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담화冊談話 | 중국사학명저中國史學名著(5) ─ 春秋

 

2025.08.09 δ. 중국사학명저中國史學名著(5) ─ 春秋

첸무, ⟪중국사학명저강의⟫(錢穆, 中國史學名著)
텍스트: buymeacoffee.com/booklistalk/ChienMu-03

 

─  춘추春秋의 서술방식
"사실을 좇아 문장을 짓는 것이 춘추의 가르침이다." (속사비사屬辭比事 춘추교야春秋教也)

맹자孟子. "그 문장은 곧 사관이 남긴 것이었다." (기문즉사基文則史)
  ➞ 춘추는 노나라의 역사에 의거했고 사실을 기록한 것

그렇다면, 무엇이 춘추를 독자적 역사책으로 만들어주는가. 
대의大義, 즉 도적적 감성. 
"공자가 춘추를 짓자 난신적자들이 두려워했다." (공자작춘추孔子作春秋 이난신적자구而亂臣賊子懼)
 
그러므로 춘추 읽기의 어려움은 이 대의를 어떻게 찾아낼 것인가에 있게 된다.
'칭찬과 비난'(포폄褒貶)을 식별하는 것 
서법書法 (서술방식)으로부터 범례凡例를 추출하기
필법筆法
미언대의微言大義

살殺 / 시弑 / 훙薨
침侵 / 벌伐 / 입入 / 취取


전목 선생의 중국사학명저 강의 오늘 춘추春秋에 관한 부분을 마저 읽겠다. 전목 선생에 따르면 춘추春秋의 서술 방식은 "사실을 좇아 문장을 짓는 것이 춘추의 가르침이다"라고 되어 있다. 유지기의 사통史通에서도 이것이 나왔다. 속사비사屬辭比事 춘추교야春秋教也, "사실을 좇아 문장을 짓는다"라고 번역이 되어 있는데, 유지기를 읽을 때는 속사屬辭라고 하는 것에서 사辭라는 게 서술이다. 서술을 잘 찾아보면서 그것을 사실fact와 비교해 보는 것, 어떤 서술이 있을 때 그 서술이 사실과 대조해 보았을 때, 일어난 일과 대조해 보았을 때, 과연 그것이 잘 들어맞는 것인가를 잘 찾아보라는 것이 춘추의 가르침이라는 얘기이겠다. 이게 바로 춘추의 서술 방식이라고 설명을 하고, 그다음에 지난번에도 얘기했던 것처럼 노나라에는 이미 역사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게 바로 노춘추이겠다. 그러니까 노춘추가 있었고 그다음에 공자의 춘추는, 춘추라는 말 자체가 공자가 새롭게 발명한 용어는 아니다. 노나라의 역사책으로 이미 춘추가 있었는데, 그 춘추를 공자가 다시 정리 정도는 한 것이다. 거기에다가 공자는 말하자면 평가를 집어넣은 것이다. 그러면 춘추라고 하는 게 단순히 기왕에 있던 역사책을 공자가 rewriting한 것에 불과하다 하면 굳이 그게 대단한 것인가라는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물어볼 수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춘추를 독자적인 역사책으로 만들어 주는가. 지금 독자적인 역사책이라고 말을 했는데, 독자적 역사책이라고 하는 게 오늘날 우리가 역사책에서 이해하는 그런 바와는 다른 의미를 갖는다.   

공자의 춘추라고 하는 것은 지난주에 얘기했던 것처럼 공자는 춘추로써 평가를 받을 것이라고 말을 했다. 그러면 춘추라는 게 어떻게 생각을 했다는 말인가. "그 의리는 내가 외람되게 취한 것이다"라고 얘기를 하는 것이고, "나를 이해하는 것도 오직 춘추일 것이고 나를 벌하는 것도 춘추일 것이다"라고 말을 했다. 그러니까 여기서 춘추라고 하는 것이, 기존의 춘추는 정말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책이었다. 사실을 대조해서 있는 그대로를 기록한다 라는 의미에서의 역사 책이었는데, 공자는 여기다가 대의라고 하는 것, 전목 선생은 이것을 도덕적 각성이라고 얘기했는데, 즉 도덕적 각성을 집어넣었다. 그러면 이것은 역사책이 아니게 된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이해하는 그런 역사 책은 아니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맹자가 말하기를 "공자가 춘추를 짓자 난신적자들이 두려워하였다."(공자작춘추孔子作春秋 이난신적자구而亂臣賊子懼) 그러면 이제 이 지점으로 오게 되면 공자가 지은 춘추라고 하는 것은 역사책이 아니게 된다. 어떻게 보면 도덕책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공자의 춘추를 읽는 어려운 점은 어디 있는가. 도대체 어떻게 공자가 이 대의를 서술했는가. 도대체 무엇 때문에, 무엇을 근거로 해서 얘네들은 나쁜 놈, 얘네들은 선한 놈 이렇게 얘기를 했는가. 이 대의를 어떻게 찾아낼 것인가, 다시 말해서 칭찬과 비난을 식별하는 것, 이게 포폄褒貶이다. 이게 바로 공자의 춘추 읽기의 어려움이 된다는 얘기이다. 그러면 그것을 춘추필법春秋筆法)이라고 하거나 춘추 서법春秋書法이라고 하는 것을 우리가 익혀야 된다. 즉 서술 방식, 춘추의 서술 방식이 오늘 하는 얘기의 핵심인데, 춘추필법은 무엇이고 춘추서법은 도대체 무엇인가, 그리고 그 안에 숨어 있는 미언대의微言大義라는 것이 있다. 공자가 지나가는 것처럼 말을 했지만 사실은 대의가 숨어 있다. 여기에 바로 춘추 읽기에 어려움이 있게 된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러면 결국엔 단어의 문제가 된다. 어떤 용어를 이용해서 그 사태를 서술했는가. 그러니까 사실과 대조해서 그것에다가 술어를 귀속시키는 것이다. 속사비사屬辭比事는 사실을 견주어 보면서, happening이 아니라 일어난 사실인 event, 어떤 사건들을 이렇게 견주어 보면서 거기다가 어떤 언어를 귀속시키는 것이라고 본다. 어떤 사실을 그 사건들에 이렇게 견주어보고 거기에 포폄의 언어를 귀속시키는 것이 춘추가 하는 일이다. 

예를 들면 죽인다 라고 할 때 살殺이다. 그런데 가령 신하가 왕을 죽였다고 하면 죽어 마땅한 놈이라는 뜻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신하가 왕을 시해했다고 하면 죽어 마땅한 사람이 아닌데 죽였다는 얘기가 된다. 시弑라는 단어를 쓰면 죽은 자가 문제가 아니라 죽인 자가 나쁜 놈이 되는 것이다. 이 단어 하나로 바뀌는 것이다. 그다음에 훙薨이라는 단어를 쓰면 굉장히 심각하게 표현을 하는 것이고, 그런 식으로 표현을 한다고 볼 수 있겠다. 그 사건은 여전히 일어난 사건은 그대로인데, 그것에 대해서 우리는 어떤 단어로서 그것을 서술할 것인가, 속사屬辭, 어떤 서술어를 그 사건에 귀속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가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가령 침侵이라는 단어가 있고 벌伐이라는 단어가 있고 입入이라는 단어가 있고 취取라는 단어가 있는데 이게 다 어딘가를 들어가는 것이다. 침侵이라고 하는 것은 침범한다고 하고, 벌伐은 아주 명백하게 사람 인人변에다가 창 과戈자를 썼다. 이렇게 생긴 게 고대 중국에서는 가장 오래된 무기의 형태이다. 이게 들어가 있는 글자가 굉장히 많다. 보폭할 때의 보步와 창 과戈를 쓰면 무관할 때의 무武가 된다. 갑골문에 보면 임금 왕王은 창 과戈가 사용되고 있는데, 무기를 통제하는 힘을 가진 사람이 사람이 왕이라는 뜻이다. 창 과戈자가 의외로 많은 경우에 쓰이는데, 가장 두드러진 게 벌伐이다. 람 인人변에다가 창 과戈자를 썼으니 사람을 죽이는 것이다. 사람을 창으로 도륙을 내는 것을 가리킬 때 사용하는 단어이다. 그다음에 입入은 들어간다는 것이다. 그다음에 취取라는 것은 취했다는 것으로, 가서 자기 것으로 가지게 되었다. 이 취取도 말하자면 침입이라는 단어에 관련해서 쓸 수 있는 단어들이다. 예를 들어서 지금 이렇게 말하는 것인데 춘추의 서술을 하면서 공자는 이런 단어들을 민감하게 골랐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공자라는 사람은 춘추에다가 어떤 방식으로 포폄을 담을 것인가라고 생각을 했을 때 아주 민감하게 단어를 골라 쓰는 방식으로 포폄을 담았다고 우리는 이해할 수 있다. 여기까지가 이제 전목 선생의 얘기이다. 

전목 선생의 책은 사학명저강의니까 역사책에 대해서만 설명을 하고 여기서 그쳤다. 제가 예전에 《인문고전강의》를 할 때 맨 마지막이 《논어》였다. 그때 공자가 춘추를 중요하게 여겼다라는 얘기를 강의에서 한 적이 있다. 그때 이후로도 계속 그렇고 제가 가지고 있는 지속적으로 가지고 있는 관심사 중에 하나가, 저는 역사철학 연구자니까, 공자의 춘추는 역사철학 텍스트라고 생각을 한다. 서구적인 의미에서의 역사철학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역사를 움직이는 거대한 법칙이 있고 그 법칙이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 해 볼 수 없는 우주의 이치를 반영하고 있다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고, 아니면 한 사람 한 사람이 뜻을 모아서 어떤 행위를 하는데, 그 행위가 이어져서 연쇄고리를 만들어내고, 그 연쇄고리가 다시금 그 사람의 행위에 대해서 제약을 가하게 된다. 그러면 뜻하지 않은 일들도 연결이 된다. 인간사의 한 개인의 삶에 흔적이라고 하는 것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네, 지내놓고 보니까 그게 그거였네라고 하는, 후일담밖에 할 수 없는, 결과론적으로 얘기할 수밖에 없는 그런 사건들이 80%가 넘는 것 같다. 우연한 사건들이 계속 이어져 온다. 이렇게 각각의 개인이 그 누적된 연쇄 속에서 삶을 이어오는데 이런 개인들이 하나의 공동체에 모여서 살면서, 역사라고 하는 것은 개인 차원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옥스퍼드 세계사》 얘기할 때 말한 던바의 수(Dunbar number), 친족 범위를 넘어서는 숫자, 던바의 수를 넘어가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우연을 극복하고 싶어서 그런지 함께 뜻을 모아서 뭔가를 시도하고 그 방향을 향해 간다. 여럿이 모여서 이렇게 하다 보면 마치 모두가 의도했던 뜻을 함께 모은 것처럼 여겨지는 그런 순간들이 있다. 그런 것들을 우리는 역사라고 한다. 그러면 인류의 역사는 인간사가 모여서 인류의 역사가 이루어지는데 그러면 어떤 법칙이 있는가를 따져보고 싶은 사람들이 역사 철학자가 된다. 가령 아우구스티누스 같은 경우는 신의 역사로 인간의 역사라는 건 무의미하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아주 독특하게, 말하자면 역사철학의 창시자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니까 아우구스티누스의 신학 속에서 인간사와 인간 공동체들이 어떻게 연결이 되는가, 그런 것은 세속사와 구원사 이런 얘기가 되겠다. 그런데 저는 어쨌든 역사철학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공자의 춘추는 하나의 역사 철학 책이라고 생각을 한다. 역사철학 책이라고 하는 것은 앞서 말한 것처럼 포폄을 중심으로 한다는 말이다. 공자가 가진 포폄을 기준으로 해서 역사를 서술했다. 말로서 그것을 제시한다. 그러니까 공자의 춘추에 의해서 중국은 그때 이후로 계속 역사책이라고 하는 것이 히스토리컬 팩트를 단순히 기록하는 것만이 아닌 일종의 도덕 철학의 역할을 하게 된다고 볼 수 있겠다. 그래서 공자는 나를 이해하고 벌하는 것은 춘추에 의거한다고 말을 했는데, 도대체 왜 이렇게 역사책에 매달렸을까를 생각해 보겠다는 것이다. 

공자는 천天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지만 역사 속에서 평가받는 인간, 다시 말해서 그에 대한 평가를,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는 게 군자가 아닌가 라고 얘기를 하기는 했다 해도, 하늘이 나를 알아줄 것이다 라기보다는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는 게 군자가 아닌가 그 말은, 아니겠는가라는 말은 뒤집어서 말해보면 남이 좀 나를 알아줬으면 좋겠다 라는 아주 강력한 열망의 표현일 수도 있다. 다시 말해서 공자는 사람에게 평가를 받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라고 생각을 했을 것이다 라는 게 저의 판단이다. 그렇다면 인간사라고 하는 것, 다시 말해서 인문주의적 전통에 의해서 평가를 받고 싶어서 했던 것이다. 여기까지 얘기를 하고 나면, 그렇다면 공자는 이렇게 인문주의적 전통에 의해서 평가를 받는다. 사람들에 의해서 평가를 받는다 라는 것이 공자에게 있어서 아주 강력한 신념이었다 한다면 도대체 그 신념은 무엇에 근거해서 그런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일까를 한번 물어볼 수가 있다. 이제 이것은 사상사의 영역으로 들어간다. 정목 선생은 얘기하지 않고 있지만 저는 이 부분에 대해서 좀 생각을 해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래서 공자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사람은 누구인가. 바로 주공이다. 그래서 공자는 꿈에 주공을 본 지가 꽤 오래되었는데 걱정이라는 얘기를 한다. 공자의 술이편에 "내가 너무 쇠약해졌구나, 꿈에서 주공을 다시 뵙지 못한 지도 오래되었다"(심의오쇠야甚矣吾衰也! 구의오불복몽견주공久矣吾不復夢見周公)라고 나온다. 그러니까 공자가 늘 마음속에 간직한 하나의 사상적 스승은 주공이다. 그러면 주공으로부터 공자에게 전수된 것이 무엇인가. 물론 그 시대가 굉장히 나중이니까 주공이 공자를 만나서 전수한 건 아니다. 다시 말해서 공자가 주궁으로부터 이어받은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여기서 우리가 탐구해야 되는 것이 두 가지가 생겨난다. 먼저 주공이 남겨놓은 업적이 무엇인가. 즉 주공이 남기고자 했던 건 앞에 나온 것처럼 상서尙書 서주서西周書이다. 거기에 있는 내용도 있고, 그다음에 그중에서 공자는 무엇을 취사선택했는가, 이 두 가지를 초점으로 둘 수가 있겠다. 그래서 이런저런 사상사 책들을 이렇게 저렇게 읽어보면, 이것은 거자오광의 《중국사상사》를 나중에 포스타입에서 얘기할 때 할 얘기지만 춘추가 나왔기 때문에 이 얘기를 다시 한 번 해볼 필요가 있다. 주공이 무엇을 세팅했는가. 주공이 세팅한 인문주의적 전통은 무엇인가. 주공과 공자는 굉장히 강력한 사상적 친화성이 있다. 그러면 주공이 무엇을 세웠는가가 중요한 부분이다. 전목 선생의 논의를 넘어가는 것인데 기왕에 말이 나왔으니까, 공자가 왜 이렇게 춘추를 신경을 썼는가를 이해하려면 주공의 업적을 생각해야 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있다. 

첫째 공자의 사상을 먼저 좀 보면 공자의 유가는 춘추시대에 나온 그리고 그에 이어서 전국시대에 나온 그런 사상들과는 다르게 아주 독특한 게 하나 있다. 공자의 유가가 내놓은 사상 내용은 다른 것들과 아주 확연하게 구별이 되는데, 공자는 어진 정치를 펼쳐라 그리고 백성을 사랑하라 라고 되어 있다. 그리고 맹자에 나오는 것인데, 맹자를 보면 맹자의 주적은 묵적墨翟과 양주楊朱이다. 묵적과 양주의 학설이 천하에 가득 차니 짜증난다는 얘기가 많다. 묵적은 묵자인데, 묵자의 사상을 이렇게 보면 약간 주술적인 분위기가 나는 신앙 분위기가 있다. 그게 사실은 유가하고는 굉장히 철천지원수이다. 귀신을 멀리하라 라는 공자님의 가르침이다. 유가는 제사와 장례 이런 것들을 엄청 깔끔하게 한다. 《세계를 향한 의지》에서 셰익스피어 시대의 프로테스탄트처럼 장례를 치른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유가가 제사를 중요하게 여긴다 라고 하는 것이 죽은 사람 공경하고 그래서 미신을 믿는 것처럼 생각하기 쉬운데 그건 아니다. 오해된 부분이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상의 삶이 종교나 귀신세계하고 가깝게 하는 것을 굉장히 금기시했다. 그래서 절지천통絕地天通, 땅과 하늘이 이어지는 것을 끊는 것을 공자가 굉장히 중요하게 여겼는데, 이게 바로 주공에 의해서 시작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주공의 업적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이것이다. 주공이 나라의 기틀을 세웠다고 하는 주나라에서는, 주나라 이전에 상나라가 있고 그 연결고리가 있기는 있다. 역사 책에 보면 그 연결고리가 어떻게 해서 변질되고 하는 것들은 역사에 관한 얘기인데, 대표적으로 사상사적으로 보면 주나라 때는 제帝가 숭배가 되지 않는다. 상나라 때는 제帝에 대한 숭배가 엄청나다. 그런데 그 제帝라고 하는 단어는 인격신을 가리킨다. 상나라에서는 왕이 그 인격신으로서의 제帝에 신성을 갖추고 있다. 그래서 왕이 신성한 존재로 숭배가 된다. 그러면 사람이 혁명革命을 할 수 없다. 명命을 바꿀 수가 없다. 그런데 천명이 바뀐다라는 사상은 상서尙書에도 나온다. 전목 선생도 그 얘기를 했는데 주공이 확립한 것이다. 주나라에 들어오면서부터는 제帝에 대한 숭배가 완전히 끊어지고 천天이라고 하는 단어로 바뀌고, 인격신적인 성격이 완전히 빠져버리는, 천명이라고 하는 것을 하늘의 이치 정도로 모호한 개념으로 바뀐다. 그러니까 첫째는 주나라에서는 신성하고도 신비한 존재로서의 황제 그리고 하늘의 상제 개념들이 완전히 제거가 된다. 그리고 천이라고 하는 것, 천명이라고 하는 것, 이런 추상적이고 도덕적인 그런 원리로 바뀐다. 그리고 왕도 하늘의 아들, 천자天子라고 불리게 되는 것이다. 그런 천명 개념이 주공에서 성립이 되었고, 그것을 이제 공자가 이어받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다음에 두 번째로는 천명이 어떻게 바뀌느냐 천명이 바뀌는 게 혁명이다. 어떤 경우에 천명이 바뀌는가. 백성을 사랑하고 덕으로서 다스리고 부지런하게 일을 하고 그렇게 해야 천명의 보살핌을 받는데, 그렇게 하지 않고 개판을 치면 명이 바뀐다. 그래서 그게 바로 혁명이 된다라고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이게 바로 이제 주공이 말하는 천자와 천명 그리고 혁명 사상인데 이것을 공자가 이어받았다고 우리는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인간 사회의 도덕은 어떻게 되는가. 추기급인推己及人이라고 하는데, 나에 근거해서 헤아려 보고 다른 사람에게 미친다. 다시 말해서 역지사지易地思之이다. 이것이 바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따져 묻는 인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것을 구체적으로 하면 자기가 하고 싶지 않은 말을 남에게 베풀지 말라라는 기소불욕己所不欲 물시어인勿施於人이다. 그러니까 기소불욕己所不欲 물시어인勿施於人이라고 하는 원칙만 있으면 구체적인 행위 규범을 만들어낼 필요가 없다. 살인하지 말아라, 도둑질하지 말아라, 사람 패지 말아라 라는 말을 할 게 없는 것이다. 자기가 하고 싶지 않은 바를, 자기가 원하지 않는 바를 다른 사람에게 베풀지 말라라는 얘기가 훨씬 더 보편적이다. 그렇게 해서 다른 사람을 자기와 동등하게 대하는 것이 바로 공자의 인 사상의 핵심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주공의 생각은 상나라에서 가지고 있던 상제 숭배를 천명으로 바꾸고 그다음에 천명은 혁革할 수 있다는 것이 주공의 생각이었는데, 그 생각을 구체적인 인간사회에다 적용을 시키면 기소불욕己所不欲 물시어인勿施於人이 되는 것이다. 이게 바로 공자가 주공의 사상을 이어받은 지점이 아닌가, 절지천통絕地天通, 땅과 하늘이 연결되는 것을 끊는 것, 그것이 우주론적인 배경이라면 그런 세계관을 바탕으로 해서 인간사의 도덕을 전했고 그다음에 그렇게 전한 인간사의 도덕을 공자는 구체적으로 어디서 평가를 받는가, 역사의 지평에서 평가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 라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자기가 춘추에 의해서 평가를 받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을 했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그다음에 하나가 남는다. 공자가 춘추를 왜 이렇게 중요하게 여겼는가 얘기는 지금 이렇게 해명을 했고 하나가 남는다. 공자는 절지천통絕地天通, 땅과 하늘의 연결고리를 끊었다. 그런데 점 보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주역에 대해서 굉장히 신경을 많이 썼다고 했다. 사마천의 《사기》 공자세가孔子世家에서 위편삼절韋編三絶을 얘기한다. 공자는 만년에 역경易經을 좋아하여 역경을 읽느라 죽간의 끈이 세 번이나 끊어졌다고 말한다. 가아수년假我數年 약시若是 아어역즉빈빈의我於易則彬彬矣. 나에게 몇 년을 빌려준다면 만약 그렇다면 역경에 대해서도 아주 열심히 완전히 꿰뚫어 앓게 될 것이다 라고 얘기를 한다. 공자가 나이가 들어서 역경에 흥미를 느꼈다 라고 얘기를 하는 것인데 이건 좀 이상하다. 춘추가 나를 평가하고 춘추가 나를 벌을 줄 것이다. 어쨌든 나의 업적은 춘추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인간사의 역사의 지평에서 나는 평가를 받겠다. 하늘의 이치는 중요하지 않고 인간사의 지평에서 평가를 받겠다고 말한 사람이 도대체 왜,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기로는 역경은 점술책인데, 이것에 대해서 그렇게까지 신경을 썼는가. 이것은 의문의 여지가 있지 않는가 싶다. 몇 가지 간단한 얘기만 좀 해보면 우리가 주역周易이라고 불리는 부르는 책이 있다. 주역周易은 주나라 역경易經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지난번에 했던 얘기에 공자 이전에 이미 춘추가 있었다 라고 하는 것, 9페이지에 보면 "한기가 노나라에 초빙이 되어 역상과 춘추를 보고 이르기를 주나라의 예가 모두 노나라에 있다고 하였다(한기빙노韓起聘魯 견역상여춘추見易象與春秋 왈曰: 주예진재노의周禮盡在魯矣)고 나온다. 여기서 역상易象이라는 말이 나온다. 역경은 무엇인고 역상은 무엇인가. 과연 역경 또는 역상 또는 주역은 점 보는 책인가를 물어볼 수 있다. 점 보는 책이 아니다 라고 하면 공자는 점 보는 일에 신경을 안 썼다는 얘기가 된다. 공자가 말한 역경이라고 하는 것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점 보는 책이 아니라고 해버리면 역시 공자는 인간사의 지평에서 평가를 받고자 하는구나 그리고 도덕철학의 역사를 새로 연 사람이구나 라고 말할 수가 있게 된다. 이것에 대해서 아주 간단하게만 말을 하면 역경易經, 주역周易, 역상易象 이 세 가지 용어가 있는데, 우선 역경이라고 하는 것은 주나라 문왕, 그러니까 주나라의 말하자면 건국 이념을 세웠다고 하는 것이다. 고공단보古公亶父가 있고 그리고 문왕文王이 있고 문왕의 아들이 무왕武王이고 그다음에 무왕의 형제가 주공단周公旦이다. 문왕이 남긴 책이 역경易經이다. 그런데 사실 역경은, 주나라 문왕이라고 하는 사람은 상나라 때 사람이다. 그러니까 거기에 기록된 것은 당연히 상나라의 갑골문이다. 그러니까 문왕이 남긴 역경이라고 하는 이 텍스트는 사실상 범보는 책이 맞다. 문왕이 점을 보기 위해서 기록한 책이다. 그런데 문왕의 아들인 주공은 그것을 없애지 않았다. 즉 상나라 때 문헌이긴 한데 문왕이 남긴 것이다. 자기 아버지가 남긴 문헌이니까 없애지 않았겠다. 여기서 역사를 보면 상나라와 주나라는 그 사상의 세계가 완전히 다르다. 공자도 《예기》에서 보면 상나라와 주나라는 많이 다르다는 얘기를 한다. 그것은 지금 그냥 지나가고, 역경은 점 보는 책이 맞다. 주공은 거기에다가 상전이라는 것을 덧붙인다. 역경易經과 상전象傳을 묶어서 역상易象이라고 한다. 그게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주역周易이다. 상전이 말하자면 주공이 붙였기 때문에 중국 사상 연구자들이 계속해서 상전을 참조로 해서 역경의 내용을 해석해 왔다. 상전의 내용을 보면 분수에 어긋난 짓을 하지 말고 군자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근면하게 해야 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되고 굳센 의지를 가져야 되고 이런 얘기를 한다. 그러니까 역경에 붙어 있는 상전은 다르게 말해서 공자가 말하는 내용하고 같은 가르침을 갖고 있다. 그런데 상전이 아니라 역경을 곧이곧대로 해석한 학자들에 따르면 역경과 상전이 내용이 다르더라는 것이다. 그러면 이것을 어떻게 설명을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여기서 제기가 된다. 그러니까 이제 하나의 학설이 있다. 역경의 내용을 주공이 일부러 왜곡해서, 그 역경의 내용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주공인데, 그 내용이 후대에 전해지지 않기를 원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주공은 점술이나 이런 것들을 후대에 전하지 않기를 원했고, 두 번째로는 상나라에서 전해지는 전통을 완전히 다르게 만들고 싶었다고 얘기한다. 그래서 역경을 그것 자체로 연구한 사람들은 역경은 아주 명백하게 상전과 내용이 다른 점술에 관한 책이라고 얘기한다. 그렇다면 공자는 나한테 시간이 주어지면 역경을 공부해 보고 싶다 라고 얘기했는데, 공자는 점술을 공부해 보고 싶다라고 얘기한 것일까. 공자에게도 역상이 있으니까, 역경과 상전을 묶어서 주역이라고 하는데 공자에게 이것이 전해졌다. 그러면 공자가 역경을 공부해 보고 싶다라고 얘기한 것은 도대체 무슨 뜻일까. 나도 점 한번 쳐볼까 라고 얘기를 했던 것일까 아니면 주공이 왜 역경과는 다른 내용인 상전으로 덧붙였을까. 상전에 있는 것은 분명히 공자 자신이 생각하기에 수긍이 가는 내용이다. 인간사의 지평에서 올바름을 행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공자가 '원본 역경'을 보고 해석을 보니까 이게 다르구나, 그렇다면 어떤 이유로 주공이 이런 상전을 덧붙였을까에 대한 의문이 생겨났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의문이 생겨난 지점을 한번 탐색을 해보고 주공의 의도를 짐작해 보고 그렇게 하고 싶다는 뜻이 아니었을까 라고 생각을 해볼 수 있다.  

역경에 관한 부분을 다시 정리를 해보면, 공자에게는 주나라 문왕이 지은 역경이라고 하는 텍스트와 주공 단이 덧붙인 상전이라고 하는 텍스트 이 두 개가 다 있었다. 묶어서 역상, 주역이라고 불리는 텍스트가 있었다. 그리고 공자는 역경을 공부를 좀 더 많이 해보고 싶다라고 얘기했지 주역 · 역상을 공부를 많이 해보고 싶다 하지는 않았는데, 그렇게 보면 공자는 주나라 문왕이 쓴 역경의 어떤 내용을, 그것이 감추고 있는 뭔가를 알고 있지는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왜 그런 것까지 생각을 하게 되냐면 공자 얘기를 보면 그런 얘기를 한다. 상나라는 신을 존중하여 온 백성을 이끌고 신을 섬기면서 귀신을 우선시하고 예의를 뒤로 하며, 주나라는 예의를 존중하고 귀신을 공경하며 섬기되 멀리했다 라고 되어있다.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다. 경귀신이원지敬鬼神而遠之, 그러니까 공자는 분명히 상나라와 주나라의 차이는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주 문왕의 역경은 상나라적인 어떤 정신을 담고 있고, 주공이 쓴 상전은 주나라의 정신을 담고 있는데, 왜 주공이 자기 아버지의 텍스트에 이것을 덧붙였는가, 이것에 대한 의문을 일정 정도 풀지 않았을까. 그러면 주공의 사상을 이어받은 자기 자신이 주공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어떤 그런 지평으로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해서. 내가 늙어서 주역 공부를 좀 했는데 시간이 좀 더 주어지면 좋겠어 라고 얘기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공자에 있어서 춘추는 인간사의 지평에서 스스로 평가받기 위해서 내놓은 최후의 역저力著, 힘쓴 저서음은 틀림없다. 그리고 사상사로 보면 역경에 대한 공부의 의도를 내비쳤는데, 그것은 도대체 왜 그랬을까 이것도 한 번쯤은 더 따져볼 만한 것이고, 이것은 우리가 사상사를 공부하면서 더 생각해 볼 문제가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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