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근현대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 - 이와나미 신서 편집부 엮음, 서민교 옮김/어문학사 Reading_20min_20141117_9– 1938년 이후 중일전쟁의 성격 규정에 관한 일본의 표현 변화– 1차 고노에 후미마로(近衛文麿) 내각의 ‘쇼와연구회(昭和研究会)’가 내놓은 문서: “현하 시국의 기본적 인식과 그 대책”(1938. 6. 7)“영토 침략, 정치·경제적 권익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일중국교회복을 방해하고 있는 잔존 세력의 배제를 목적으로 하는 일종의 비적토벌전[討匪戰]”– 새로운 국제 질서 규범이 미국주도로 창출되고 있던 시대에 개념과 용어를 정의하고 있던 미국에 대해 일본이 얼마나 자신의 해석을 정당화하려 했는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참조: 슈미트, “격한 대립은 결정적 순간에 말싸움이 ..
일본 근현대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 - 이와나미 신서 편집부 엮음, 서민교 옮김/어문학사 Reading_20min_20141109_8–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경제제재– 국제연맹은 ‘쌍방’이 아닌 침략국에 대해서만 경제제재를 가하였다.– 1935년 이탈리아-에티오피아 전쟁에서 미국은 8월에 중립법을 발동하고 연맹과 공동보조를 취하지만 연맹의 방침과는 달리 교전국 쌍방에 무기, 탄약, 군용기재의 금수를 적용하였다.– 여기서 침략행위가 국제범죄라면 중립의 위치에 있으면서도 침략국에 대해 공평과 회피의 의무를 질 필요가 없다. 즉 차별적인 행동을 취할 수 있다는 발상으로 전개된다. 이로써 중립법이 경제제재 수단으로 사용될 가능성이 열렸으며, 절대적인 경제력을 가진 미국의 중립법이 실질적으로 정치적인 중요성을 띠..
일본 근현대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 - 이와나미 신서 편집부 엮음, 서민교 옮김/어문학사 Reading_20min_20141103_7– 국제법에서의 전쟁 책임 문제(1) — 국민책임론 – 유럽대전(제1차 세계대전)까지 행해진 방식: 국가=국민 전체가 진다. 상대국에 대한 영토 할양, 배상금 지불 – 청일전쟁: 배상금 지불, 타이완 할양 – 러일전쟁: 동청철도 남지선, 남부 사할린 할양 – 유럽대전 패배 후 독일의 거액 배상금 지불과 식민지 할양 – 국제법에서의 전쟁 책임 문제(2) — 지도자책임론 – Robert Jackson(1892-1954)의 생각 1) 국민책임은 패배국 국민이 노예가 된다는 적국의 프로파간다를 불러 일으키고 절망적인 저항을 초래하므로 국민과 지도자를 분리하여야 한다. 2) 침략전쟁은..
만주사변에서 중일전쟁으로 - 가토 요코 지음, 김영숙 옮김/어문학사 Reading_20min_20141027_6– 이시하라 간지가 바란 것: 소련이 아직 약체였을 때, 중국과 소련의 관계가 악화되어 있을 때, 일본과 소련이 장래에 대치하는 방위라인을 중소국경의 천연 요새까지 북으로 밀어붙이는 것. “만주는 장래 미국과의 전쟁보급기지로서도 필요”– 군부에 대한 비판 등장: 민정당 의원 사이토 타카오(斎藤隆夫)의 反軍연설(1940. 2.2)1) 동양평화를 위해 싸우는 성전이라는 정부의 설명은 성립하는가2) 장개석을 상대하지 않은 전쟁 해결은 가능한가3) 중일전쟁은 가장 노골적인 침략전쟁인데 왜 정부는 무배상을 말하는가 – 1930년대의 전쟁은 ‘국제법에서의 전쟁책임론’이라는 주제와의 관련 속에서 논의해야만 ..
만주사변에서 중일전쟁으로 - 가토 요코 지음, 김영숙 옮김/어문학사 Reading_20min_20141020_5– ‘満蒙領有論’과 관련된 세 가지 전제1) 시데하라 키주로(幣原喜重郞) 외교의 붕괴, 즉 일본의 만몽권익은 조약에 기초를 둔 확고한 것이라는 견해가 무너짐으로써 일본은 자력으로 안전을 확보하려 했다. “두 개의 체제 사이에서 동요한 국민정부를 워싱턴 체제 쪽으로 끌어당기기 위해 영국과 미국은 워싱턴 체제의 경제적 룰을 변용시켰다. 그것은 중국에 대한 내정불간섭 정책을 취하는 시데하라 외교의 기반을 무너뜨리는 일이 되었다.”2) 장작림을 통한 만주지배의 안정성. 다나카 기이치 내각이 퇴진함으로써 동삼성의 현지 정권을 통해 북만주를 개발하려는 노선이 무너졌다. “북벌군과의 전투를 위해 봉표를 남발..
만주사변에서 중일전쟁으로 - 가토 요코 지음, 김영숙 옮김/어문학사 Reading_20min_20141013_4– ‘만몽특수권익’이란 무엇인가1) 특수권리: “조약에 의해 인정되어, 타국에 균등하게 적용될 수 없는 전유권”2) 특수이익: “특수권리를 행사한 결과로서, 타국이 이를 침해하는 경우 국가의 힘으로써 대항해야만 하는 경제적·정치적 발현 현상”– 만몽특수권익에 관한 일본 국내의 입장들1) 육군: 옛날에는 국제적인 승인을 받았지만 지금은 아니다2) 아리타 하치로(有田八郎, 외무성 아세아국장): 옛날에도 승인을 받은 적이 없었고 지금도 받은 상태가 아니다.3) 요시자와 켄키치(芳沢謙吉, 주중대사): 만주는 러일전쟁의 보상이다. – 일본의 만몽특수권익에 관한 국제적 입장들1) 워싱턴 회의: “동아시아 ..
만주사변에서 중일전쟁으로 - 가토 요코 지음, 김영숙 옮김/어문학사 Reading_20min_20141005_3– 중일전쟁의 실체와 중일전쟁에 대한 일본인들의 인식차이에 유념해야만 한다.– 일본인들은 중일전쟁을 ‘日中戦争’이라 부르지 않고 ‘支那事変’이라 불렀다는 것.– 고노에 후미마로 관계문서, “현 시국의 기본적 인식과 그 대책”(1938. 6. 7): 전쟁의 성질 — 영토침략, 정치·경제적 권익을 목표로 하지 않으며, 일본과 중국의 국교 회복을 저지하고 있는 잔존 세력의 배제를 목적으로 하는 일종의 토벌전.– “쌍방이 상대 국가에 대해 국제 불법행위를 했다고 주장하면서 스스로 취한 강력조치가 보복이기 때문에 위법이 아니라고 서로 논쟁하는 두 나라, 그것이야말로 1930년대 일본과 중국의 모습이었다...
만주사변에서 중일전쟁으로 - 가토 요코 지음, 김영숙 옮김/어문학사 Reading_20min_20140929_2후지와라 아키라, 를 참조하여 만주사변에 이르기까지의 전간기 국제정세와 일본 국내정세를 먼저 살펴본다. – 국제정세의 측면1) 유럽대전(제1차 세계대전)의 귀결로서의 총력전 개념: “전쟁은 단순한 무력전에 그치지 않고 정치 경제 문화 등 국가의 총력을 동원한 격렬하고 장기간에 걸친 형태를 띠게 되어, 국민 전체가 전쟁의 주체라는 형식을 취하지 않을 수 없어, 국민의 정치적 사상적 단결력과 국가의 경제력이 전쟁의 승패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 되는 새로운 단계에 접어든 것”2) 총력전의 폐해를 극복하고자 하는 국제적인 군축 평화 분위기3) 워싱턴 회의와 런던조약: 1921년 11월부터 워싱턴에서 ..
만주사변에서 중일전쟁으로 - 가토 요코 지음, 김영숙 옮김/어문학사 Reading_20min_20140922_1– 다루는 시기는 만주사변(1931년, 쇼와 6년)부터 중일전쟁(1937년)까지이나 만주사변의 기원을 1920년대로, 필요한 경우 러일전쟁 시기까지 추적한다. 독일군의 서유럽 침략이 1940년이었으며, 일본이 중일전쟁을 독자적으로 해결할 방책이 소멸되는 시기도 1940년(쇼와 15년) 10월 대정익찬회(大政翼賛会)가 성립하면서였다.– 戰間期 국제질서가 본격적으로 국내정세에도 영향을 끼치는 시기이기도 하다.– “베르사이유·워싱턴 체제라는 국제 질서를 자신의 국가의 질곡으로 생각한 일본이나 독일이 군사력을 바탕으로 실력으로써 체제의 변혁을 시도한 10년”– “동시에 이 10년은 일본에서 관습화된 양..
다이쇼 데모크라시 - 나리타 류이치 지음, 이규수 옮김/어문학사 Reading_20min_20140915_4– ‘다이쇼 데모크라시’ 시기를 세계사의 맥락에서 살펴보면서 과연 진정한 데모크라시 시기였는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유럽대전(제1차 세계대전) 이전 시기의 유럽의 상황: 산업자본주의와 국민국가의 결합과 그에 이은 ‘국민제국’시대– 국민국가 간의 경쟁(“great-power rivalry”)이 가속화되면서 대중동원 논리가 등장하고 이후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독일의 ‘생활공간’(Lebensraum), 아시아·태평양 전쟁 시기 일본의 ‘대동아공영권’(大東亜共栄圏) 등으로 전개 – 국민국가간 전쟁의 참혹함: 국민국가간 경쟁은 국가제도·정치·경제의 혁신으로 이어지고, 이러한 발전의 동력이 ..
다이쇼 데모크라시 - 나리타 류이치 지음, 이규수 옮김/어문학사 Reading_20min_20140908_3– 1920년대 사회개혁의 네 가지 조류1) 민본주의자에 의한 정당 정치의 확대와 민의의 존중2) 사회주의 운동의 복권3) 일본과 천황을 전면을 내세워 ‘国体’에 입각한 개조를 추구한 국가주의 단체4) 종래의 통치 방식을 변경하여 국가에 의한 사회의 전면적 개조를 시도한 국가 정책 – 국체론의 기타 잇키(北一輝): 国家改造案原理大綱(1919), 日本改造法案大綱– 기요하라 사다오(清原貞雄): 国体論史(1921) 국체론의 계보와 해석의 개요. “하나의 중심점을 향해 국민이 위집(蝟集)하여 견고한 국가를 만든다.” “‘근간’인 ‘야마토 민족’을 ‘반석’으로 삼으면, 새롭게 ‘부속된 민족’인 조선과 타이완..
다이쇼 데모크라시 - 나리타 류이치 지음, 이규수 옮김/어문학사 Reading_20min_20140831_2– 다양한 계층분화: 중소상점주와 중소공장주로서 일종의 중간층을 형성한 ‘단나슈’(旦那衆)와 이들에게 고용된 ‘잡업층’(雜業層)의 등장 — 이들이 다이쇼 데모크라시를 밀고간 원동력이었으나 이 운동력은 만주사변 발발을 계기로 소멸되면서 ‘국민’으로 결집된다.– 제국이 된 일본은 새로운 사회구조를 만들내지 못했고, 그에 따라 새로운 사회분화 상황에 적응하지 못하였다. – 천황기관설(天皇機関説): 미노베 다쓰키치(美濃部達吉) “국가는 헌법상의 인격을 갖고 법인으로서의 국가가 주권의 주체가 되며, 천황은 국가의 최고 기관이 된다”– 천황기관설은 자유주의적인 헌법해석이었으나 결국 우에스기 신키치(上杉慎吉) ..
다이쇼 데모크라시 - 나리타 류이치 지음, 이규수 옮김/어문학사 Reading_20min_20140824_1나리타 류이치成田龍一(지음), 이규수(옮김), , 어문학사, 2012.원제: 大正デモクラシー―シリ(岩波書店, 2007) – 이 시기를 가리키는 ‘デモクラシー―シリ’(democracy)라는 말이 과연 내용을 충실히 담아내고 있는가? 정확하게 말하면 메이지 헌법 체제, 즉 ‘위로부터의 근대국가화’에 대항하여 인민의 자립적 가치와 자유를 실현하려는 ‘내재적 근대화’ 운동 이라 할 수 있다. 즉 ‘liberalism’(자유주의) 운동의 시대라 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시기 구분: 제1기(1905년 러일전쟁 강화반대운동 – 1912~13년 제1차 호헌운동), 제2기(제1차 호헌운동 – 1918년 쌀소..
근대 일본의 전쟁논리 - 가토 요코 지음, 박영준 옮김/태학사 Reading_20min_20140818_9* 일본에게 왜 한반도는 중요했는가?– 야마가타 아리토모의 주권선/이익선: “我邦의 이익선의 초점은 실로 조선에 있다.”(外交政略論, 1890. 3)– 야마가타 아리토모의 의견서에 덧붙여진 로렌츠 폰 슈타인(Lorenz von Stein)의 의견1) 시베리아 철도의 전면 개통이 일본에 위협이 되지는 않는다.2) 오히려 러시아 철도는 러시아의 “조선의 점령에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시베리아 철도는 일본에 큰 문제가 된다.– 슈타인의 ‘권세강역/이익강역’ 개념: “조선의 중립은 일본의 권세강역을 보전하기 위해서 생기는 바의 모든 이익을 충족시키는 것이다.”– 청일전쟁을 뒷받침하는 군사전략의 기조: 일본..
근대 일본의 전쟁논리 - 가토 요코 지음, 박영준 옮김/태학사 Reading_20min_20140811_8가토 요코(加藤陽子), (원제: 戦争の日本近現代史) – 이 책에서 다루는 전쟁 논리들: 메이지 초기의 대외적 현실주의, 사족층의 征韓論, 민권론자의 적극적인 대외강경론, 야마가타 아리토모의 주권선/이익선론, 후쿠자와 유키치의 개혁/비개혁론, 요시노 사쿠조의 러시아 반문명론, 가토 다카아키의 총력전론과 가상적국론, 대동아공영권 시기의 내셔널리즘 비판론과 동아공동체론 – 이 책의 방침: “전쟁에 이르는 과정에서 위정자와 국민들이 세계정세와 일본의 관계를 어떻게 파악하였고, 어떠한 논리적 이치로 전쟁을 받아들였는가, 그 논리의 변천을 추적” – 전쟁의 실태와 형태의 간격: “국가의 갖가지 힘을 동원한 총력..
1894년, 경복궁을 점령하라! - 나카츠카 아키라 지음, 박맹수 옮김/푸른역사 Reading_20min_20140804_7– 청일전쟁을 설명하는 방식들1) “1890년 공황 그리고 (일본)정부와 의회의 대립으로 인한 정치불안 등으로 설명하려는 관점”. 이는 메이지 이래 계속된 “일본의 조선침략정책과 분리”해서 논하려는 시각. 경복궁 범궐사건에 대한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견해는 이러한 관점에 연결되어 있다.“조선왕궁점령은 먼저 발포한 조선 병사와의 우발적인 충돌에서 시작되었고 일본군은 어쩔 수 없이 왕궁으로 들어가 국왕을 보호했으며… 소규모 충돌사건”2) “7월 23일 왕궁점령사건은 결코 ‘한일 양국 병사의 우연한 충돌’이 아니며 일본 공사관과 일본 육군의 혼성여단이 하나가 되어 사전 주도면밀하게 준비한..
1894년, 경복궁을 점령하라! - 나카츠카 아키라 지음, 박맹수 옮김/푸른역사 Reading_20min_20140728_6나카츠카 아키라(中塚明), (원제: 歴史の偽造をただす―戦史から消された日本軍の「朝鮮王宮占領」) – 역사가의 기본 책무: 1차 사료의 발굴, 사료비판과 해석– 책의 핵심내용: “청일전쟁(1894-1895) 개전에 즈음한 일본군 최초의 무력 행사가 주도 면밀한 계획에 바탕한 서울 경복궁 점령이었다는 것과, 그 사실이 일본 육군이 공식적으로 펴낸 ‘일청전사'[日淸戦史]에서 위조된 이야기로 바뀌었다는 것을 당사자인 일본 육군참모본부의 기록을 통해서 실증… 그와 같은 역사 위조가 결코 일시적 발상에서가 아니라 근대 일본에서 조직적으로 이루어져왔음을 정확한 사료를 실례로 들어 논증” – 역사가의..
청일.러일전쟁 - 하라다 게이이치 지음, 최석완 옮김/어문학사 Reading_20min_20140721_5– 영일동맹을 맺으면서 일본은 러시아를 가상적국으로 설정하게 된다. “러시아와 맞서는 일본, 위에서 미는 영국, 배후에서 지켜보는 미국”– 구미 각국은 아시아의 군사적 긴장에 의한 무역과 금융을 통해 1873년 이래의 대불황을 해소한다.– 일본은 의화단 사건(1899-1901) 당시의 공동파병을 거쳐 구미열강(영제국, 미합중국, 러시아,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오스트리아)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제국으로 성장 – “러일전쟁은 양국에게 싸우지 않아도 좋을 전쟁이었다.”– 러일전쟁에서 얻은 戰訓: 군비확장을 도모해도 일본의 국력은 소모전을 견디지 못하므로 정신력으로 보완해야 한다; 장비의 충실보다 병사..
청일.러일전쟁 - 하라다 게이이치 지음, 최석완 옮김/어문학사 Reading_20min_20140713_4– “1895년 제국 일본은 야마가타가 주장하는 ‘이익선’ 개념을 명확히 채택하고, 식민지 대만과 세력권 조선을 발판으로 이후의 50년 동안을 군사력 확대와 전쟁으로 나아간다. 그 전환점은 청일전쟁이었다.”– 청일전쟁을 어떻게 볼 것인가: 일본의 적극적인 침략의지가 일관된 계획 속에서 전개되고 실현되었는가, 아니면 일본의 ‘팽창주의’는 승인하되 적극적으로 준비된 침략임은 배제할 것인가.– 청일전쟁의 이데올로기: ‘문명의 義戦’이라는 이데올로기, “전투와 살육을 정당화하는 의식 조작” – 청일전쟁의 後果1) 국제관계: 청의 군사력이 약체라는 사실을 세계에 폭로2) 戰爭特需, 戰後經營 체제: 전쟁에 따른..
청일.러일전쟁 - 하라다 게이이치 지음, 최석완 옮김/어문학사 Reading_20min_20140707_3– 시베리아철도와 일본– 이나가키 만지로(稻垣滿次郞, 1861-1908), 東方策: 지정학적 관점에서 서술된 국제정치론– 구가 가쓰난(陸羯南, 1857-1907): “메이지 24년(1891)은 실로 우리 동양 문제가 움직이기 시작한 시대”(1894년의 언급)– 야마가타 아리토모(山県有朋)의 의견들1) 군사의견서(1888년 1월): 시베리아철도 계획 발표 3년후. 아시아에서 영국과 러시아의 대립, 캐나다의 태평양철도, 시베리아철도2) 외교정략론(1890년 3월): “우리나라 이익선의 초점은 실로 조선에 있다… 시베리아철도가 완공되는 날이 곧 조선에서의 多事가 일어나는 날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청일.러일전쟁 - 하라다 게이이치 지음, 최석완 옮김/어문학사 Reading_20min_20140629_2– 일본에게는 1874년의 대만 출병의 성과를 유지·확대하려는 의지나 군사력은 없었다. 일본이 계속적인 전쟁의지를 갖게 된 것은 청일전쟁 이후이다. 대륙에 확보한 이권이나 식민지를 유지·확대하는 것이 아시아·태평양 전쟁까지 이어진 일본의 국가목표였다.– 청일전쟁의 의의: 제국주의 국제체제에 가담, 계속적인 전쟁의지의 출발점, 매스미디어에 의한 국민의 탄생– 복합전쟁으로서의 청일전쟁: 1)7월 23일 전쟁(대 조선), 2)협의의 청일전쟁(대 청), 3)농민전쟁 섬멸작전(대 조선민중), 4)대만정복전쟁(대 대만민중)– 러일전쟁의 의의: 군사적 사회로 가는 길, 서구제국주의에 대한 아시아의 승리가 아니라 ..
청일.러일전쟁 - 하라다 게이이치 지음, 최석완 옮김/어문학사Reading_20min_20140623_1– 청일전쟁(1894-1895), 러일전쟁(1904-1905)– 한반도와 직접 관련되는 영역들이 많은 시기이다.– 한국과 일본의 관계라는 주제를 파악할 때 관련되는 차원을 혼동해서는 안된다. 추상적 차원의 평화논리와 역사적 차원의 진실 규명, 법적 차원의 책임문제 등은 각각이 가진 차원에서 논의해야만 한다.– 역사는 온전히 인간이 행한 일의 기록이며, 인간이 책임져야 하는 영역이다. ‘신의 뜻’이 개입될 여지는 전혀 없다.– 일본과 한국의 역사왜곡, ‘자학사관'(自虐史觀)에 관한 논의는 메이지 시대에 대한 찬양에 근거하는 경우가 많다. – “일본의 군대는 청일전쟁부터 아시아태평양 전쟁이 종료될 때까지 ..
민권과 헌법 - 마키하라 노리오 지음, 박지영 옮김/어문학사 Reading_20min_20140616_7야스마루 요시오(安丸 良夫), 근대천황상의 형성(近代天皇像の形成) 읽기 – 18세기 말까지의 이데올로기 상황 속에서 질서의 정당화: “막부와 번의 권력과 결합하여 유교적인 仁政觀을 전제로 한 질서상” – 19세기 이후 등장한 천황숭배론과 국체론으로써 체제(regime)의 통일성을 이루는 기본요소가 전면적으로 교체됨 – 천황권위의 내면화: “학교 교육과 청년단, 재향군인회 등을 통해서 천황 숭배와 국체관념은 점차 깊숙히 국민의식 속에 파고 들어가게 되며, 근대화 과정의 성과는 천황의 권위와 결부되어 국민의 통념적인 부분을 형성” – “천황에게 권위 중추를 두고 국민국가로서의 통합과 발전을 꾀한다는 지상의..
민권과 헌법 - 마키하라 노리오 지음, 박지영 옮김/어문학사 Reading_20min_20140609_6야스마루 요시오(安丸 良夫), 근대천황상의 형성(近代天皇像の形成) 읽기– 전통적 권위로서의 천황: “교토를 중심으로 의례적 질서나 우주론적인 차원에서 조정숭배나 신국론으로 경사(傾斜)하여 스스로의 사회적 존재를 권위지우는 경향”– 현실 권력으로서의 막부의 장군: “장군=국왕설의 입장에서 막부의 전제적 지배권을 명확히 하려는 동향”– 체제의 위기: “권력이 구성하려는 질서나 질서의식과 사회의식의 다양한 흐름과의 사이에 균열” “여기에 일정한 형태의 새로운 질서관념이 적극적으로 구성되기 위해서는 위기의식이라는 별도의 매개가 필요”– 대립되는 체제 정당화 기제들의 충돌, 위기의식의 돌출, 새로운 질서를 내재..
민권과 헌법 - 마키하라 노리오 지음, 박지영 옮김/어문학사 Reading_20min_20140602_5야스마루 요시오(安丸 良夫), 근대천황상의 형성(近代天皇像の形成) 읽기– 천황을 파악하는 두 가지 방법: 연속설(고대부터 연속성을 가진 것으로 파악), 단절설(“우리가 천황제라고 할 때 흔히 통념적으로 연상하는 것들도 실은 메이지 유신을 경계로 하는 근대화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 근대 천황제의 기본관념들이 명확하게 일정한 형태를 갖추고 정리되는 것은 근대 후기 이후의 일본 사회 전체가 전환하는 과정에서였다.– 근대 천황제의 네 가지 기본 특징1) 萬世一系의 皇統: 現人神 천황과 여기에 집약되는 계통적 질서의 절대성과 불변성 — 전통성과 정통성2) 祭政一致라는 神政旳 理念 — 초월적 권위성3) 천황과..
민권과 헌법 - 마키하라 노리오 지음, 박지영 옮김/어문학사 Reading_20min_20140526_4– 일본제국의 ‘근대국민국가’ 편성원리로 등장한 천황과 신민(臣民)개념 – “신민이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이름이며, 민권이나 공권을 상실한 사람도 또한 제국의 신민임에는 틀림없다.” – “신(臣)과 민(民)을 융합시켜 ‘천황의 자식’으로 만들어 버리면 모든 ‘일본인’을 천황과의 관계하에서 일원화시킬 수 있다.” – ‘입헌주권’과 ‘천황대권’이라는 이중성 위에 세워진 대일본제국 헌법은 흠정헌법(欽定憲法)이므로 비민주적이지만 폐지될 수 없다. 다른 한편으로 내각은 의회, 정당에 의한 민주적 요구를 받게 된다. – 야스마루 요시오(安丸 良夫), 근대천황상의 형성(近代天皇像の形成)에서 제시..
민권과 헌법 - 마키하라 노리오 지음, 박지영 옮김/어문학사 Reading_20min_20140518_3– 자유주의 경제와 민중의 생활: “경제적 자유주의를 근거로 한 ‘강한 자의 자유’ 하에서 누구의 도움도 기대하지 않으며, 지역이나 직장에서 ‘불결’하고 ‘태만한 자’라고 불리지 않도록 스스로를 규제하고, 가혹한 노동조건과 높은 소작료에도 인내하면서 생활 수준을 향상시키려고 자신과 가족을 위해 열심히 노동해야 하는 ‘근대’라는 시대의 막이 본격적으로 열린 것이다.”– 초대 문부대신 모리 아리노리(森 有礼)의 국민주의 교육– 학력주의, 기회의 평등, 우승 열패, 자기책임– 내국식민지와 탈아론(脱亜論)– 만국공법의 기초로서의 근대적 소유권의 논리에 따라 주인없는 땅과 미개지에 대한 점령을 통해 ‘영토’ 획..
민권과 헌법 - 마키하라 노리오 지음, 박지영 옮김/어문학사 Reading_20min_20140512_2– 다루는 순서: 제1장 자유 민권 운동과 민중 – 제2장 ‘헌법과 의회’를 둘러싼 공방; 제3장 자유주의 경제와 민중의 생활 – 제5장 학교 교육과 가족; 제4장 내국 식민지와 ‘탈아’로의 길; 제6장 근대 천황제의 성립–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 : ‘평등’을 역설하고 ‘학문’을 장려했던 것은 민중의 客分意識을 불식시켜 ‘국민’으로서의 자각,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칠 각오를 지니게 하기 위해서였다. 근대국가 건립의 매개로서의 학문과 국민교육으로 轉化– 민권파는 객분의식을 가진 민중과 생각이 달랐다. “군대의 존재를 전제로 하는 한, ‘천하와 우락(憂樂)을 함께 하는’ 민권파에게 병역은 당연한 의..