교 권력 사이의 관계를 가장 잘 다루는 집단이 로마 가톨릭이다.  

289페이지를 보면 "무슬림과 기독교도 지식인들 사이에서 개화한 지적 르네상스를 살펴보기에 앞서 해야 할 중요한 일이 있다. 평범한 서민들의 신앙심이 얼마나 깊었는지 논하는 것이다." 평범한 서민들의 신앙심이 중요하다. "통치자들은 보통 세심한 신앙 교육을 받았지만, 민중의 개종은 금방 대충대충 처리하곤 했다. 민중 개개인을 세심하게 교육할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민중의 깊은 내면까지 기독교 하는 데는 몇 세대가 걸렸다." 다르게 말하면 사람들 모두를 다 기독교도로 만든다 라고 하는 게 그렇게 간단치 않았고, 모든 사람이 오리지널 신앙을 갖는다고 하는 것 자체도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는 얘기이다. 개종 전략이라고 하는 것을 보면서 이걸 생각해야 된다. 종교라고 하는 것과 사상이라고 하는 것은 발상지를 따지는 것도 무의미하고, 그다음에 전파의 경로도 따져봐야 되고, 최종적으로 어떻게 되었는가, 그리고 끝없이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사상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 원적지를 따져 묻는 것은 어이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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